임랑 기행 – 문원민 시인을 만나러 간 부산 여행길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7월 13일 부산의 임랑 바닷가에서

부산의 임랑 바닷가에서 술을 마셨다. 파도가 밀려와 부서질 때마다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곳이었다. 파도는 밀려올 때마다 바닷물로 적시는 모래밭으로 경계를 긋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리로 그 경계를 훌쩍 넘어간다. 소리로 경계를 확장한 파도는 우리의 귀를 파고들어 우리의 몸을 적신다. 그러니 파도의 경계는 뜻밖에도 파도를 마주하고 서는 우리들로 끊임없이 확장된다. 그리하여 파도의 경계는 바닷가에 서 있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바닷가에 가면 걸어다니는 파도의 경계를 볼 수 있다. 임랑의 바닷가에 그 확장된 경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 명으로 일행을 꾸렸던 관계로 우리의 술자리에선 파도가 밀려올 때 그 파도에 맞추어 우리의 말들이 고개를 들었고 파도가 가라 앉을 때면 말들도 함께 가라 앉았다. 그러면 가라 앉는 말들에 맞추어 우리들의 웃음이 술상 위로 하얗게 내려 앉곤 했다. 우리의 말과 웃음은 파도를 흉내내는 것으로 파도의 경계를 연장한다. 파도는 우리가 든 술잔에 파도소리를 얹어 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아 우리는 술을 마시며 바다를 마실 수 있었다. 우리의 술은 연장된 바다였다.
문원민 시인을 보러 내려간 길이었다. 한때 우리는 그를 무진기행이라 불렀다. 우리는 그가 낸 시집 중에 「임랑」이란 제목의 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곳에서 시인을 보고 싶어 했고, 시인은 그 바닷가에서 파도소리가 잘 들리는 술집을 골라 자리를 잡아 주었다. 빗발이 간간히 뿌리는 날이었고 자주 바다에서 안개가 일었다. 파도가 바다를 실어나르는 것이 아니라 안개가 타고갈 등이 되어주겠다고 몸을 일으키는 날이었다. 자주 안개가 파도를 타고 바닷가로 밀려왔다.
우리는 한때 그가 우리에게 무진기행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그가 왔다는 것을 이곳의 안개가 알아챈 것이다. 우리는 무진을 내세워 안개의 환영을 받으며 술을 마셨다. 바다가 밀려와 소리로 부서지고 우리의 몸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바다였다. 일어난 바다가 비틀거렸다. 멋도 모르고 우르르 몰려와 술자리를 편 우리들의 술잔에 소리를 얹은 탓이었다. 파도가 우리의 술에 취해 있었다.
내게 임랑으로 가는 부산 여행길은 서울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의 일행은 넷이었다. 넷은 마주보는 좌석을 얻었고, 서울역에서 열차를 탈 때 맥주 몇 캔을 챙기는 준비를 잊지 않았다. 술안주로 삼겠다고 기차를 타러 내려가다 눈에 띈 만두집에서 만두를 사는 것도 거르지 않았다. 혼자 여행은 침묵을 강요한다. 그러나 넷으로 일행을 꾸리면 넷은 열차 안에 가득한 혼자 여행객들이 암암리에 그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넷은 그 침묵의 카르텔을 깨겠다고 떠들기 시작한다. 우리 뒤의 젊은 사람이 좀 조용히 해달라고 매우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우리는 즉각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그렇다고 그 부탁을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결국 열차의 직원이 달려와 너무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왔다며 우리에게 주의를 주고 돌아가기에 이르렀다. 그 주의에 우리는 잠시 위축되었으나 무엇이든 삼진 아웃인 법이니 주의를 세 번받을 때까지는 계속 떠들어보자고 용기를 냈다. 우리의 용기는 두 번의 주의를 받는 성과로 결실을 보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계획은 세 번의 주의를 받은 뒤 부산역에서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었으나 결국 주의는 두 번에 그치고 말았다. 우리가 떠든 나머지 말들은 모두 파울이 되고 말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올라갈 때는 꼭 세 번의 주의를 받자고 손을 모아 다짐했다.
해운대에서 호텔을 잡았고 여장을 풀었다. 호텔에선 바다가 보이질 않았다. 호텔의 창은 온통 건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해운대에 왔으니 잠시라도 일단 바다와 인사라도 하겠다며 호텔을 나갔지만 높이를 아득히 세우며 나를 둘러싼 건물들 때문에 바다가 어느 쪽인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지도앱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멀리서 바다를 보고 반가운 마음을 미리 보내 바다에 뛰어들며 느려터진 다리의 걸음을 재촉하여 만나던 그 옛날의 설레는 바다는 더 이상 없다. 지도앱을 꺼내 마치 별자리를 보듯 지도앱에서 방향을 감지하고 건물들 사이를 밤바다를 항해하듯 걸어야 바다를 찾아낼 수 있다. 여전히 바다는 그대로이나 눈에 담아 그 눈이 이끄는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던 바다는 더 이상 없다.
문원민 시인이 왔고 우리는 곧장 임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임랑의 바다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길을 달리는 차창에서 바다가 보였다. 바다를 독차지 하겠다고 아득하게 높이를 높이고 있던 해운대 바다 주변의 그 높이가 일거에 사라지고 집들이 바닷가에 낮게 엎드려 있었다. 바다는 멀리 있었지만 집들의 지붕을 넘어 시선이 그 바다에 닿았다. 마음이 벌써 뛰기 시작했다. 지도앱을 꺼낼 필요 없이 걸음보다 먼저 마음을 보내 껴안을 수 있는 그 옛날의 바다였다. 문원민 시인이 부산에서 유일하게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내게는 그 얘기가 높이를 통해 바다를 독점하려는 욕심이 집어 삼키지 못한 유일한 곳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임랑의 바다도 어느 곳이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갈 수 있었던 시절을 과거의 시간대로 가지면서 펜스를 두르고 있는 바닷가의 카페에서 우리는 의자를 둥글게 모아놓고 얘기를 나누었다. 옛날 같았으면 우리의 얘기가 앉기 좋게 자리한 바닷가의 바위 위로 옮겨졌을 것이고, 그러면 파도가 아주 가까이서 우리 얘기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해운대로 돌아와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을 골랐고, 재수 좋게 술집을 전전하지 않고도 한 술집에서 날을 넘겨 다음 날 네 시까지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날을 넘겨 술을 마시면 어제가 크게 과거로 밀려나지 않는다. 아니 어제는 어제가 아니라 여전히 오늘에 귀속된다. 가끔 우리는 과거로 밀려나는 오늘을 견디지 못한다. 그만큼 어제로 밀어내지 않고 계속 현재로 갖고 싶은 오늘이 있는 법이다. 우리가 날을 넘겨 네 시까지 술을 마신 이유이다. 우리는 이틀째 어제 오늘의 구별없이 호흡하는 오늘을 갖고 있었다. 부산에 내려와 문원민 시인을 만난 오늘이었다.
그 이틀째 오늘에는 문원민 시인을 만나 그의 시집 『파도라는 거짓말』의 출간을 축하했다. 이런, 만나선 일단 술이고 다음 날에나 축하라니. 케익에 초 하나를 달랑 꽂아 그의 시인 한 살을 축하했고, 사랑하는 우리 문원민을 모두가 노래로 불러 그 촛불에 곁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우리의 일행은 서울에서 내려간 네 명과 대구에서 합류한 한 명, 또 서울에서 따로 시간을 내 내려와 우리의 일행이 되어준 또 다른 한 명으로 시인을 합쳐 모두 일곱이었다. 서울의 일행은 부산역 앞의 차이나 타운에서 중국집을 골라 고량주로 급발진 취기의 시동을 걸었고 고량주에 맛이 들려 서울에 도착해선 다시 중국집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그래도 문연 집이 있어 마지막 술잔을 드는 데는 차질이 없었다.
임랑은 다시 가볼 생각이다. 혼자 걸으면 밀려와선 엎어지는 파도가 몸속에 쌓여 화석을 이루고 그 화석이 두꺼운 지층으로 한 지질시대를 이루며 일어서는 바다가 임랑에 있다. 혼자 가서 그 바다의 화석을 하루 종일 발굴하다 올 생각이다. 발굴 도구는 챙겨가야 한다. 「임랑」이 수록된 시집 『파도라는 거짓말』이다. 문원민의 시집이고 나는 해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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