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의 첫눈은 좀 일찍 찾아온 느낌입니다.
11월 19일 밤에 찾아왔죠.
우리 집에서 “엄마, 눈와요”를 외치며
우리의 눈길을 바깥으로 몰고나간 것은 딸이었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더군요.
거짓말을 보태면 주먹만한 눈송이로 키울 수 있을만큼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내리면서 쌓이질 않고 녹고 있더군요.
다음날 일어나 보니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 다시 눈이 왔습니다.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아침마다 집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첫눈과 둘째 눈을 찍어 두었습니다.
첫눈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의 녹아 있었지만
담벼락의 그늘이 보호해준 눈은
은행잎 위를 살짝 덮고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눈은 펑펑 내려 세상을 뒤덮고 있으면 눈이지만
살짝 내리면 눈이라기 보다 눈이 온 흔적이 됩니다.
2층의 화분엔 눈이 하얗게 담겨 있었습니다.
속을 파면 그 속도 눈일 것 같은 느낌입니다.
허리가 꺾인 봉숭아가 머리를 눈속에 묻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엔 좀더 많은 눈이 세상을 덮었습니다.
눈의 흔적이 아니라 분명한 눈이었습니다.
오늘은 어제 그 화분의 테두리까지 눈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봉숭아는 아예 눈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첫눈 온 다음 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니
양철 지붕의 한쪽으로 꼬마 고드름이 열려있었습니다.
고드름은 녹다 얼다 하면서 키를 키웁니다.
그렇지만 날씨가 따뜻해 더 이상 키를 키우지 못하고
그만 사라져 버렸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보았더니
첫눈은 옥상을 다 덮지도 못하고 녹아서
하얀 반점처럼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 위로 아침 햇살이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시멘트 바닥은 블랙홀처럼 햇살을 검게 삼키고 있었지만
그래도 반점의 눈은 그 흰색을 더욱 완연하게 빛내면서
햇살이 시멘트의 검은 블랙홀로 빨려드는 것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둘째 눈은 옥상을 모두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햇살을 받자 눈은 더욱 희게 빛납니다.
눈은 평지는 틈을 남기지 않고 하얗게 덮지만
수직의 사면은 그 높이만큼 눈을 쌓기 전까지는 그곳을 덮지 못합니다.
가끔 눈이 정말 많이 오면
그 수직의 사면도 눈이 쌓는 높이에 덮이고 맙니다.
어릴 때는 그런 큰 눈을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근래엔 그런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마당의 장미 넝쿨은
참 다양하게 그 가지 사이를 채웁니다.
잎이 무성해지면 초록빛으로 그 사이를 그득채우고
꽃이 피면 붉은 색으로 여기저기 액센트를 줍니다.
그러다 꽃도 지고, 잎도 지면, 휑한 빈공간으로 그 사이를 채워둡니다.
보통은 그 경우 채웠다기 보다 가지 사이가 비었다고 말합니다.
눈이 오면 눈이 가지에 얹히면서
가지 사이의 빈공간이 좀더 촘촘해 집니다.
가지를 따라 눈들도 어지럽게 엉키곤 합니다.
그 모습은 빈가지들만 있을 때와는 또 다릅니다.
어릴 때 곧잘 나무를 타고 오르곤 했었습니다.
눈도 나무를 타고 오릅니다.
원래를 내리면서 쌓인 눈인데
자꾸만 나무를 타고 오르는 듯 느껴집니다.
옥상에 누워있던 전화선은
눈이 오자 눈밑을 파고 달리는 두더지가 되었습니다.
혹시 오늘 같은 날 우리집으로 전화를 걸면
하얗고 손시린 눈의 느낌이 묻어날까요.
옥상의 장독들도 눈을 뒤집어 썼습니다.
장독들은 실제로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눈이 오면 지붕의 풍경을 남다르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장독은 그냥 옥상을 지키다가
가끔 겨울에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만으로
풍경을 좀더 풍요롭게 해줍니다.
옥상의 눈위에 발자국을 찍어봅니다.
눈위에선 항상 발자국이 나를 졸졸 따라옵니다.
내가 나를 따라오는 것인데도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아
은근히 기분이 좋습니다.
눈처럼 선명하게
나를 따르는 발자국을 하나하나 챙겨주는게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그렇게 첫눈이 오고,
또 다음날 둘째 눈이 왔습니다.
눈이 오면 세상이 하얗습니다.
가끔 우리는 모든 것이 지워진
그 하얀 세상에 서고 싶어 합니다.
둘째 눈이 왔을 때, 잠깐이었지만
옥상의 한 귀퉁이에서 세상이 하얗게 지워져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올겨울에도
하얗게 지워진 그 세상이 여전히 좋았습니다.
5 thoughts on “첫눈과 둘째 눈”
첫눈이 오면 가슴이 설레던 때가 있었데 점점 식어갑니다.
어릴 적에는 한겨울 내내 눈이 쌓여 있었고 벙어리 장갑을 끼고 놀았는데 도회지에서는 눈도 귀해졌습니다.
정말 눈이 소복이 쌓인 하얀 세상이 보고 싶습니다.
저도 강원도 가고 싶습니다.
겨울에 눈소식을 듣고 오대산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죠.
적멸보궁에 올랐는데 거기서 오대산으로 가는 길엔 사람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어요.
가볼까 하다가 결국 그냥 돌아서고 말았죠.
불안이 반, 그냥 그 길로 가다가 눈속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반…
불안에 밀려나서 상원사로 내려오고 말았지만 말예요.
눈도 맑고 푸른 바다 만큼이나 유혹이 심하더군요.
참말로 눈이 많이 왔네요~
눈 온 후라 여기 아래도 며칠간 아주 추웠어요.
눈 보니까 상쾌한 기분 😀
첫눈이 다 오고, 겨울이 잘 찾아왔군요.
몇년전 서울에 정말 눈이 많이 온 해가 있었어요.
쌓인 눈이 봄이 돼서야 겨우 다 녹았다는…
그때는 그 사진을 찍어놓질 못했어요.
눈소식이 있을 때 강원도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