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잠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1월 2일 남한산성에서


쉿, 조용히!
발끝을 세우고 살금살금 걸어주세요.
지금 가을이 막 잠에 들었거든요.
사람들은 갑자기 겨울이 들이닥쳤다고 말하지만
사실 겨울은 색으로 물들었던 가을이
그 색을 지상으로 내리고 잠에 드는 시간이예요.
낙엽이 하나둘 떨어질 때
가을은 서서히 졸리운 눈을 비비기 시작하죠.
푸른 풀밭에 누웠지만 떨어진 낙엽의 붉은 색을 보니
가을이 막 잠에 든 것이 분명해요.
가을의 잠은 떨어진 낙엽의 색깔로 짐작할 수 있거든요.
색이 선명하면 이제 막 선잠에 든 것이고,
색이 흐릿하면 잠든지 한참 된 것이죠.
어느 단풍잎 하나는 아예 넓은 나뭇잎 속에 몸을 눕히고 있더군요.
그리곤 그 나뭇잎을 오무려 햇볕을 모으고 따뜻한 잠을 청하고 있었어요.
단풍으로선 나뭇잎 침대를 하나 장만한 셈이예요.
단풍의 색은 여전히 선명했어요.
아직 가을이 잠을 청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소리예요.
가을의 잠은 선잠이 들었을 땐, 여전히 깨어있는 듯 화려하기만 해요.
그렇지만 이젠 바람이 흔들어도, 비가 어깨를 두드려도
절대로 잠에서 깨지 않을 거예요.
봄까지 그대로 깊은 잠에 들며 달콤하게 그 잠에 녹아
땅속 깊이깊이 스며들 거예요.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이 내년 봄 나무에 물이 오를 때면
가지의 여기저기서 새싹으로 기지개를 켤 것이 분명해요.
또 그때는 아마도 가을이란 이름을 버리고
봄으로 그 이름을 슬쩍 바꿀게 분명하죠.
잠은 지상에서 청하지만 어느덧 땅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그러다 기지개를 켤 때쯤 나뭇가지 위로 올라와 있는 잠은
아마도 가을의 잠밖에 없을 거예요.
자, 가을이 이제 막 잠을 청했으니 겨울 숲길을 조용히 걸어주세요.
그러나 숲길을 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간혹 약간 몸을 뒤채긴 해도
절대로 가을이 잠에서 깨는 법은 없을테니 크게 걱정은 마시구요.
가을이 잠에 들면서 이제 그 잠에 묻혀 계절이 겨울로 가고 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1월 16일 팔당 두물머리에서

4 thoughts on “가을의 잠

  1. 우리집 마당에도 가을이 막 잠들었는데…
    가끔 데니가 짖어도 조용한 걸 보면 깨지 않을 모양이야.
    너무 추워지면 하얀 이불을 덮어줘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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