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가로등 – 부천의 그녀

Photo by Kim Dong Won
2025년 6월 20일 서울 천호동에서

금요일이었고 비가 내렸다. 금요일은 사람들에게 암암리에 습관화된 술의 요일이다. 비는 빈대떡에 곁들인 막걸리를 생각나게 하면서 술을 부르는 날씨이기도 하다. 둘이 결합되면 술은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녀가 전화를 했다. 오후 다섯 시쯤이었다. 그녀의 퇴근 시간이다. “비도 오는 데 술 한잔 하는게 어때?” 나는 주저 없이 응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네.” 그녀가 장소를 지정한다. “광화문쯤에서 보는 게 어떨까?” 장소도 마음에 든다. “적당한 곳이네.”두 마디의 말을 주고 받는 것으로 곧장 약속의 합의에 이른 그녀와 나는 시간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그러면 광화문에서 보자”가 둘이 주고 받은 짧은 통화의 마지막 대화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약속 장소를 광화문으로 했으니 항상 그랬듯이 그 장소는 구체적으로는 광화문역 9번 출구에 자리한 광화문 라운지라는 것을. 언젠가 겨울에 그곳에서 약속을 한 뒤로 광화문에서의 약속는 몇 번에 걸쳐 같은 장소로 거듭되면서 광화문이라는 지명을 두고 우리가 하는 약속은 그 장소로 굳어져 있었다. 이제 광화문은 곧 그곳이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그곳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면서 사람을 기다릴 수 있고 추위의 위협이 없을 때는 바깥 공기에 그대로 노출이 된 작은 라운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릴 수 있어 좋은 곳이었다. 시간은 항상 일찍 온 사람이 기다리는 것이 우리 사이에서 굳어져 있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짧은 반바지를 청바지로 갈아 입었으며 내의 차림으로 있던 집안에서의 상의 옷차림새에는 분홍색 줄무늬가 엷게 세로로 흐르는 옷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긴팔의 옷이었다. 여름이었지만 지하철의 에어컨이 끌어내린 쌀쌀한 기온에 대처하려면 긴팔이 필요하다. 그것으로 나는 바깥에 나갈 준비를 모두 마쳤다. 비가 오고 있어 우산 하나를 골라야 했다. 접는 우산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우산이었다. 바람에 뒤집혀도 다시 돌아와 그 튼튼함을 어느 날 내게 증명하여 믿음을 주었던 우산이기도 했다.
항상 바깥에 나갈 때마다 챙기는 세 가지 물건을 확인했다. 지갑과 핸드폰, 그리고 에어팟이었다. 지갑은 돈낼 때 써야 한다. 핸드폰은 이제는 항상 몸 가까이 두어야 하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이다. 에어팟은 가는 동안 내 귀에서 주변의 소음을 막고 음악을 채워줄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참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에어팟이 없으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이 고역이 되는 경우가 많다.
8층의 아파트에서 하는 외출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 곧장 길로 나가는 수평의 걸음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현관을 나가면 엘리베이터로 일단 8층의 높이를 수직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높이를 수직으로 내리고 다시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골목으로 이어지는 아파트 마당이 있다. 수직을 수평으로 꺾으며 마당으로 나서 골목으로 걸음을 들여놓았다. 현관을 나설 때 우산을 폈다. 바깥에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가 굵었다. 우산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요란했다. 예보로 미리 알려준 날씨 소식은 이 비가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라고 했었다. 매년 유월의 장마철이면 만나던 낯익은 그 빗줄기였다. 비가 튀어올라 바짓단을 적시는 골목을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광화문으로 가는 동안 그녀가 문자를 보냈다. 시간은 여섯 시를 15분 정도 남겨놓고 있었다. “나는 30분 정도에 도착할 거 같아.” 그 30분은 여섯 시 30분이다. 나도 비슷하게 도착할 것 같았다. 빠르다고 해도 그저 조금 더 빠른 정도에 그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나도 대충 그 언저리에 도착할 것 같다고 답하지 않고 “올 때까지 기다릴께”라고 답했다. 그녀가 “상당히 빨리 도착하는 모양이네”라고 했다. 나는 “지하철 속도에 널 보고 싶은 마음을 얹어서 가고 있어”라고 보냈다. 그녀가 “아, 네넹. 그러시군요”라고 답을 보내왔다.
여섯 시를 갓넘겨 도착한 광화문역은 역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계단은 들어오는 사람들로 점령되어 있었고 나가는 사람들은 한쪽 켠으로 한 줄의 통행로를 겨우 얻어내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개찰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사람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으나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한쪽을 비워놓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도 내려오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이른바 퇴근 시간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거슬러 그녀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 개찰구를 나가는 데도 사람들이 비길 한참 기다려야 했다. 요즘의 개찰구는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함께 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은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올라 광화문역 9번 출구의 광화문 라운지로 간 뒤, 그곳의 자리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그때부터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와 광화문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내 시선을 거쳐갔다. 그렇게 하나하나 사람을 확인하던 시선이 친구에게서 멈추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반가움을 담아 시선을 교환하고 어디로 갈까를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제일 먼저 입에 오른 이름은 짜장면 집이었다. 중국집으로 가자는 얘기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마실 술은 고량주가 된다. 곧장 그 집으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종로빈대떡도 좋은데가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에 어울리는 집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시끄럽기도 하다. 거기로 가자는 말이 나오질 않자 근처의 술집 이름을 확인해 가던 우리에게 세 번째로 입에 오른 이름은 금성수퍼였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말은 수퍼지만 들어가면 사람이 다섯 정도 나란히 옆으로 앉는데 불과한 1층이 있고, 그래서 처음 온 사람들이 여기가 술집 맞나 하는 느낌을 갖는 순간 출입구의 통로를 아주 가까이에서 이어지는 계단으로 이끌며 사람들을 지하의 넓은 홀로 데려가는 맥주집이다. 어느 날 광화문에서 낮술할 집을 찾다 발견한 곳이었다. 우리는 대게 손님이 하나도 없을 때 들어가서 손님들이 홀을 다 비운 뒤에야 그곳을 나오곤 했었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시간은 길게 오래 흘렀다.
빈자리 없이 홀을 가득채우곤 하는 집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비가 그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래도 그곳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대개 모든 사람들을 비우고서야 자리를 일어섰지만 우리가 일어설 때 아직 한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술잔을 놓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을 모두 비우지 못했다는 것이 분하긴 했지만 너무 급하게 마지막 버스나 열차를 향하여 뛰지 않기 위해선 그 분함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버스 타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광화문역으로 향했다. 아직 마지막 열차가 30분쯤 뒤에 남아 있는 시간이었다.
동네에 도착하여 역을 나오며 버릇처럼 전광판의 수치로 시간을 확인했다. 날이 오늘을 모두 어제로 밀어내며 오늘을 내일로 넘기려 하고 있었다. 지척으로 다가온 내일의 시간을 확인하며 역을 나왔을 때 출입구의 바로 앞에서 가로등의 조명을 받으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집을 나와 그녀를 만나러 골목을 걸어갈 때도 비는 이렇게 내렸을 것이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며 내리는 비는 마치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자동차들 위로 뿌려지는 색종이 조각 같았다. 조명이 바꾼 느낌이다.
조명은 그렇게 대상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때로 느낌을 확연하게 바꾼다. 아니, 그것이 조명이 세상을 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우리의 눈과는 다른 것이다. 그 때문에 조명의 눈 아래선 비가 뿌려지는 색종이 조각의 환호가 된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색종이 조각을 뿌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일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오는 운동선수만 그런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그들이 꾸려가는 삶만으로 그런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것을 알려주려 색종이 조각으로 뿌려지는 환호처럼 비가 내린다. 가끔 우리가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며 거리를 걷고 싶은 것은 그런 환호의 순간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오는 날, 비가 온다는 이유로 그녀를 만나고, 서로 눈을 맞추고, 잔을 부딪치며 얘기를 나눌 때, 우리들의 시선 또한 내리는 비를 달리 밝힌 가로등의 조명처럼 바뀌고,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의 환호임을 체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시는 중에 그녀가 물었다. 너는 내가 어디가 좋아. 글쎄라는 말로 답을 모호하게 무마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지하철역 앞의 가로등 조명 앞에서 이제는 그 답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는 가끔 만날 때면 쏟아지는 비처럼 내게 오기 때문에 좋지. 그때마다 내 눈이 조명처럼 바뀌면서 그런 너를 환호로 체감할 수 있어서 좋지. 비가 올 때마다 그것이 삶에 보내는 환호가 된다면 우리는 비 내리는 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비오는 날, 나를 불러내는 그런 네가 있어서 좋고, 그런 너와 함께 술마실 수 있어서 더욱 좋지.
우산을 펼치고 내리는 빗소리를 귀에 담아 몸에 채우며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걷는 동안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걸음이 걸음마다 확인하고 있었다.
(2025년 6월 21일)

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