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점은
행복이 하나의 모습이 아니란 것이다.
때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들에겐 가장 큰 행복인 경우도 있다.
가령 나는 중국의 무협 영화를 아주 싫어하는 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 앞에서
한두 시간 동안 아주 즐거운 행복을 누린다.
그러니 행복이란 정해져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일요일날(4월 23일) 친하게 지내는 진표네 가족을 만나 함께 강화도로 놀러갔다.
진표 아빠 홍순일의 친구인 이승재가 합류하여
우리의 일행을 더욱 넉넉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에겐 모두 각자의 행복이 있었다.
가령 이승재를 생각하면
그의 가장 큰 행복은 그의 별장이 있는 숲속산새마을에서 듣는
새벽녘의 산새 소리이다.
그의 귀에 산새는 그저 우는 것이 아니라
알토와 소프라노로 나누어 이중창을 하며 아침을 깨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
그는 토요일이면 김포의 별장에 내려와 그 행복을 누리며
그 행복감으로 한주의 고단한 직장 생활을 견디고 이겨낸다.
홍순일과 송선자에 있어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단란한 가정이다.
아이 둘의 커가는 모습으로 채워지는 그 단란한 가정의 행복은
모든 사람들의 가장 부러운 꿈이기도 하다.
나의 그녀는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고 봉사할 때 가장 행복하다.
봉사할 때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웃음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요일날 나의 행복은 좀 특이했다.
나는 그들의 행복을 관찰하고 기록할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 행복은 매우 특이해서 내가 행복하려면 먼저 그들이 행복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날 하루종일 행복했다.
우리의 일행.
맨 왼쪽부터 이승재, 홍순일, 송선자, 그 앞은 하은이와 진표,
맨 오른쪽은 나의 그녀.
진표는 지금 맷돌춤을 추는 중.
나는 어디에 있냐구요.
여기, 바로 글쓰는 요 자리에 있죠.
그리고 요기는 고려산의 중턱쯤.
홍순일과 이승재.
둘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모두 같이 다녔다.
절친한 친구 하나를 둔다는 것만큼
큰 행복도 없다.
그러니까 진표는 두 사람이 가진
그 소중한 우정의 행복을 먹고 자라는 거다.
이렇게 함께 놀러가면
아주 색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잠시잠깐씩 남의 아들이
우리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
헤헤, 다들 요건 몰랐지.
우리가 잠깐씩 진표를 아들로 삼는다는 걸.
내 경험에 의하면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생각없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저 포즈도 어떤 생각에서 나왔음이 분명하다.
그걸 추측하며 아이들을 살펴보는 것도
아주 큰 재미 중의 하나이다.
내가 이 사진을 찍었으므로
나는 행복을 찍은 사진사이다.
캬, 행복을 찍은 사진사라…
아주 멋진 걸.
세상의 모든 꽃들이 그러하겠지만
진달래 또한 행복한 꽃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을 보고 기분좋은 사람이야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진달래를 보고 그렇게 즐거웠던 것을 생각하면
진달래는 행복한 꽃임에 틀림없다.
아무래도 진표 어록을 하나 만들던가 해야겠다.
진표가 말했다.
“아저씨, 저는 커서 진달래가 될 거예요.”
요 포즈는 커서 진달래가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 중 하나이다.
어릴 적에 이런 포즈로 수련을 해야
커서 진달래가 될 수 있다.
오, 다들 미모로 한몫하시는데.
동막해수욕장이다.
뻘밭 깊숙이 들어갔다.
그곳에서 진표가 가라사대,
“아저씨, 왜 바닷물이 없어요?”
지금은 바닷물이 빠져나갔지.
나중에 다시 들어와.
“그래요. 그럼 여기가 바다예요?
저는 바다속은 오늘 첨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갯벌이 아니라
“바다속”이었다.
용궁에 놀러온 기분이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
다른 용어로는 풀빵, 또는 판박이.
단란한 가족은 이상하다.
원래 네 사람이 모이면
4인4색이 되어야 하는데
단란한 가정을 들여다보면
4인1색으로 보인다.
그 점에선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친구는 거의 2인1색으로 보인다.
이렇게 모두가 각자의 행복대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
4 thoughts on “진표네와 함께 한 강화에서의 하루”
아직도 귓전에 SMOKE ON THE WAER가 맴맴도는것같아요. 사실 저는 형님의 음악취향이 우리와는 사뭇다를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것조차 동질감을 느꼈다는…,진달래바다에 흠뻑취한 즐거운 하루였어요. 월요병…없슴다.
나는 남들과 여행하면서 내 음악을 그렇게 크게 틀기는 처음이예요. 지난번에 김포갈 때도 사실은 음악을 갖고 갔는데 거의 틀지를 못했거든요. 고마워요, 내 취향에 따라준거. 그리고 시끄러운 거 참느라고 혼났을 하은이에게는 미안!
워~ 이렇게 보니 느낌이 또 다르네요.
온통 진달래만 남아있는데 그 속에 사람들이 있으니 진달래가 진달래가… 그냥 백그라운드가 되었어요.
역시 사람의 아우라는 위대하단 말이죠~ 어흥~
사람이란 정말 대단한 거예요. 자연 속에선 그래도 덜하지만 도시에 사람이 없다고 상상해봐요. 아마 곧바로 그 도시는 유령도시가 되버릴 거예요. 그런 사람의 위력은 적막한 자연에 사람이 하나 들어가 있을 때도 유감없이 느낄 수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