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11일 서울 대학로에서
SOS 댄스 페스티벌 입간판
●대학로에서 무용 공연을 보았다. 9월 11일에 대학로의 성균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모두 다섯 편의 무용이 선을 보였다.
●첫 편은 <일상의 조화>였다. 춤춘 이는 엄마라고 했고 무대 한 켠에서 음악을 연주한 이는 딸이라고 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 들은 얘기이다. 무용은 언제나 난해하다. 언어를 지우고 그 언어를 몸의 동작으로 대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된 몸은 우리가 생전 처음 접하는 언어여서 익숙하질 않다. 몸이 난해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 언어에 그만큼 익숙해져 있다는 얘기도 된다. 내게 기억에 남은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음악을 연주하던 이가 무대 한 가운데로 나와 누웠고, 안무자는 음악 쪽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방향이 아니라 그가 음악 속으로 들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은 딸의 세계이다.
●둘째 작품은 <크로노스> 였다. 대사가 가장 많았던 무용이었다. 우리가 아는 배우가 나왔다. 김현아이다. 나는 술자리에서 “죽음의 향기”나 ‘늙음,’ ‘젊음’과 같은 대사들 때문에 안무자의 동작이 젊은 시절의 기억처럼 보였다고 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셋째 작품은 <라포> 였다. 마음의 유대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 무용을 두 무용수가 몸으로 만들어내는 음악이라고 봤다. 대개 우리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고 생각하는데 그와 반대로 무대 위 두 무용수의 동작이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반대로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발을 까딱이는 동작이 그에 맞추어 어떤 비트를 가져온다. 두 마음의 유대가 동작으로 나타나고 그 동작은 음악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몸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니. 실질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보면 무용이 훨씬 재미나다.
●넷째 작품은 <물이 된다는 건>이었다. 동작에 해설이 따랐다. 덕분에 아주 이해가 쉬웠다. 사실 물을 체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에 몸을 담그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을 체험한다는 것과 달리 물이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무용이란 몸을 통하여 물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되도록 해준다. 물이 된 몸을 보았다. 물이 된 몸은 물로 우리의 몸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을 껴안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섯째 작품은 <무빙 그래디언트> 였다. 그래디언트는 그래픽에선 두 가지의 색이 선명한 경계를 갖지 않고 거의 경계없이 이어지는 경우이다. 가령 그 두 색이 흰색과 검정이라면 흰색에서 검정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것이 그래디언트이다. 무빙이라고 했으니 두 사람이 보여준 것은 움직이는 그래디언트이다. 결혼한 부부나 오래된 연인 사이가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이상하게 동작이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기 보다 경계없이 하나로 이어져 있지만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랑하는 사이의 관계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둘은 나중에는 나란히 선다. 그래디언트로 경계없이 연결된 두 색이 자기를 찾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공연 끝나고 얘기하며 술마셨다. 술은 집에 가야할 시간을 뭉개 버리면서 날을 넘겨 우리들을 새로운 날로 데려다 주었다. 밤새워 마시고 내일 아침 첫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까 했으나 그런 호기를 부리기에는 이제 내 나이가 너무 많았다. 택시타고 집에 왔다.
●객석에서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나도 이국에서 공연장을 찾고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독특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한국 뮤지컬의 광팬인 일본인 친구는 한국말을 모르니까 주로 리듬에 초점을 맞추어 뮤지컬을 보게 되고 그 점이 좋다고 한 적이 있다. 무용은 언어를 지우고 몸으로 새롭게 언어를 쓰는 예술 분야니까 어찌보면 객석의 우리는 모두 잠시 이국을 다녀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의 밤풍경도 좋았다. 택시 기사분이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내 시간을 방치해준 덕택에 조용히 혼자 가듯 밤을 내 것처럼 가지면서 집까지 갈 수 있었다.

2024년 9월 12일 서울 대학로에서 천호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