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밀려와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3년 2월 5일 속초에서


자주 속초를 가지만
바다에서 큰 변화를 느끼긴 어렵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높낮이의 변화입니다.
가령 홍수가 난 한강으로 나가면
물이 많이 늘었다는 느낌이 확연하지만
동해 바다는 언제 가나 거의 항상 일정해 보입니다.
물론 바다는 그 일정한 높이를 가지고
갈 때마다 내게 다른 풍경을 선물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의 어느 날, 나는 그녀와 함께
속초의 한 바닷가 민박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우리가 서울을 떠난 것은 2003년의 2월 4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강원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눈덮인 풍경이 이끄는대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구룡령의 턱밑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질 않고
구룡령 너머에서 우리를 부르는 동해의 파도 소리에 이끌려
그만 그 험한 고개를 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속초항의 위쪽에 있는 한 바닷가 민박에서 묵었습니다.
아침에 우리의 잠을 깨운 것은 창밖에서 스며든 파도 소리였습니다.
창을 열어보니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습니다.
눈은 여전히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우린 숙소를 나가 바로 앞의 바닷가를 한참 거닐었습니다.
그리고 5년 세월이 지나고 난, 며칠전, 바로 12월 18일입니다.
우린 딸이 친구들과 놀고 싶다며 집을 하루 비워달라고 한 청에 밀려나
갑자기 시간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시간을 어디에서 보낼까 고민하다 결국은 동해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전에 묵었던 바로 그 집에 다시 묵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5년전과 달리 이번에 우리의 잠을 깨운 것은
옆방에서 새어든 한 여자의 신음소리였습니다.
그렇다고 그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방해할 순 없어서
우리도 신음소리에 신음소리로 맞설 수밖에 없더군요.
그렇게 잠을 털어버리고 아침을 맞은 뒤 창을 열었더니
눈덮인 세상은 아니었지만
그때처럼 바다가 파도 소리를 일으켜 귓전을 씻어주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는,
5년전, 눈이 하얗게 덮인 바닷가를 걸었던 기억을 선명하게 갖고 있는 나로선,
여기가 우리가 묵었던 곳이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습니다.
바다는 나의 눈앞으로 아주 가까이 밀려와 있었습니다.
내가 거닐었던 그 바닷가의 모래는
이제는 파도가 연신 하얗게 덮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걸어갔던 길목까지 모두 바다가 차지하고 있어
이젠 바닷가를 거니는 건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우리가 슬쩍 넘어갔던
바닷가로 넘어가는 통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무로된 작은 사다리였는데 그런게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5년만에 찾은 그날 그곳의 동해 바다는
기억 속의 바다와 차이가 확연할 정도로 몸집이 불어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바다의 수면이 높아진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야 알 수 있겠지요.
숙소를 나선 것이 이른 아침이라 그걸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2004년에도 한여름에 그곳을 지나며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그때의 사진을 보면 한해 전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마도 동해 바다도 서해처럼 심하진 않아도
시간 맞추어 들고 나면서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을 갖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에 가면 그곳의 바닷가 사람들에게 물어볼 생각입니다.
5년전 눈덮인 바닷가의 풍경으로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았던 속초 바다는
이번엔 왜 저렇게 밀려와 있는 거지 하는 의문으로
내 마음에 새로운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마도 한번 더 찾아가면 그 의문은 저절로 풀릴 듯 합니다.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저만치 물러나 있거나
이번처럼 가까이 밀려와 있으면
어쨌거나 의문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될 테니까요.
난 다시 찾아갈 때까지 속초 바다를 한동안
그 의문 부호를 붙여 남겨놓기로 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2월 19일 속초에서

6 thoughts on “바다가 밀려와 있었습니다

    1. 처음에는 이게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인가도 생각해 봤는데 너무 엄청나게 밀려와 있어서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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