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속초에 가면 동명항을 기웃거리다 오곤 합니다.
동명항은 속초항의 바로 위에 있는 작은 항입니다.
아침 일찍 그곳으로 나가면
어부들이 갓 길어올린 싱싱한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12월 19일, 속초에 갔을 땐
동명항이 아니라 훨씬 위쪽으로 있는 봉포항에서
항구의 아침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항구에 그물이 몸을 길게 뻗고 누워있습니다.
그물은 펼치면 넉넉하고 풍성한 몸매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물은 육지에선 어지간해선 몸을 펼쳐놓는 법이 없습니다.
그물은 육지에선 거의 항상 몸을 가지런히 포개고 있습니다.
그물이 몸을 넓게 풀었다 다시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은
그물의 몸이 무수한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물은 몸을 풀 때 그 구멍을 열어 몸을 펼치고
웅크릴 때 그 구멍을 모두 몸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물이 구멍을 열어 몸을 풀어놓는 곳은 바다입니다.
어부가 그물을 데리고 나가 바다에 그 몸을 넉넉하게 풀어놓습니다.
바다는 제 품에 몸을 펼친 그물 속을 넘나들며
철마다 이름이 다른 물고기를 그 속에 잉태합니다.
요즘 동해 바다의 그물 속에선 양미리와 도루묵이 많이 나고 있습니다.
예전의 동해 바다는 오징어를 많이 잉태하기로 유명했었는데
그 소식을 물었더니 오징어는 요즘 많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항구의 여인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물 속에 잉태된 바다를 기다리는 중이기도 합니다.
배가 돌아옵니다.
바다가 그물 속에 물고기를 잉태하면
그물은 몸이 무거워집니다.
어부는 그물의 무거운 몸을 끌어올려 배에 싣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기다렸던 항구의 여인들이 배에서 그물을 받아줍니다.
남정네도 함께 거듭니다.
그물은 그렇게 어부의 손을 빌려
매일 바다로 나가 몸을 풀고,
또 어부의 손을 빌려 항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항구로 돌아온 그물은
항구의 여인들 손을 빌려 수태한 몸을 육지에서 풀어냅니다.
항구의 여인들은 육지로 거둔 그물 속에서
바다가 잉태한 물고기를 하나하나 걷어냅니다.
세상으로 내놓는 거지요.
그 물고기는 이제 세상으로 가
많은 이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
바다가 잉태하여 그물에게 내주고,
어부와 항구의 여인들 손을 빌려 우리에게 올 물고기입니다.
물고기의 이름은 도루묵입니다.
요즘 이 물고기가 많이 난다고 하더군요.
원래 이 물고기의 이름은 묵이었는데
처음엔 생긴게 못나서 버림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맛을 보았더니 그만이어서
원래 이름대로 다시 묵이라고 하라고 해서 도루묵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항구의 한 여인이 일러준 얘기입니다.
골라낸 생선을 줄로 엮고 있습니다.
20마리씩 묶고 있습니다.
이 생선의 이름은 양미리입니다.
어릴 때 내 고향 영월에선 양미리보다는 앵미리라고 불렀던 기억입니다.
겨울에 화로불에 구워서 많이 먹었죠.
오동통하게 알밴 양미리는 더욱 맛이 좋았습니다.
줄로 엮은 양미리는 바닷 바람에 말립니다.
속초로 내려오던 날, 이 양미리 한 접시를 시켜 술을 한잔 했습니다.
한 접시에 만원이더군요.
항구에선 20마리를 한 줄로 엮어 2천원에 팔고 있었습니다.
항구의 한켠에선 한 어부가
그물을 길게 펼쳐놓고 있습니다.
바람은 아무리 그물의 속을 드나들어도
무엇하나 잉태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텐데
왜 어부는 그물을 길게 펼치는 걸까요.
그건 바로 그물을 손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물은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구멍이 튿어지면
바다가 그물 속에 물고기를 잉태하기 어렵습니다.
어부는 그물의 몸을 정성스럽게 손봅니다.
또다른 한켠에선
물고기를 다 골라낸 그물을 이제 가지런히 정리합니다.
부부가 함께 줄을 당기며 그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부부의 삶이란
그물을 잘 정리해 두었다가
바다의 잉태를 거두어들이는 산파의 삶입니다.
좀 길다 싶은 그물엔 여럿이 손길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몸을 풀었던 그물은
이제 다시 몸을 가지런히 포개고
몸을 길게 눕히고 있었습니다.
잘 포갠 그물은 돌돌 말아 둡니다.
육지에선 그렇게 그물을 말아두어야 합니다.
그물을 말 때, 바다의 잉태를 꿈꾸는 그물의 꿈도 함께 돌돌 말립니다.
잘 말아놓은 꿈은 다시 바다로 나가는 날까지
하나 흩어짐이 없이 그 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아침에 항구에 나가면
배가 거두어갖고 돌아온 그물 속에서
바다가 잉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항구의 아침은 그물 속에서 그 잉태된 바다를 거두어
세상으로 내보내는 삶으로 분주합니다.
그 분주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물은 다시 몸을 돌돌말아
어머니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웅크립니다.
아마도 이제부터 다시 바다로 나갈 때까지
눈을 붙이고 달콤한 꿈을 꿀게 분명합니다.
몸을 넓게 풀어 바다를 잉태하는게 그 꿈일 것입니다.
햇볕이 환하게 항구로 들고 있었습니다.
5 thoughts on “그물 이야기 – 속초 봉포항에서”
히야~ 동명항 다녀오셨군요, 동원님?
그물, 바다, 도루묵, 앵미리(ㅋ), 보니, 저도 또 후다닥 가고싶어집니다.
그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잉태’하나요? 아름다운 꿈이네요.
도루묵 구이를 못 먹어 봤어요. 꼬옥~ 먹어 봐야쥐… ^^
그물들, 잘 보았어요. 굿~ b
엇, 봉포항인디…
오랫만에 찾은 바다인데 좋더군요.
어부들이 그물에 걸린 고기를 칼로 탁탁 빼내는걸 보면서
저 큰 어망을 매일 손질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거든요.
저 도루묵 제가 너무 좋아라 하는 생선이예요.
특히 알이 꽉찬 도루묵찌게나 조림은 정말 맛있거든요. 알이 톡톡…
저 어렸을때 울엄마가 많이 해주셨어요
서해에 갔을 때는 여러 번 보았는데
동해에선 그물 수리하는 걸 이번에 처음 본 것 같아요.
매일 속초에서 빙빙 돌며 놀았는데
이번엔 속초 위쪽으로 올라가서 진부령을 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