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청간정 구경

속초에서 고성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청간정이란 정자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큰 길을 버리고 바닷가 쪽으로 아주 잠깐 나가야 합니다.
속초를 맴돌던 발길을 버리고 북쪽으로 향하던
우리는 그 길에서 바로 그 청간정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날은 12월 19일이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나무가 허리를 이리저리 휘며 서 있는 숲길을 따라 잠시 오르니
저만치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청간정이란 현판이 보입니다.
푸를청에 산골물간자더군요.
맑은 물이 흐르는 푸른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청간정의 아래쪽으로 작은 시냇물이 하나 흘러가는데
그 시냇물을 바로 청간천이라고 한답니다.
시냇물이란 말엔 고개를 끄덕이겠는데 골짜기의 느낌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멀리 설악산이 보이니까
그 설악산의 푸른 골짜기를 생각하면
정자의 이름에 큰 무리는 없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겨울이어서 그런지
정자 이름의 푸를청자는 바다와 더 어울려 보입니다.
겨울이라 한참 아래쪽 남쪽에서 뜬 해가
정자의 위가 아니라 기둥 아래쪽으로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른 아침,
정자와 거의 눈높이를 똑같이 맞댄 햇볕은
정자 기둥의 그림을 길게 늘여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규원식으로 말하면
겨울의 아침 나절에 고성 청간정의 정자 기둥은
제 몸의 그림자를 꺼내 길게 풀어놓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그 그림자를 몸속으로
슬쩍 말아넣을 것이 분명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자에 올라 내려다보니 곁을 흐르는 시냇물에
오리떼가 날개를 접고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적당히 사람의 인적을 가려주기 때문인지
바로 눈밑인데도 오리들은 거의 경계의 빛이 없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청간정의 바로 아래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넓게 내려다 보입니다.
푸른 바다입니다.
바람이 등을 밀 때마다 바다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속으로 몸을 묻고 낮게 엎드린 바위의 등을 타고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름이었다면
청간정에선 앞은 푸른 바다,
뒤는 푸른 설악이 보일 것 같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청간정의 아래쪽 바닷가엔 새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사실 이곳의 바다는 사람들이 출입할 수가 없습니다.
철조망이 높게 쳐져 있거든요.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엔 새들이 많습니다.
철조망이 보기엔 흉하지만
새들은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모든 새들이 바닷가에서 아침 햇살을 쪼이고 있는데
그 중 한마리는 모래톱에 고인 물 속에서 열심히 몸을 씻고 있었습니다.
자맥질을 해가면서 말이죠.
모래톱에 고인 물은 새에겐 특별한 목욕물인가 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자의 2층 마루에도 기둥의 그림자가
길게 몸을 눕히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2층으로 올라오는 입구로 몸을 눕히는 바람에
“어이쿠” 소리를 내며 아래쪽 땅바닥으로 쑥 빠져 버렸습니다.
내려갈 때 그림자가 허리를 일으킬지도 모르니
허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저만치서 올라옵니다.
아침의 숲길은 한적합니다.
그 때문에 길을 걸으면 길을 독차지한 느낌이 들곤합니다.
길 하나를 그녀의 걸음걸이로 가득채우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한적한 아침의 숲길은 바로 그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도 청간정의 기둥 옆에서 그림자 놀이를 합니다.
그림자 놀이의 가장 좋은 점은
역시 키를 길게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제 키를 마음대로 키우고 싶은 욕망이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종종 몸에 갇힌 우리 키의 경계를 훌쩍 타넘고 싶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실은 그림자가 발끝을 세우고 몸을 길게 뻗습니다.
갑자기 우리의 키가 시원해 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려오다 보니
가지에 햇볕이 환하게 걸려있었습니다.
가지 사이가 숭숭 비어 무엇하나 걸릴 것 같지 않은데
빛은 그 가지 사이를 새지 않고 환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나뭇가지에겐 빛이 풍성하게 낚인 아침나절입니다.
아마도 여름이었으면 그 빛이 모두 잎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뭇가지는 겨울에 비로소 볕을 마음껏 호흡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다 내려와서 좀 심심하다 싶으면
‘청간정 가는 길’이란 표지를 보고 한마디 하는 것도 좋습니다.
길이 넓던데… 그렇게 가느다란 길은 아니었어…
게다가 올 때는 가는 길도 아니도 거기서 오는 길이던데…
그러자 그녀가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머리 굴릴 거냐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도 피식 웃긴 했습니다.

7 thoughts on “고성 청간정 구경

  1. 이스트맨님,forest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
    MerryChrist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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