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삭임으로 듣는 봄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1월 14일 서울 천호동에서
날 좋은 날의 햇볕 가득한 마을 풍경

겨울을 애정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겨울과의 관계를 물으면 싫다 쪽으로 기운다. 누구도 사랑을 겨울의 몫으로 내주려 하지 않는다.
겨울과 달리 다른 계절은 충분히 사랑할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봄은 얼었던 땅을 뚫고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는 계절이다. 생명에는 우리들을 흥분시키는 기쁨이 있다. 황량한 가지에서 얼굴을 내미는 연두빛 잎사귀는 우리가 만나는 여러 꽃들과 함께 봄의 상징이다. 풀과 잎들이 살결의 색조로 삼는 초록은 우리들이 봄을 좋아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여름은 또 어떤가. 여름은 계절 가운데 가장 화려한 계절이다. 꽃이 화려하고 사람들의 옷 색깔도 가장 밝아진다. 옷의 길이도 짧아진다. 거리와 바닷가에 하루 종일 햇볕이 넘친다. 낮의 길이 또한 가장 길어서 가장 오래도록 햇볕과 마주할 수 있다.
가을은 뭔가 슬픈 계절이다. 그러나 그 슬픔은 단풍의 화려함과 함께 온다. 죽음을 싣고 가는 한국의 꽃상여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인간의 죽음을 계절 가을로 생각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가을에는 또 풍요가 있다. 우리에게 그 풍요는 추수를 기다리는 가을논의 황금빛으로 익숙하다. 어디든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겨울은 어떤가. 낮은 짧고 날씨는 혹독하다. 추위를 막아야 하는 우리는 옷을 두껍게 입는다. 어떤 날의 우리는 옷이 너무 두꺼워 마치 옷속에 매장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겨울은 따뜻함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햇볕이 있는 곳을 찾게 만든다. 마음은 계절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밖에 나가면 추위가 냉기의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우리의 얼굴을 할퀸다. 장갑을 끼고 두꺼운 옷을 입어도 손목과 소매, 목덜미의 빈틈으로 슬그머니 끼어든다. 바깥을 걸으면 손발이 시리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겨울날이 역설적으로 집안을 낙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밖을 나갔다 들어온 우리는 집을 들어선 순간 집안에 모여있는 온기에 움츠러들었던 몸을 편다.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나면 집은 겨울을 막아내 나를 지켜주는 완벽한 보호 공간이 된다. 햇살은 보기만 해도 눈부시고 가끔 목도리와 장갑을 벗게 해주는 놀라운 따뜻함을 선물하기도 한다. 겨울이라 해도 걷다 보면 땀까지 나는 볕이 좋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겨울 추위의 그 적의를 다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너그러운 마음이 된다. 겹쳐 입은 여러 겹의 속옷과 털 스웨터, 두꺼운 양말도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다. 우리가 겨울이 아니면 언제 그런 옷을 입어 보고 양말을 신어 보겠는가.
겨울의 날씨는 우리에게 적대적이다. 하지만 아웃도어 의류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악천후’란 없고 단지 우리가 옷을 잘못 입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겨울의 우리는 추위에 등을 돌리고 따뜻함을 찾는다. 집안은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대표적 공간이다. 실내의 따뜻함 속에 몸을 웅크려도 아무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집구석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좀 바깥에 나가 활동을 하라는 잔소리를 들었을 행동도 겨울에는 다 용납이 된다. 좋은 책을 손에 들고 몸을 웅크리고 활자에 오래도록 시선을 내줄 수 있는 계절이다. 같은 시간에 음악을 들어도 좋다. 따뜻한 음료를 한 잔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도수가 적당한 알콜 음료가 곁에서 함께 해주면 더 좋은 시간이 된다. 집안에서 웅크리고 보내는 시간이 얼마든지 용납되는 계절이 겨울이다.
요즘은 한파가 올 때마다 나라에서 보내는 재난문자가 거르지 않고 도착한다. 문자는 날씨가 몹시 추우니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집안에서 꼼짝 말라고 한다. 집안에서 웅크리고 지내는 시간을 나라에서 장려한다. 다른 계절에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겨울엔 어디를 나가도 황량하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 철새가 돌아오는 계절이다. 특히 내게는 가까운 팔당이나 두물머리, 퇴촌으로 나가 고니의 우아한 비행을 볼 수 있는 계절이다. 하남의 산곡천에서 만나는 검은등할미새도 겨울 철새다. 서울 도심의 창경궁 춘당지에선 원앙이 떼를 지어 헤엄친다. 여름의 춘당지엔 계절을 따지지 않고 아예 이 땅에 눌러사는 오리들밖에 없다. 멀리 가지 않고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이나 전철에만 몸을 실어도 만날 수 있는 겨울 철새가 많다. 실내가 안전한 계절이긴 하지만 겨울에도 밖의 시간이 즐거울 때가 있다.
한파 경보의 문자가 날아들 때의 겨울 날씨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파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며칠 지나고 나면 다시 한파는 걸음을 뒤로 물리고 따뜻한 햇볕이 우리 곁에 함께 해준다. 지금은 먼 옛날 얘기지만 한 때는 이 땅에서 추위와 따뜻함이 일주일을 사흘과 나흘로 나누어 가지며 겨울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그 주기를 네 자로 새겨 삼한사온이라고 했었다. 마치 소나기가 지나가듯 겨울 한파도 겨울의 한 순간을 으름장 놓으며 지나간다. 그리고는 여름날,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 소나기와 함께 얼굴을 내미는 햇볕처럼, 다시 따뜻한 햇볕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그때면 많이 추워서 얼어죽는 줄 알았다고? 라고 되물으며 그냥 잠시 겨울이 그 위력을 과시한 것 뿐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겨울처럼 두 얼굴을 한 계절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겨울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추위가 지배하는 계절 같지만 의외로 겨울엔 따뜻하게 우리를 감싸는 것들이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엔 벗어던져 시원함을 찾아야 하지만 겨울에는 감싸서 따뜻함을 내 곁에 둘 수 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겨울은 느와르풍의 영화와 같은 계절이다.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계절을 지배하지만 우리는 또 그런 영화가 좋을 때가 있다. 느와르 영화를 지배하는 조도는 어둡지만 어둠이 영화를 완전히 지배하진 못한다. 우리는 영화를 지배하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곤 한다.
겨울도 그렇다. 추위가 지배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따뜻함을 찾아낼 수 있다. 햇볕이 부족한 날들이 이어지지만 오후의 길거리에 길게 펼쳐진 우리들의 긴 그림자는 겨울 추위 속에서도 햇볕이 여전함을 일깨운다. 남향집에선 집안의 거실을 깊숙히 파고드는 정오의 햇볕이 잠시 봄을 착각하게 만든다. 빈 가지에 얹혀 반짝거리는 햇볕은 또 얼마나 빛나던가. 거실에 쳐둔 커튼의 색상도 겨울에는 더욱 눈부시다. 날 좋은 날의 뒷베란다에서 내다 보면 마을에 온통 햇볕이 가득이다. 추위와 어둠의 계절이어서 날씨는 내려 앉고 밤은 길지만 그 추위와 어둠이 하루 내내 세상을 지배하진 못한다. 겨울은 겨울이지만 곳곳에서 우리에게 봄을 속삭인다. 속삭임으로 듣는 봄, 그것이 겨울의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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