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오대산 기행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월 15일 동서울에서 진부가는 버스 속에서

겨울이면 오대산을 찾곤 했다. 서울에서 멀어 이른 버스를 타야 한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6시반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겨울의 그 시간은 아직 세상이 컴컴하다. 아침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디나 밤이다. 한강을 건널 때 다리에 줄지어선 가로등이 서울을 떠나는 버스를 어둠 속에서 배웅한다. 빛의 밀도가 높은 도시의 밤풍경을 뒤로 하고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면 길은 어두워진다. 그래도 오대산까지 가는 길은 자주 다녔던 고향가는 길과 겹쳐 어둠 속에서도 많이 익숙하다. 산의 윤곽만으로 어디쯤인가를 짚어내곤 한다. 길의 표지판이 그 일을 돕는다. 내려가다 보면 버스가 이천을 지나 원주를 향해 달리기 시작할 때쯤 지난 밤에 어둠 속에 잠재웠던 산을 하루가 이제 아침이니 일어나라 채근한다. 그 채근 속에 산은 어둠에 묻혀 있던 산의 윤곽을 희미하게 내 보인다. 산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의 밤버스로 여행을 시작하면 중간에 산이 일어나는 모습을 버스의 차창으로 확인할 수 있다.
버스는 진부행 버스이다. 진부에 도착하면 이제 버스가 출발할 때의 그 농밀했던 밤은 어디에도 없다. 밤을 빠져나와 먼길을 내려온 걸음을 진부에선 아침이 맞아준다. 힐끗 시간을 살펴보면 8시반쯤 되어 있다. 정류장 건물에서 진부의 버스 터미널임을 알리는 글자들은 일부분이 지워져 있다. 글자를 지운 것은 세월이다. 글자는 반짝반짝하는 선명함으로 그 시간을 시작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군데군데 벗겨지고 지워진다. 진부는 ㅈ부가 되고 정류장은 징류장으로 바뀌고 만다. 그래도 우리는 세월에 굴복하지 않고 지워진 글자를 언제나 처음 그대로 복원하여 읽어낸다. 우리에겐 세월이 지운 것을 항상 처음 그대로 복원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진부에서 오대산을 가려면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9시쯤 그 버스가 있다. 놀랍게도 나 말고도 버스 손님이 있다. 강원도 버스는 체인도 안감고 오대산으로 가는 눈덮인 길을 잘도 간다. 버스는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가서 그곳에서 멈춘다. 길을 계속 이어지지만 버스는 그곳까지밖에 가지 않는다.
오대산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품고 있고 산의 중턱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을 두고 있다. 겨울의 오대산은 찾아갈 때마다 항상 눈에 덮여 있었다. 오대산 자락에는 동해로 넘어가는 고개로 진고개가 있다. 진부에서 오대산으로 가는 길을 잠깐 같이 하다 길을 오른쪽으로 나누어 들어서면 진고개를 넘어 동해로 가게 된다. 진고개의 고갯길을 넘어가면 주문진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깜깜한 밤에 이 고개를 넘어간 적이 있다. 넘어가다 길에 차를 세우고 불을 껐다. 찻속에 함께 타고 있던 바로 옆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내가 경험한 가장 진한 농도의 어둠이었다. 그 진고개를 넘어 아침의 주문진항에서 오징어회를 사고 그것을 찻속에서 조금씩 먹어가며 동해를 따라 남쪽으로 차를 몰아간 날이 있었다. 오대산으로 가는 버스는 진고개 방향을 버리고 왼쪽 길을 택하여 갈라선다.
널리 알려지기로는 월정사가 더 알려져 있지만 내가 친숙한 것은 상원사와 오대산의 중턱에 있는 적멸보궁이다. 겨울의 상원사는 처마밑으로 고드름을 길게 드리우고 있다. 항상 절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눈덮인 세상은 새들에겐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배고픈 세상이다. 적멸보궁의 한켠에선 스님들이 새들에게 내준 모이들이 보이고 예외없이 새들이 그 모이를 쪼아먹고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뜸한 편이지만 가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오대산의 정상은 비로봉이다. 산정상의 표지석은 내가 1563m의 높이에 서 있다고 알려준다. 다시 방향을 꺾어 상원사로 내려가야 하지만 나는 산을 올라올 때 함께 했던 방향의 관성을 이길 수 없다는 듯 북대사 방향으로 향한다. 방향은 꺾이지 않고 계속 앞으로 향한다. 앞으로 향하면서도 조금씩 높이를 낮추던 걸음은 북대사에 이르면 차가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상원사이다. 산을 한바퀴 돌아 내려온 느낌이 든다. 내려오는 길에 상원사가 멀리 산의 품속에 안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상원사에서 진부 터미널로 나를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린다. 가끔 나를 데려가려 온 버스가 그 늦은 시간에 사람을 그곳에 내려준다. 북대사의 스님이다. 스님은 내가 내려온 길을 터덜터덜 걸어 절로 향하고 나는 스님이 타고온 버스에 몸을 싣고 진부로 나간다. 늦은 시간에 스님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등을 진다. 진부 터미널에 도착하면 시간은 저녁 여섯 시가 되고 그곳은 다시 서울을 떠날 때의 어둠이 채우고 있다. 그리고 밤버스가 나를 싣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아침의 밤은 벗겨졌지만 서울로 돌아갈 때 버스가 헤치고 가는 저녁의 밤은 점점 깊어진다. 대개 사람들은 잠을 청하지만 나는 돌아오는 내내 차창의 어둠에 시선을 둔채 잠들지 못한다. 어둠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안기지만 시인 오규원의 시선에 익숙한 내게는 오대산을 다녀올 때의 밤버스 차창 밖에 어둠이 지천인 세상이 있다. 시인 김점용에게 밤은 검은 고양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어 세상을 까맣게 채운 시간이기도 했었다. 나는 어둠을 실컷 볼 수 있고 고양이들이 뛰노는 그 시간의 풍경이 아까워 잠시도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밤에 집을 나서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의 여정으로 오대산 여행이 마무리 된다. 어둠이 나를 낮으로 내보냈다 다시 어둠 속으로 거두어 들인다. 돌아오면 불을 밝힌 집이 반겨주고 따뜻한 잠 속으로 나를 눕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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