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암 예술촌 – 6일간의 타이베이 여행 Day 2-3

타이베이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타이베이의 평범한 마을로 검색을 했더니 나온 곳이 보장암 예술촌이었다. 어떤 이가 남긴 여행기에는 하루 종일 걸어다녔는데 사람을 딱 한 명 봤다고 했다. 관광지는 아닌 셈이었다. 동네의 한가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는 얘기도 곁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내가 이곳을 가보겠다고 하자 그녀와 딸도 함께 가기로 했다. 히로타의 안내로 이곳을 찾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타이베이에 살고 있는 히로타가 길안내를 했기 때문에 구글맵을 꺼내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세상 편했다. 역을 나와 조금 걷다가 언덕길을 오르자 보장암(寶藏巖) 표지가 나왔다. 여기선 바오창옌이라고 읽는 듯하다. 영어로는 보물 언덕(Treasure Hill)이라고 되어 있다. 언덕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을 넘어가자 넓은 주차장을 따라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흘러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길을 걷다 노랗게 물든 잎 하나를 만난다. 한국의 가을은 시월의 것이다. 대만에선 3월도 가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올려다 보면 나무는 마냥 푸르다. 가을의 나무가 아니다. 한국의 가을은 한 나무의 나뭇잎을 모두 물들이며 전면적으로 오지만 대만의 가을은 3월에도 오는 대신 점조직화 되어 있다. 때문에 잎 몇 개를 물들여 가을을 갖고 그 가을 한 잎을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의 담장에 걸어놓는다. 점조직화되어 3월을 찾는 가을을 대만에서 처음 만났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붉은 꽃이 많다. 한국의 3월엔 붉은 꽃이 드물다. 붉은 꽃은 여름쯤 되어야 만날 수 있다. 태양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꽃이 밸 때 붉은 꽃이 핀다. 대만에선 3월의 햇볕이 벌써 우리의 유월처럼 뜨겁다. 꽃의 이름은 야트로파 인테게리마(Jatropha integerrima)라 하며 ‘붉은 산호초’라고 불리기도 한다. 점조직화된 가을도, 여름처럼 뜨거운 3월도 처음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에서

보장암을 작은 사찰이었다. 예술촌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 사찰이 있다. 부처님이 많은 일을 하지만 이번에는 예술촌에 이름을 빌려주는 일을 하셨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에서

보장암의 부처님은 모두 작은 부처로 나뉘어 빛이 되어 계셨다. 중생의 끝없는 번민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 몸을 거대하게 부풀릴 수밖에 없었던 부처를 버리고 수많은 아주 작은 부처로 몸을 바꿔 빛을 모으고 계셨다. 그 중 한 분을 내 마음에 들이면 항상 나와 함께 다니며 내 길의 빛이 되어 주실 것만 같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에서

절의 바깥에 햇볕이 좋다. 나무를 심어 만들어놓은 푸른 담장의 위로 햇볕이 눈부신 띠를 이어 흐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예술촌을 걷는 데 갈라진 담장의 틈새에 삶의 터를 잡은 푸른 풀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갈라진 틈은 담장의 상처이다. 우리에게도 상처는 있다. 그 상처를 달래주는 것은 푸른 생명이다. 봄마다 새로 나는 싹들은 단순히 계절만의 현상은 아니다. 틈새에서 고개를 내민 푸른 풀도 그렇다. 아픔과 고통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생명은 자란다고 말해주려 푸른 풀이 일부러 그런 곳에 자리를 잡는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사람들은 그 삶이 이미 푸른 풀이다. 어떤 상처도 생명을 가꾸어 내는 삶의 푸른 풀을 삼키진 못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예술촌이라 작가들의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가끔 작가의 의도를 빗나가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한 작품 앞을 지나며 머리에도 부황을 뜨는 건가 했다. 밤에는 작품에 불이 들어와 느낌을 완전히 달리하는 듯 싶다. 작품으로 연결된 전기선이 눈에 띄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풀들은 집을 찾아왔으나 집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바깥의 바람과 햇볕이 좋았기 때문이다. 집은 풀들 덕택에 풀들이 바로 문밖에서 푸른 계절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집이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계단 어귀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걸음을 반겨주었고 내려온 걸음이 떠날 때는 배웅을 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바나나꽃이다. 꽃이 엄청 크다. 꽃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대개 나무가 가진 푸르름은 올려다 보아야 한다. 보장암 예술촌에선 계단을 올라 높이를 높이면 푸른 녹음과 수평으로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투명한 차양막 처마에 먼지가 잔뜩 끼어있다. 비바람을 막아주며 감내한 오랜 세월이 그 먼지들을 차양막에 남겼을 것이다. 먼지는 지저분해 보인다. 하지만 햇볕은 그 먼지가 오랜 세월의 수고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지저분해도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수고를 다 안다며 햇볕이 차양막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세상의 모든 혐오와 차별은 물러가라 시위하고 있었다.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혐오와 차별에 맞설 때 우리는 모두 달라도 또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풍경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의 생각은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의 풍경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이국의 풍경은 우리와는 다르다. 타이베이에 와서 한국에선 한번도 보지 못한 나무를 자주 보았다. 용수(榕樹)라고 했으며 영어로는 반얀 트리(banyan tree)라고 부르는 듯하다. 나무는 마치 뿌리가 지상을 뚫고 올라가 줄기를 이룬 듯했다.
한국에서 나무의 뿌리는 땅속에 묻혀 보이질 않는다. 때문에 뿌리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땅속에 숨어서 나무를 키우는 보이지 않는 양육자가 된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용나무는 뿌리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흔든다. 이곳에선 땅속에 갇혀 지냈던 뿌리가 탈출을 꿈꾸고 그 꿈을 이룬 것이 나무가 된다. 생각도 풍경이 긋는 한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국의 풍경은 우리를 가둔 우리의 풍경에서 벗어나 언어적 사고를 달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기회는 아닐까.
이국의 풍경이 감각을 새롭게 일깨운다. 여기저기 땅속을 탈출한 뿌리들이 나무라는 이름으로 이룬 지상의 꿈이 푸르렀다. 용나무는 세상의 모든 나무가 속박을 탈출한 해방이라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육각의 조형물 옆에서 연인이 사랑을 속삭인다. 육각의 조형물엔 나무의 푸른 잎이 가득 담겨 있다. 사실은 담긴 것이 아니라 거울과 같은 육각 조형물의 표면에 비치고 있는 것이다. 조형물은 비친다는 것과 담긴다는 것이 동일어라고 말한다. 사랑할 때 너는 내 눈에 비치고, 그때 내 눈에 비치는 것으로 너는 내게 담긴다. 비치는 것과 담기는 것이 동일한 것임을 알려주는 조형물 옆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가 서로에게 담기고 있었다. 사랑할 때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햇볕은 양지를 만들고 집은 그늘을 만든다. 햇볕 따가운 날엔 그늘이 우리의 피신처가 된다. 집이 만들어준 피신처가 시원했다. 집은 집의 그림자로 연장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사실적으로 보자면 콘크리트 틈새에 푸른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로 사실의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 그리하여 사실의 세상을 뒤흔들어 보면 푸른 풀들이 콘크리트 세상에서 길을 찾아내 푸른 걸음을 걷고 있다. 풀들의 걸음으로 콘크리트 틈새는 푸른 길이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더워서 땀이 나고 좀 지쳤다. 동네의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마시며 쉬었다. 2층에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2층으로 올라오는 입구 쪽의 한켠에 서로의 윤곽을 겹쳐 옆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있었다. 하지만 옆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동자는 동시에 앞의 나를 보는 눈동자이기도 했다. 옆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하나씩 모으면 동시에 앞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가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음료를 마시며 잠시 지친 걸음을 쉬었던 동네의 카페는 2층에 사각의 창을 갖고 있었다. 푸른 녹음이 담긴 창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나비를 만났다. 나비의 이름은 라임 스왈로테일 나비(Lime Swallowtail Butterfly)라고 했다. 스왈로테일(Swallowtail)은 영어로만 보면 제비꼬리란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이름을 영어로 가진 나비가 호랑나비가 된다. 아마도 우리는 무늬때문에 호랑나비라고 부른 듯하다. 문양이 익숙하면서도 또 다르게 보이는 나비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약간 붉은 빛의 가을을 만났다. 역시 이번에도 점조직으로 만나는 가을이다. 나무는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차 있었고 어디에서도 전면적인 가을의 징조는 찾을 수 없었다. 대만에도 가을은 있지만 그 가을은 점조직으로 몇 장의 잎을 통해 우리의 앞으로 슬쩍 잠입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동네의 집들에서 성씨를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씨의 집도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의 성씨는 아니고 원래 이 집에 살던 사람의 성씨라고 한다. 대만에도 이씨가 많냐고 히로타에게 물었더니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우산이 창의 바깥에 걸려 있다. 이해가 간다. 나도 비오는 줄 모르고 바깥에 나갔다가 우산을 가지러 집안으로 다시 들어간 적이 있다. 이 집은 그럴 필요가 없다. 우산이 바깥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그냥 걸려있는 우산을 꺼내서 펼치면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레드베인 아부틸론(Redvein Abutilon)이다. 한국에서도 아부틸론을 온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아부틸론은 문양이 처음보는 문양이었다. 바람이 흔들면 딸랑딸랑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두 송이의 괭이밥(Wood-sorrel)을 본 것이 아니라 괭이밥 두 송이의 대화를 들었다. 오늘 날이 참 좋다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보장암 예술촌에서도 한국을 만났다. 이번에는 어느 집의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뒤에서 에스파의 윈터를 봤다. 어디를 가나 K-팝을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벽의 한자가 가정전영원(家庭電影院)이다. 전영원은 전기로 영상을 보여주는 곳이란 뜻으로 영화관을 가리킨다. 밤에는 이 담벼락이 영화관의 스크린 노릇을 하는가 보다. 밤에 와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나무의 자태가 좋았다. 우산을 꽂아 놓았는데 가지가 나고 잎이 나더니 나무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바우히니아 블라케아나(Bauhinia blakeana)라는 꽃이다. 나무는 매우 컸으나 가지를 내려 아주 가까이서 꽃을 보여주었다. 홍콩의 국화여서 홍콩 오키드 트리(Hong Kong Orchid Tre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꽃이 나비와 비슷해서 나무는 나비나무(Buttertly Tree)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보장암 예술촌에서

길게 벽화가 그려져 있던 예술촌의 입구를 다시 걸어나간다. 예술촌에서의 시간이 즐거웠다. 셋의 걸음이 가볍다. 예술은 우리의 일상도 예술로 물들인다. 때문에 보장암 예술촌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예술적으로 보였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따로 있지 않고 현실에 내재된 예술적 측면을 감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