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6일을 예정하고 온 여행이 사흘째를 맞았다. 벌써 사흘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로 여행 일정의 절반이 지나간다. 절반이나 남아 있는 여정에도 불구하고 벌써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히로타는 우리를 디화 스트릿으로 데려갔다. 숙소에서 아주 가까워 숙소를 나와 걸어갔다. 디화 스트릿은 한자로는 적화가(迪化街), 그러니까 디화지에로 표기되어 있었다. 19세기부터 자리한 거리로 역사가 깊고 전통 상점이 많다. 설날에는 시장에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고 하는 데 우리가 간 날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타이베이에 머무는 동안 거리의 오토바이는 항상 내 눈길을 끌었다. 신호등을 앞두고 있을 때 거리의 맨앞에 함께 모여 있는 것도 이채로웠다. 오토바이는 뭉쳤다 흩어지곤 했다. 마치 시위라도 하듯 모이면 신호등이 붉은 신호를 푸른 신호로 바꾸어 모여있는 그들의 시위에 응하며 길을 열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나무는 줄지어 서서 햇볕을 감당하며 그늘을 만든다. 그리고 여름날의 그늘은 우리의 몫이 된다. 햇볕은 모두 나무의 몫이다. 나무가 햇볕을 자신의 몫으로 챙길 때 우리 몫의 그늘이 함께 생긴다. 내가 여행을 하며 사진과 그에 곁들이는 텍스트를 챙길 때, 누군가는 그 사진과 글을 나무의 그늘 삼아 쉴 수 있으면 좋겠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길가에서 작은 꽃들을 보았다. 돌담 아래서 자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바꾼다. 꽃들이 돌담을 배경으로 꽃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행은 우리의 생각을 바꿔준다. 여행이 가진 낭만의 힘이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공원의 주차장 안내판에 007이라고 들어와 있었다. 하필 차량 아이콘 옆에 007이라고 찍혀 있었다. 나는 우와, 007이래, 제임스 본드가 차대고 있는 모양이다 라고 했다. 곁에 있던 딸이 주차장 자리가 일곱 자리 남았다는 거예요라고 초를 쳤다. 차 한 대가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숫자는 008로 바뀌었고 딸의 말이 맞다는 것이 즉각 증명이 되었다. 내가 편들어 주었지만 그 유능한 제임스 본드도 사실은 이기질 못한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편의점에 들어갔다 쯔위를 봤다. 쯔위는 한국에선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이다. 타이베이에선 대만의 쯔위일 것이다. 쯔위의 인기를 대만에 와서 더욱 실감한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골목에 끌렸다. 골목은 마치 풍경을 숨긴 작은 소로 같은 느낌이다. 대로변으로 가다 슬쩍 새는 느낌도 든다. 사실 디화 스트릿의 여정은 내게 골목 투어였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골목 안의 어느 집에서 봄을 맞고 있고 있었다. 봄 춘(春)자는 단순히 글자를 넘어 봄의 이름이다. 봄은 와서 봄 춘자를 보고 자신을 환영하며 내건 자신의 이름임을 알아 차린다. 봄을 환영하여 아래 함께 붙여 놓은 공희발재(恭禧發財), 그러니까 꽁시파차이는 “축하합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새해 인사 중 하나라고 했다. 돈 많이 벌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봄이 온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미니 사찰인가 싶은 작은 절을 골목 안에서 자주 만났다. 사람들이 종종 그 앞에서 손을 모았다 갔다. 소원은 큰 절에서만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작은 절이 사람을 더 잘 알아볼 수도 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수명을 다해 줄기가 꺾인 푸른 풀이 회색 빛으로 변하면서 수염이 되었다. 풀은 죽지 않는다. 그냥 풀에서 수염으로 모습을 바꿀 뿐이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유월초일(六月初一)란 이름의 가게를 봤다. 가게 이름이 독특하다. 우리 말로 하면 유월의 첫날이다. 카페 이름으로 써도 좋겠다 싶었다. 대만의 간식인 에그롤을 파는 가게이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왔지만 모두 같이 몰려다니지 않고 흩어졌다 점심 때 만나기로 했다. 나는 발길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며 골목을 돌아보는 여정을 택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엶은 푸른 색의 클레마티스(Clematis)이다. 골목은 꽃을 숨기고 있다. 골목을 찾은 사람에게만 몰래 꺼내서 보여준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햇볕은 골목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하지만 비는 골목을 차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정이 비오는 날, 골목의 불편이 된다. 골목이 지붕을 둔 까닭이다. 골목의 가운데 약간의 지붕이 있었다. 비가 와도 잠시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빗소리가 좋을 것 같았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골목은 햇볕의 놀이터이다. 햇볕이 번개 놀이를 하며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영어명이 Egyptian Starcluster인 이 꽃의 정식 학명은 펜타스 란세올라타 (Pentas lanceolata)이다. 한국 이름은 이집트별꽃이다. 대만의 타이베이 골목을 걸으면 이름만으로는 이집트 출신 같은 꽃도 만난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골목에 있던 오토바이 한 대가 골목을 나서기 직전이다. 등뒤에 골목의 그늘이 까맣게 묻어 있다. 길로 나서면 등의 그늘은 바깥의 햇볕이 말끔히 지워버린다. 그리고 바깥의 햇볕은 속삭인다. 세상에 그늘의 숙명 같은 것은 없어. 그것이 숙명이라면 이 환한 햇볕으로도 지우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봐, 너의 그늘은 골목을 나오는 순간 말끔히 지워졌어. 밤이 숙명이 아니고 우리가 잠시 사는 하루의 절반이듯이 그늘진 골목 또한 그냥 잠시 우리가 사는 조도 낮은 시간일 뿐이야. 나는 우리가 사는 조도가 낮은 시간에 좀 더 오래 머물렀다. 대낮에 걷는, 빛으로 많이 희석된 밤이기도 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올해는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그것은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똑같은 것일까. 어느 집에 붉은 말이 걸려 있었다. 말에는 길상(吉祥), 그러니까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란다는 것으로 짐작되는 말이 집쪽으로 뒤집혀서 걸려 있었다. 나도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때로 누군가 비는 소망이 그 곁을 지나는 모든 이들의 소망이 되어 그 소망을 함께 이루어준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새소리가 시끄러워 올려다 봤더니 참새 두 마리가 수다 중이다. 참새는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말이 많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어느 가게 앞에 걸린 찰 만(滿)자의 등을 보았다. 손님이 가득 차길 바라는 마음인 것일까. 리본이 바람에 날리며 손짓처럼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골목의 저만치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쪽으로 와볼래 하면서 나를 부르는 푸른 손짓 같았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화살표는 이쪽으로 가라했다. 사람들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에 관계없이 골목을 오갔지만 나는 화살표가 가라는 대로 갔다. 화살표는 가라는 대로 가면 20대로 살 수 있다고 했다. 차들은 속도를 줄였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흩어져서 돌아다녔지만 구글맵으로 서로의 위치 정보를 주고 받으며 다녔다. 때문에 같이 온 그녀와 딸이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나도 가끔 근처의 상점을 찍어 내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러다 모두 도사식관(稻舍食館), 그러니까 다오서스관이란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영어명은 Rice & Shine Restaurant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아직 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대만식 가정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했다. 도(稻)자가 벼 도자여서 우리 식으로 하면 밥집식당이 아닐까 싶었다. 다들 시간 맞춰 잘 도착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식당은 3층까지 있었다. 우리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2층은 창의 풍경이 아주 좋았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각자 시켰는데 나는 내가 시킨 메뉴가 무엇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무엇을 시키든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잘 고른다는 느낌이었다. 점심값은 히로타가 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메뉴에 수제 맥주가 있어 점심에는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작은 병의 맥주가 나왔다. 가격이 160위안이었다. 타이베이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음식값은 싼 것 같은데 맥주값는 전혀 싸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페일 에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선 다시 뿔뿔히 흩어졌다. 나는 다시 골목을 걸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사는 곳이 누추해도 그것이 식물의 삶을 누추하게 끌어내리진 못한다. 하수구 구멍에 자리를 잡은 식물도 초록은 푸르기만 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이 집에 사는 사람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레드 카펫을 걷는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사람들은 모두 파랑새를 찾는다. 그렇지만 이 집은 빨강새와 파랑새를 모두 찾아냈다. 새 두 마리가 한쌍이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디화 스트릿에서
익소라(Ixora)는 정글 제라늄(jungle geranium)이라 불리기도 하는 꽃이다. 디화 스트릿의 골목이 숨겨 두었다가 내준 꽃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