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화 스트릿의 골목을 걷고 있던 내게 멀리 계단이 하나 보였고 누군가 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의 위쪽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내게는 계단을 올라 사라진 사람이 이곳에도 길이 있다고 알려주는 인연 같았고, 그리하여 나는 그 인연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 계단을 오르자 그곳에 타이베이 대교가 있었다. 대교는 단수이강을 건넌다. 서울이라면 한강에 해당되는 강이다. 단수이강에 놓여 있는 많은 다리 중 하나가 타이베이 대교이다. 다리의 한쪽으로만 인도가 있었다. 나는 다리를 건넜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 대교에서
다리 위의 한켠에선 표지판이 이 강이 단수이강이며 한자로는 담수하(淡水河)로 적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구글은 그뜻이 맑은 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한테 담수는 맑은 물이라기 보다 소금기가 없는 물이다. 표지판은 다리 이름이 타이베이 대교라는 것도 함께 알려 주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 대교에서
다리를 건너가다 타이베이 대교에서 상류쪽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바로 위에 자리한 다리의 왼쪽으로 내가 묵고 있는 써니호텔이 있다. 타이베이의 가장 중심가가 바로 위 다리의 왼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리의 인도는 폭이 아주 넓었으며 걸어서 건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대개 자전거를 타고 건넜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 대교에서
다리의 하류쪽에선 자주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 강을 건넜다. 비행기가 가는 곳은 쑹산공항이다. 내가 타고온 비행기도 이 강을 건너 쑹산공항에 내렸을 것이다. 비행기로 온 길을 걸어서 되짚어 간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 대교에서
다리를 다 건너 갔을 때 난간의 아래쪽에서 난간을 부여잡고 자라고 있는 풀 한포기가 보인다. 아마도 난간의 틈새에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생명의 자리로는 아주 특이해 보였다. 전생의 암벽등반가가 풀로 다시 태어났다 생각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 대교에서
타이베이 대교를 건너와 남단에서 북쪽으로 바라 본 모습이다. 건너는 데 15분 정도 걸렸다. 다시 건너갈 때는 버스를 탔다. 우리의 한강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단수이강의 강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강가에 무엇인가를 파는 상점도 많지 않았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단수이강의 남쪽 강변으로 내려갔을 때 가장 먼저 가로등 위에 앉아 있는 참새를 만났다. 타이베이에서 참새를 자주 봤다. 참새의 영어 이름은 유라시안 트리 스패로우(Eurasian Tree Sparrow)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영어로는 그냥 스패로우이다. 이국에선 익숙한 것도 이것이 여기도 있네라는 느낌을 불러오면서 새롭기만 하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다리를 내려가 단수이강의 남쪽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건너온 다리가 북쪽으로 흘러간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단수이강의 강변에서 배추흰나비를 만났다.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비이다. 강변의 꽃이 있는 곳에서 상당히 자주 만났다. 여기가 배추흰나비가 살기에는 더 좋은 세상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나무들이 벌써 풍성한 초록을 뽐내는 시기에 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를 봤다. 죽은 나무는 아니다. 가지에서 지난 해 맺은 것으로 보이는 열매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활엽의 세상에도 잎을 모두 보내면서 계절을 뚜렷하게 구별하여 사는 나무가 있는 모양이다. 네가 잎을 냈을 때 다시 오겠다 약속하고 싶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잎이 너무 무성하여 아는 나무라고 생각을 못한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뽕나무였다. 열매를 보고 나니 잎도 뽕나무 잎이 맞다.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대충 잎만 봐도 알아봤을 뽕나무를 타이베이에 오니 멀리선 알 수가 없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꽃이 너무 붉어 낯설 정도였다. 하지만 잎은 분명한 동백이었다. 단수이강의 강변에서 익숙한 나무와 꽃을 자주 만났다. 어떤 나무는 열매로 알아보고 어떤 나무는 잎으로 알아보았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간다. 각자 타고 가는 자전거 둘이 천천히 속도를 맞추며 함께 간다. 사랑은 각자 탄 자전거를 함께 탄 2인용 자전거로 바꾸어 놓는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인도구관조나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Common Myna)라고 불리는 새이다. 처음 보는 새였으나 타이베이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라고 한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나무는 훌라후프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착해서 훌라후프를 맡아서 잘 보관해준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잎들이 무성해 질 때면 나무는 항상 내게 있어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시인 오규원이 알려준 나무의 느낌이었다. 아니었다. 단수이강의 강변에서 분수처럼 솟은 나무를 봤다. 나무는 이제 지상이 뿜어내는 초록의 분수가 된다. 이국의 풍경은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한다. 강변의 나무들이 모두 여기저기서 초록의 분수를 쏘아 올리고 있었다. 분수가 반가운 날씨였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비행기 한 대가 단수이강을 건너 건물들 쪽으로 고도를 낮춘다. 쑹산공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탄 이들이 저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나도 타오위안공항으로 오지 않고 쑹산공항으로 왔다. 쑹산공항으로 오면 공항에서 도심까지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밖에 되질 않는다. 이렇게 도심이 가까운 공항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김포에 내려도 도심까지는 상당히 멀다. 단수이강의 강변을 걷다 자주 공항으로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새가 나무에 앉아 있다. 새는 나무가지를 옮겨다니며 자꾸 자리를 바꾼다. 바꾼 자리도 나무였다. 나는 단수이강의 강변을 따라 걷는다. 나도 자꾸 자리를 바꾼다. 그러나 바뀐 자리도 강변이었다. 넓은 자리는 자리를 바꿔도 나무고 강변이다.

2026년 3월 23일 대만 타이베이의 단수이강 남쪽 강변에서
돌은 가운데를 비워 풀에게 내주었다. 돌덩이는 잔디를 품은 의자가 되었다. 생명을 가진 의자였다. 혼자 앉아 있어도 푸른 풀밭이 함께 해주었다.
나의 계획은 타이베이 대교의 아래쪽으로 보이는 다리까지 걸어가 그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돌아가고 그 다음에는 처음 온 곳으로 다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리엔 인도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강변의 높은 둔치를 넘어 동네로 들어가보는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