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바다에서 계절을 낚는다 – 강화 석모도 기행 1

강화의 석모도에서 배를 내리면
오른쪽으로 초입에 있는 마을이 석포리이다.
석모도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마을을 그냥 지나쳐 보문사나 민머루 해수욕장으로 행선지를 잡지만
내가 4월 30일과 5월 1일,
이틀간의 석모도 여행을 가지면서
가장 좋은 사진을 건진 곳은
바로 이 석포리의 바닷가에서 였다.
친하게 지내는 이승재씨가
석모도의 친척을 찾아가는 길에 함께 따라나선 나는
그 마지막 날 석포리에서 그의 6촌형 집에 들렀고,
그리고 억세게 재수좋게도
그의 형수가 바다로 나가 고기를 건져올릴 때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그의 형수 이름은 노자 정자 님자, 노정님씨였다.
그 날, 그 바닷가의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동행의 옆자리에 나를 배려해준 이승재씨와
꿈처럼 내 카메라로 빨려들어온 그 바닷가의 시간을 허용해준
노정님씨에게 감사의 말을 새겨놓는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뚝 위에 섬처럼 동그마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그물은 뚝에서 걸음을 시작하여
바다로 길게 목을 빼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그물하면
물 속으로 깊숙이 쳐두었다가 건져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그물은 뻘밭에 세워놓은 나뭇가지에 의지하여
직립의 자세로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니까 그녀의 그물은 바다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매일매일 어김없이 바다가 그녀의 그물을 찾아온다.
그녀의 그물은 곧 그녀이기도 해서
그것은 곧 바다가 그녀를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바다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닷물이 빠지길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뚝에 앉아 남편의 6촌 동생 이승재씨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승재씨가 암으로 투병 중인 형의 근황을 물었고,
그녀가 형의 얘기를 한낮의 뚝 위에 조용히 풀어놓았다.
멀리서 바다가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바다로 간다.
그리고 그녀의 발자국이 그 뒤를 따라간다.
원래 발자국은 항상 우리를 쫓아다니면서도
돌아보면 그 흔적이 지워져 있지만
뻘밭에선 발자국이 선명하게 그녀의 뒤를 쫓아간다.

Photo by Kim Dong Won

몇시간전 바다가 자신을 그득채워놓았을 그 자리에
지금은 그녀가 있다.
바다는 이제 바로 그녀의 눈앞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바다는 매일 그녀의 그물을 가득채워놓고
그녀를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길에 드디어 그녀를 본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그물에서 물고기를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뻘에서 물고기를 줍는다.
망둥이, 바닷가재 등등.
펄떡거리는 바다를 주어 올린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를 사랑한 바다는
매일 그녀를 찾아와
그녀의 그물에서 그녀를 만나고 돌아간다.
그리고 바다는 돌아가는 길에 항상
그녀를 위한 선물을 잊지 않는다.
바다의 선물은 살아서 펄떡펄떡 숨쉰다.
그건 바다의 마음이 그대로 실려있기 때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도 바다를 사랑한다.
매일매일 잊지 않고 찾아주고,
그녀가 바닷가로 나올 때까지 그 기다림을 마다않고,
갈 때면 그저 아낌없이 주고 가는 그 바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거 알아요?
바다에도 계절이 있다는 걸.
뭍의 계절이야 꽃이 가져다주지만
바다의 계절은 물고기들이 가져다 준다우.
계절마다 그물에 올라오는 고기들이 다르거든.
뭍의 꽃들이야 기온이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정신을 잃고 계절도 모른채 피기도 하지만
물고기에 실려오는 바다의 계절은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우.”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처음에는 그녀가 물고기를 잡는다고 생각했었으나
그러나 그녀는 물고기가 아니라
바다에서 계절을 낚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의 손끝에선 봄이 낚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늘 그녀가 낚은 바다의 봄은
아주 풍요로왔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생각보다 물이 금방 빠진다며
그녀가 낚은 봄을 바다에 헹구었다.
그녀가 헹군 봄은 내가 뚝으로 날랐다.
오호, 살다보니 이런 행운이 다 있다.
살면서 많은 것을 들어보았지만
봄을 어깨에 메고 날라본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지금 오늘 봄걷이의 마지막 작업을 하는 중.
뭍의 가을걷이와 달리
그녀는 이렇게 매일매일
그녀의 그물에서 봄을 거두어 들인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내게 망둥이도
가을 망둥이와 봄 망둥이가 다르다고 했다.
위의 긴 것이 가을에 나온 망둥이고
아래 것이 봄에 나온 망둥이다.
나는 길이로 구분하는가 했지만
그녀는 봄 망둥이는 몸에 점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봄 망둥이의 점은
망둥이의 몸을 빌려 바다에서 피는
봄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잡아올린 한가득한 오늘의 봄이요!
그 봄은 그녀가 집에 도착한 뒤까지
살아서 펄떡펄떡 뛰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서
생새우를 얹은 새우덮밥을 얻어 먹었다.
뱃속 깊이 봄이 가득 찼다.

8 thoughts on “그녀는 바다에서 계절을 낚는다 – 강화 석모도 기행 1

  1. 역사적인 남자들만의 봄나들이…,부럽습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후일담을 듣는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허나 무엇보다좋은건… 요몇일내 보다 형님 글이 밝아졌다는 것아닌가싶내요.
    아닌가?

    1. 같이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근데 남자 셋이 모였으면 무슨 사고쳤을 거예요. 사진 정리해야 하는데 너무 찍은 사진이 많아서 큰일이네요. 그래도 기대하시라.

    1. 그 전날밤은 이승재씨의 4촌형 집에서 목구멍을 넘어가면 뱃속이 싸르르한 집에선 담근 오갈피주를 먹었다는 말씀. 그날밤 정말 술깨나 펐죠. 두 남자의 환상적인 여행이었어요.

    2. 오갈피주? 가시오가피라 불리우는 그것인가?
      회를 안주로?
      상당한 염장이시네요. ㅠ.ㅠ
      새우랑 회랑… 커흑!

    3. 회가 안주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담근 바닷가재가 있었죠. 그리고 돼지고기 볶음, 강화 특유의 순무 김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나물 등등. 국자로 떠서 주는 붉은 색의 오갈피주.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노년의 부부와 도시에서 오래 간만에 찾아온 두 남자. 술안마셔도 취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도 술을 엄청 먹었다는…

    4. 헉.. 바닷가재…
      정말 잘 놀다가 오셨네요. 친구분을 아주 잘 두신듯!
      상상만 해도 순박한 바다냄새랑 모락모락 가재익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네요. 부럽 ^^

    5. 그 바닷가재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 아녜요. 아주 적당하게 간이 밴 거의 생거에 다름없는 것이라고나 할까. 투명한 회색빛을 띄죠. 속을 쏙 빨아먹게 되어 있어요. 물론 익힌 것도 먹었죠. 익힌 것은 붉은 색이예요. 동네분께서 가위로 앞뒤를 잘라내고는 살만 쏙 빼더니 “이리와 앉아봐요” 하시더니 손에 건네주셨다는. 그걸 계속 받아만 먹는 호사를 누렸으니… 살다가 이게 무슨 행복이냐 싶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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