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걸치다
—
그냥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무료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카메라의 초점을 횡단보도로 낮추고,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적어도 사진의 프레임 안에서
차들은 멈춰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살펴보았더니
앞쪽 대가리만 내민 차는 선에 걸쳐 있었고,
뒤쪽 꼬리만 붙들린 차는 선에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의 눈에만 의존할 때는
자동차의 속도에 묻혀
횡단보도의 풍경이 “지나다니다”로 뭉뚱그려져 있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그 풍경 속에
“걸치다”와 “걸리다”가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도 확연하게.
그것을 알고 나자,
갑자기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생각났다.
옆에 누가 있었으면 그 영화 속에서처럼
재미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걸치면 내가, 걸리면 네가,
알밤맞기다.
물론 그렇게 놀려면 눈감고 찍어야겠지?
그 생각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무료하지 않았다.
혹 디지털 세상이 오기 전의 세상에선
많은 재미와 즐거움이
꽁꽁 억눌린채
숨어지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선에 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