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 강화 석모도 기행 2

강화의 석모도엔 한 서너 차례 내려갔던 기억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곳의 풍경을 쫓아다니다 돌아왔다.
4월 30일과 5월 1일, 이틀 동안 나는 다시 또 석모도를 찾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석모도를 찾으면 그곳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
그곳에 놀러온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곳에 다니러 온 사람이 있다.
예전에 그곳을 찾을 때면 나는 놀러온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놀러온 사람들은 풍경이나 맛진 것을 쫓아다니며
눈과 혀의 만족감으로 시간을 채워 돌아간다.
그런데 풍경과 맛에도 겉과 속이 있다.
놀러갔을 때 우리들이 즐기는 것은 대체로 풍경과 맛의 겉이다.
풍경과 맛의 속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때문에 그곳에 살지 않으면 풍경과 맛의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곳에 살지 않아도
그 풍경과 맛의 속이 손에 쥐어지는 행운의 기회가 올 때가 있다.
그 행운은 바로 그곳에 다니러 온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다니러 온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곳에 어떤 연고를 갖고 있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 연고가 없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곳에 친척의 연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이틀 동안,
나는 그곳의 친척집에 다니러 가는 이승재씨의 옆에
잽싸게 빌붙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나는 드디어
풍경과 맛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건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배를 낚는 사람.
아마 고기를 낚는 사람은 많이 보았어도
이렇게 배를 낚는 사람은 그리 흔하게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끝에 갈구리가 달린 줄을 던져 배를 낚았다.

Photo by Kim Dong Won

할아버지는 허리가 휘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허리를 펴지 못해도
할아버지의 망치질 끝에서
나무 막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몸을 똑바로 세웠다.
이제 늙어 허리는 구부러졌지만
손과 팔의 힘은 여전히 젊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갯벌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물을 뜯고 있다.
아주머니가 없었다면 갯벌은 텅비어 보였을 것이다.
갯벌이 있고, 또 나물이 그곳에서 자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곳이 텅비어 보일 때가 많다.
사람이 있어 그곳이 그득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서핑보드는 뭍에선 제자리에 갇혀 움직이질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뭍의 서핑보드에서도
바람을 뚫고 파도를 가르며 즐겁게 달린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이
이렇게 손잡고 민머루해수욕장의 뻘을 걸으면
부자의 정이 새록새록 자란다.
뻘은 온갖 생명체를 키운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사람 사이의 정을 키우는 곳이기도 하다.
놀러온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의 하나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정을 키우는 그 뻘밭의 풍경은
그냥 앉아서 하염없이 지켜보기만 해도
하루 종일 하나도 물리지 않는
아주 느낌 좋은 그림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승재씨의 4촌형 집에 들러 차를 세워놓고
싣고 간 자전거로 갈아 탄 뒤
두 남자는 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 길을 막 출발하던 참에
승재씨가 논에서 돌아오던 형수를 만났다.
둘이 길에서 간단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승재씨와 그의 형수가 입가에 베어문 웃음을 보고 있노라니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저녁엔 승재씨의 4촌형 남중우(왼쪽)씨의 집에서 묵었다.
술이 거나하게 오고갔다.
술과 함께 그간의 살아온 얘기들도 오고간다.
집에서 담근 붉은 색의 오갈피주도 얻어마셨다.
붉은 색이 고운 그 술을 국자로 퍼주셨다.
술이 바닥에 어른거린다 싶으면 어르신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잔을 내게.”
잔을 비우라는 말에 익숙해 있던 내게
그 말은 말맛이 지금까지와의 말과는 다른
아주 감칠맛 나는 말이었다.
승재씨와 어르신의 대화는 그냥 듣고만 있어도
귓가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말맛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남중우씨 부부.
평생을 삼산면 상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내가 풍경의 겉에서 만난 것이 바다와 산이었다면
풍경의 속에서 만난 것은 바로 이곳의 사람들이었다.
그 어느 풍경도 풍경의 속을 이루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따를 순 없다.
그리고 두 분이 내게 내준 저녁 식사 속엔
음식점에선 전혀 맛볼 수 없는 맛의 속이 있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석모도에서
풍경과 맛의 속을 맛볼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지만
스스로 풍경이 되는 것도 남다른 재미이다.
승재씨는 바닷가의 긴의자에 앉아
스스로가 풍경이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튿날엔 석포리에 들러
승재씨의 6촌형을 만났다.
6촌형은 암으로 투병중이었지만
하던 농사를 어찌 쉴 수 있겠냐며
고구마밭에 나가 있었다.
그의 6촌형 이태섭씨는 이렇게 말했다.
“농사꾼이란게 그저 자기가 애쓴만큼만 가져가는 사람들이여.”
고구마밭은 이제 고구마를 심은 다음엔
이랑에 검은 비닐을 씌웠다.
그렇게 하면 잡초가 자라질 못한다고 한다.
현대적인 농법이냐고 물었더니
이태섭씨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적인 농법은 뭐.
그냥 이제는 사람들이 약아져서 그런 거지.
이렇게 하면 김을 맬 필요가 없으니까.”
이날 서울에서 아들이 내려와
아버지의 애쓰는 손길을 돕고 있었다.
좋아보였다.

Photo by Kim Dong Won

할아버지 한 분이 타고 가는 자전거 뒤에서
강아지 한마리가 상자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어디 이웃집에서 얻어갔고 가시나 보다.
중간중간 강아지의 안위를 염려하여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강아지를 싣고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시골길을 미끄러지고 있었다.
강아지가 자전거 뒤에서
신기한 듯 세상을 구경하며
새로운 주인집으로 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태섭씨의 아내 노정님씨는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거두어왔다.
방금 바다에서 거둔 그 물고기들은
그날 우리의 점심상을 풍요롭게 채워주었다.
그 점심에 나는 또 한번 맛의 속을 맛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먹는 물고기는 바다가 휘발되어 버린 그냥 음식에 불과하지만
석모도에서 그날 내가 먹은 점심상엔
바다가 그대로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8 thoughts on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 강화 석모도 기행 2

  1. 으아~~ 저도 이달엔 친구들과의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아! 빨리 가고싶어요.
    물론 전 노다니가 가는 방문객이 되겠지만, 그래도 핫핫! 기대만빵!

    1. 제주도는 내가 지금까지 다녀본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그냥 섬이라기 보다 거의 그림에 가까운 곳이죠. 요즘은 많이 망가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모르는 좋은 곳이 많을 거예요.

  2. 형,고생은 무슨.나두 너무 즐거웠어.
    “우리 이렇게 즐거워도 돼는거야!”하며
    자전거를 내달리며 유쾌했던 장면은 오래 기억 될 거야.
    평범했을 안내길을 형의 ‘예리한 관찰력’덕분에
    생생한 풍경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네요.

    앞으로 올려질 사진들도 기대 만빵이구
    계획됨 없이 발길(자전거길)닿는 대로 갔던 길이
    마치 이미 잘 짜여진 콘티대로 착착 진행된 여행길이었어
    그건 석포리에서 처음 도착해 ,
    노란 지붕의 아주 아담한 성당길로 시작된 우리의 발 길이
    다음날 우연한 기회로 찾아 오게된 기막힌 풍경으로 이어지는
    경험하는 우리였어.

    그 다음 장면들이 기대되는군..

    1. 기대하시라. 일단 오늘은 일몰과 일출이 올라갈 예정. 그리고 다음엔 그곳에서 찍은 꽃들이 올라갈 예정. 그 다음엔 간단한 두 장짜리 사진 이야기가 대기 중. 너무 울궈먹는 건가…

  3. 승재씨와 나란히 앉은 긴 의자…
    비어있는듯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바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구려…
    바다와 무슨 얘기를 그리 나누는지…
    고맙구려… 털보와의 긴 여행에 길벗해준 친구여…
    긴 의자만큼 마음도 크게 비워주고 채워준 친구가 있기에
    이렇게 좋은 사진과 글을 건져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소.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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