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룽역에서 바다를 향하여 무작정 걷다 – 6일간의 타이베이 여행 Day 4-2

챙긴 것은 지룽이라는 지명 하나였다. 한국에서도 시외버스 터미널로 나가는 것을 여행의 시작으로 삼은 적이 몇 번 있었다. 행선지도 없이 출발을 하곤 했다. 터미널에선 마음에 드는 지명 하나를 골랐고 그렇게 하여 아무 생각없이 그곳으로 떠나곤 했었다. 미리 검색하고 알아보면 마치 사전에 얻은 정보가 여행을 오염시키기라도 하는 양 별로 알아보질 않았다. 무엇인가를 알아보면 알아본 것만 보고 오게 되리라는 내 생각이 가져온 결과였다.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미리 알아두고 공부하면 아는 것만 보게 되리란 생각이 강했다. 정보는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야를 알아낸 정보 내로 제한할 수 있다. 그래서 가급적 정보를 찾지 않았다. 지룽역에 도착한 나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역의 개찰구를 나간 나는 구글맵을 켰으며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곳 중의 한 곳을 골라 걸어서 갔을 때 그곳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았다.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고 나왔다. 그 정도면 걸을만 하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걷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지룽역을 나섰을 때 나를 반겨준 것은 하늘을 높이 나는 새 한 마리였다. 새의 높이에선 멀리 바다가 보일 것이다. 새는 저쪽으로 가면 바다라는 듯 높은 하늘을 날아 사라졌다. 그렇지만 새를 믿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내 손에는 구글맵이 있었다. 구글맵은 여행하는 동안 나의 나침반이었다. 구글맵은 나에게 새가 날아간 방향과는 반대로 가라고 했다. 항구의 푸른 물이 언듯언듯 시야에 들어왔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사람들은 보도 블럭을 깔고 블럭의 사이에 틈새를 남겼다. 자연은 틈새에 풀들을 채워 그물코가 커다란 푸른 그물을 만들어주었다. 어떤 걸음도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 걸어가면 우리의 걸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나무 하나가 흰 꽃을 들고 몸을 비튼다. 조팝나무이다. 한국에도 많다. 대만에 와서도 익숙한 나무를 볼 때가 있다. 나무가 살아갈 꽃의 시절을 미리 산다. 꽃과 나무에 관한한 대만은 미래의 시간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횡단보도를 볼 때면 하얀 선의 징검다리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길은 길을 반으로 갈라 하얀 선의 사이로 빠져나가며 좌우로 흘러갔다. 이곳의 횡단보도는 하얀 선의 사이를 버려두지 않고 그곳마저 색으로 채웠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레드카펫을 걸을 때와 기분이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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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우리는 나무 밑이 둥근데 지룽시에 오니 나무 밑이 반달이다. 보도 블럭으로 덮지 않은 나무 밑의 반달 구역에선 풀들이 무성하다. 달빛을 먹고 자란 풀들이다. 그런데 나머지 반달은 어디로 갔을까.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길의 한가운데 커다란 반달이 놓여 있었다. 나무 밑의 반달과 달리 서 있었다. 지룽시에선 보름달을 반달로 쪼개 나무와 거리가 나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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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다육식물 용월로 보이는 식물이 벽을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따뜻한 날씨는 식물들을 무성하게 키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작은 꽃들이 무성하면 꽃이 핀 것이 아니라 누군가 꽃을 뿌려 놓은 것은 아닐까를 의심하게 된다. 뿌려 놓은 꽃은 곧잘 초록의 풀밭을 하늘 삼아 가장 낮게 뜬 별의 무리가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잠시 수직으로 서 있는 바다를 만나 그 바다를 수평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함께 걸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어물전인가 보다. 시장 같아 보였으나 달리 간판은 없었다. 갈치들이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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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시장의 입구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졸고 있었다. 곁을 지나는 내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람이 지나가도 고양이가 위협감 없이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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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시(市)라는 글자는 시장을 뜻하지만 지룽시의 시가 되기도 하고 시장의 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는 시통(市通)의 시였다. 시통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국의 거리에선 뻔히 보고도 알 수 없는 비밀을 지나가게 된다. 길에 빤히 보이는 비밀들이 수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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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세월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물들을 자주 만났다. 오래되었나 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래되었다는 것이 색이 퇴색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낡았다는 것은 색이 바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함께 한 시간으로 건물을 오래도록 천천히 칠해 놓은 것이다. 대만에선 그렇게 세월로 칠해놓은 건물들을 자주 만났다. 새로운 페인트로 세월을 덮는 것보다 그렇게 건물의 칠을 세월에 맡기며 사는 것이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세월의 칠을 누추함으로 생각하며 견디질 못하게 된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길은 언덕을 오른다. 언덕은 내가 가는 곳을 꿈꾸게 한다. 언덕을 넘으면 바다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것일까. 섣부른 기대였다. 아직 바다는 멀었다. 그래도 잠시 나는 바다를 꿈꾸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해안나팔꽃(coast morning glory)이다. 꽃이 바다가 가깝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 가령 해당화가 피어 있다면 바다가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해안나팔꽃은 꽃의 이름으로 내게 내가 있으니 바다가 가까운 것이라고 속삭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도심을 벗어나자 길에 옛스러워 보이는 버스 정류장이 서 있다. 시간이 그대로 보존된 정류장이다. 그래도 버스는 사람들을 옛날로 실어다 주진 못한다. 서는 버스는 모두 오늘을 달렸다. 나는 잠시 옛날에 앉았다 갈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인간들은 담장을 쌓았고 자연은 그 담장에 마름모꼴의 격자 문양을 푸르게 새겨 주었다. 이끼들이 채색을 거들었다. 담장은 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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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이곳에선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람도, 차를 타고 온 사람도, 그냥 걸어온 사람도 모두 걸어서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은 그 어떤 것도 우대하지 않고 똑같이 대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이 집의 사람은 캔을 모았다. 바구니를 다 채울 때마다 마법 같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캔은 찌그러져 모였지만 모여선 인생을 환하게 펼 수 있다며 의지를 부추겼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타이베이 와서 타이베이 대교를 건너고 단수이강의 남쪽 강변을 걷다가 처음으로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를 봤었다. 이제는 낯익은 얼굴이다. 꽃과 새와 낯을 익히면서 여행이 깊어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길이 큰 길을 버리고 좁은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의 끝에 바다가 있는 것일까. 바다가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3월 24일 대만의 지룽에서

바다를 앞두고 미키마우스 플랜트(Mickey Mouse Plant)라 불리는 나무의 꽃이 나의 방문을 환영해 주었다. 때로 꽃은 그냥 피어 있지 않다. 꽃은 가끔 바다를 찾아 이국의 거리를 걷는 여행자에게 이제 바다에 다 왔다고 걸음을 환영하는 꽃을 내밀며 그 자리에 꽃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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