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쿄로 여행을 갔을 때는 가마쿠라의 바다를 갔었다. 관광객이 찾는 바다는 아니었다. 한적함이 좋았다. 바닷가의 편의점에서 그 지역의 맥주를 한 캔 사서 마셨다. 베트남의 다낭에 갔을 때는 숙소가 바로 바다 곁이었다. 아침마다 바다로 나가 해변을 산책했다. 바다를 거의 혼자 독차지하고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선 자주 속초를 찾곤 했다. 속초가 가장 좋았던 점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리면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바다가 있었다는 점이다. 영금정의 바다에 도착하고 두 시간 정도 바다를 걷다 돌아오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항상 바다를 찾아 다녔다. 대만의 타이베이에서도 지룽역으로 나가고 바다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번잡한 거대한 항구를 버리고 작은 항구인 와이무산 어항에 도착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와이무산은 한자로는 외목산(外木山)이라 표기된다. 영어로는 와이무산(Waimushan)이라 되어 있다. 작은 항구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길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마을을 우회하여 뒤쪽으로 높이 흘러가는 길로 나뉜다. 나는 곧장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의 길로 빙 돌아서 들어갔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길가의 옹벽은 초록의 색을 가졌다. 초록은 생명의 색이다. 옹벽은 생명의 터전이 되기 보다 생명의 자리를 지우고 그 자리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색만이라도 생명의 색으로 채우려 든다. 그러나 색을 칠한다고 생명이 채워지진 못한다. 옹벽의 작고 둥근 구멍에는 풀이 있다. 풀은 옹벽의 구멍을 둥지로 삼고 삶을 꾸린 생명 그 자체이다. 옹벽의 작은 부분을 비워 풀에게 내줄 때 옹벽이 비로소 생명을 갖는다. 풀은 지나는 우리들에게 우리들도 살아 있으니 사실은 생명의 색을 가진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 색이 진짜 생명의 색이다. 잠시 우리는 걸어다니는 풀이 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처음에는 신기한 과일 나무인 줄 알았다. 타이베이에 와서 신기하게 생긴 나무를 너무 많이 본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봤더니 붉고 둥근 물체를 나무에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안개가 심하게 낀 날이었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굴뚝은 위가 지워져 있었다. 이곳이 원래 안개가 심한 지역이라고 했다. 나는 이곳의 평상시를 왔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커피를 한자로 가배(珈琲)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가배가 아니라 여기선 가비(咖啡)였다. 가까운 곳에 카페가 있는 건가 했다. 그런 건 없었다. 아마도 있었는데 문을 닫은 듯하다. 뒤쪽의 커다란 물고기 조형물 옆에는 협화사구(協和社區)라는 문구가 놓여 있었다. 내가 항구까지 걸어올 때 마지막으로 걸은 길이 협화가(協和街)였다. 협화(協和)는 중국말로는 셰허이다. 화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길을 나는 혼자 걸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벽은 이번에는 푸른 바다를 이루었다. 바다가 물들인 탓이다. 바다와 달리 수직의 푸른 바다는 일렁이지 않는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대만에 와서 대만나리를 만났다. 대만나리는 영어로는 포모사 릴리(Formosa lily)이다. 포모사(Formosa)는 16세기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대만의 푸른 경관을 보고 ‘아름다운 섬(Ilha Formosa)’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한 대만의 옛 명칭이다. 그 명칭은 꽃으로도 옮겨갔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와이무산 어항의 한켠으로 자리한 하이싱 풀장, 그러니까 해흥유영지(海興游泳池)이다. 뚤린 구멍으로 바다가 드나드는 수영장이다. 사람들은 수영장 안보다 바로 바깥쪽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대만 사람과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이라 답하자 자신도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며 부산, 울산, 인천의 지명을 줄줄이 입에 올렸다. 어떻게 왔냐고 물어서 걸어서 왔다고 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하이싱 수영장에선 파도가 모두 달랐다. 수영장 안은 파도가 가장 잔잔했고 그 밖과 바위들 사이에는 좀 더 파도가 셌으며 아예 바깥은 파도가 거칠었다. 아무도 바위 바깥의 거친 바다로는 나가지 않았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나만 이곳을 찾아 온 것은 아니다. 차림새로 보아 여행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수영장 곁에서 얘기를 나누며 바다를 구경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우리는 바다를 구경했지만 누군가는 바다를 유영한다. 이곳은 사실 유영해야 하는 곳이다. 이곳이 해흥유영지(海興游泳池)이기 때문에 유영이 가장 잘 어울린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항구의 배들은 모두 불을 잔뜩 매달고 있다. 밤이 오면 빛은 어둔 바다에서 물고기들에게 속삭일 것이다. 얘들아, 빛이 잘 들지 않는 깊은 바다를 떠나 빛으로 가득한 환한 세상으로 가자고. 물고기들만 그 불빛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끌려 종종 밤의 거리로 나서곤 한다. 우리나 물고기나 모두 빛의 유혹에 약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어촌에는 재미난 풍경이 많다. 거꾸로 꽂아 놓은 장화도 그 중의 하나이다. 땅을 딛고 다녔던 장화가 잠시 허공을 딛는 시간이다. 허공을 딛고 있을 때 장화 속의 물이 빠진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이 집에는 집에서 키우던 나무가 밖을 보고 싶다고 하자 창을 열어준 사람이 있다. 다시는 그 문을 닫을 수 없게 되었지만 개의치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풀은 옹벽의 작은 구멍에 살았다. 우리는 쌓고 올려서 집을 마련하지만 풀은 뚫어서 집을 마련했다. 땅에 살면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지만 옹벽의 구멍에 살면 시선을 수평으로 두고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사는 재미가 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어항의 마을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한적한 길을 가끔 오토바이가 소음으로 채우며 지나가곤 했다.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길은 정적으로 길을 덮어 고요한 적막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어항에서
항구로 배 한 척이 돌아온다. 바다로 나간 배는 많지 않았으나 띄엄띄엄 바다에서 배가 눈에 띄었다. 바다는 동중국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