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모아놓은 각종 정보를 뒤적이고 있었다.
한때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유용한 정보들을 그때그때 모으곤 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오늘 내 눈길을 끌었다.
맥 OS 8.5의 인터넷 도움말이었다.
물론 이미 철지난 내용이라 아무 쓸모가 없다.
내 눈길을 끈 것은 마지막에 붙어있는 짤막한 글귀였다.
“My Mother said I shouldn’t wait for the world to come to my door… but then she didn’t know about the Internet.”
“어머니는 세상이 우리 집 문앞까지 걸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세상 속으로 걸어나갔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당시의 어머니에겐 인터넷이 없었다.”
1998년 10월 2일,
유즈넷의 뉴스그룹 alt.binaries.mac.applications에 올라온 글 중에
그런 글귀가 있었다.
옛날엔 세상이 문밖에 있었다.
요즘은 세상의 많은 부분이 집안에 있다.
집안에서 쇼핑하고, 집안에서 은행보며, 집안에서 사람들 만난다.
번역을 하고 글을 쓰지만,
거래처에 안가본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번역 거리를 가지러 잡지사에 나갔었다.
복사된 잡지를 누런 서류 봉투에 담았다가 주었다.
그렇게 만나면 같이 점심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거래처에 가지 않은지 몇 년 되었다.
그 사이 사람이 많이 바뀌었지만 바뀐 사람의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
번역할 잡지의 페이지가 컴퓨터 파일로 오고,
번역해선 또 컴퓨터 파일로 보낸다.
책을 보고 하던 번역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해야 하다 보니
컴퓨터의 모니터를 두 개 달게 되었다.
한쪽에 번역할 내용물을 펼쳐놓고 다른 쪽 모니터로는 번역을 한다.
그것도 좀 불편해서 모니터를 세 개 달아서 쓸까 생각 중이다.
한 곳은 일을 새로 시작했지만 담당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게 벌써 한해를 넘겼다.
매번 저녁을 사겠다고 해놓고선 약속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는데 일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독일에 유학가 있는 사람이,
영국으로 음악 공부하러간 사람이,
또 일본으로 음악 공부하러간 사람이,
모두 우리 집안에서 모인다.
아마 그들중 어떤 사람에겐
그의 자취방에 모이는 고국의 사람들 중 하나가 나일 것이다.
우리 집안으로 세상 사람이 모이고,
내가 그들의 집안으로 찾아드는 세상 사람이 된다.
어머니가 살던 그때는 세상이 바깥에 있었지만
이젠 매일 세상이 집안으로 들락거리고 또 모인다.
세상이 집안에 가득하지만
나는 종종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
집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사람에 대한 내 갈증을 풀어주곤 한다.
세상이 집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집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간다.
컴퓨터를 켜고 잠시 검색을 하면 세상의 꽃들이 모니터 속에 지천인데
여전히 나는 집밖으로 나가 꽃과 바람을 쫓아다니곤 한다.
인터넷이 있는데도 그렇게 산다.
어머니는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난 사람들을 불러들이지도 않고 집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또 집밖에서도 사람들을 만난다.
2 thoughts on “집안으로 들어온 세상”
정말 그러네요. 저는 사람들 만나서 수다떨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데
최근 예전만큼 사람도 안 만나고, 전화도 안 하고 산다 하고 생각했거든요.
세상과 사람들이 하루 왼종인 집안에 들락거리고 모이곤 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희한하게 인터넷으로 만나다가도 좋은 사람들은 꼭 집 밖으로 나가 만나는
껀수를 만들게 되네요. 결국 사람에겐 진짜 사람이 필요한 거 같아요.
화가나 시인을 만난다는 것과 그림을 보거나 시를 읽는다는 건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우린 그림을 보고 시를 읽는 한편으로 화가나 시인을 만나기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린 애들이 텔레비젼에서 매일 보면서도 가수나 탤런트를 만나보고 싶어 광분하는 것을 보면 애들은 사람만이 갖는 독특한 아우라를 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리 좋은 사진과 좋은 글도, 실제의 꽃 한 송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아주 많거든요. 죽으면 썩어질 몸이라고 하지만 어떤 글도 몸을 앞서진 못한다는 생각을 많게 하게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