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등, 그대의 등 – 서안나의 시 「등」

Photo by Kim Dong Won

시 앞에 서면 사람들은 대체로 중심을 잡는다.
진지해 진다는 뜻이다.
시를 읽으며 낄낄 거리거나
마치 흥겨운 음악을 듣듯이 발을 까딱까딱 거리고
또 몸을 흔들며 즐거워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하긴 시가 아니라도 일단 무엇이든 텍스트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찌 가볍게 즐길 수 있으랴.
물론 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들을 진지 모드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난 가끔 그런 진지 모드를 버리고 시를 읽으며 시에 지분거린다.
구절마다 딴지를 걸곤 한다.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서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서안나, 「등」 전문

긁고 싶은데 손이 닿지 않는다니?
혼자 사나?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면 긁어달라고 하면 되는데…
혼자 산다고 해도 그렇다.
난 팔이 길어서 내 등이지만 거의 절반은 닿는데…
요즘 디지털 카메라 없는 사람이 없던데
삼각대에 올려놓고 자동 셔터 사용하면
내 등도 얼마든지 찍어서 내 처음과 끝을 다 볼 수 있는데.
등에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지
가끔 낌새가 이상하다 싶어서 돌아볼 때가 있는데
그거보면 등에도 시력은 나쁘지만 어떤 감각 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난 내 컴퓨터 앞에 로지텍에서 나온 작은 웹캠을 하나 달아 놓았는데
그거 내 등 뒤로 적당히 갖다 놓고 macam이란 프로그램 틀어놓으면
실시간으로 내 뒷모습 보면서 일할 수 있던데…
하지만 이런 딴지가 시와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못된다.
이런 딴지는 시의 중압감은 걷어내 주지만
빈정거리는 느낌이 강해서 시에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자주 써먹은 것은 좋지 않다.
시를 즐길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은
시를 다른 느낌으로 변주해 보는 것이다.
음악은 같은 곡이 자주 다른 느낌의 곡으로 변주된다.
같은 곡을 여러 음악인이 달리 변주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곡을 같은 음악인이 다르게 변주하여 내놓는 경우도 있다.
시도 그렇게 변주할 수 있다.
가령 나의 등을 얘기하고 있는 서안나의 「등」은
그대의 등으로 변주가 가능하다.
그럼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않는 곳
그곳은 그대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그대 몸에서 그대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그대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그대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그대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그대가 살고 있다
그대의 배후에는
그대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그대가 살고 있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하는 그곳,
그대의 등뒤에 내가 서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때마다 내가 손을 빌려줄 수 있는 곳,
바라보고 있으면
나와 아이를 업고 사는 그대의 삶이 보이는 곳,
그대의 배후에 서면
눈먼 그대가 아니라
나와 아이를 업고 사는 그대의 삶이 보인다.
그대가 짊어진 그 삶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해지는 그 곳,
그대의 배후에, 내가 종종 마주하는
그대의 삶이 있다.
그대의 삶은 항상 그대의 등 뒤에서 가장 잘 보인다.

홀로하던 연주를 2중주로 바꾸어 놓으면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아울러 즉흥 연주를 덧붙일 수 있다.
변주와 확장은 시를 읽는 또 다른 방식의 즐거움이다.
시인이 자신의 등을 보여주면,
변주를 통하여 우리는 그대의 등을 볼 수 있다.

17 thoughts on “나의 등, 그대의 등 – 서안나의 시 「등」

    1. 하하하, 괜찮아요.
      그냥 마음놓고 댓글 다시구요.
      그래도 내용이 조금씩 다 다른 걸요.
      요것만 빼놓고 다른 것들은 제가 비밀글 체크를 풀었습니다.
      양해하시길.
      순천은 제가 여행 다닌 곳 중에서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었는데 그러질 못해 아쉬웠어요.
      아마 여기 순천 얘기는 아주 많을 거예요.
      전 두번갔지만 상당히 많이 우려먹거든요.
      천천히 즐기시길.

  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로만 보이나요??
    에구,,,
    순천에 여행 다녀 가셧나 봐요 전 순천에 사는 아낙이온데..ㅎ
    글들,사진들 시나브로 보고 있어요~

    1. 순천에는 두번 갔었습니다.
      한번은 혼자가고, 또 한번은 아내랑 같이 갔었습니다.
      순천은 너무 좋았어요.
      다시 가면 와온 해변쪽에서 좀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1. 이 댓글이 관리자님만 보시는 글인가요?
      순천에 여행 다니셨나 봐요?ㅎ
      암튼 순천에 오셧다니 방가워요 ㅎ
      순천에 사는 아낙이온데…
      새로운 글,,사진들 시나브로 보는 중..
      아주 우연히……..

    2. 아뇨, 비밀글 체크를 하셔서 그래요.
      홈페이지라고 되어 있는 옆에 작은 네모칸의 체크를 푸시면 그냥 볼 수 있는데 그걸 체크 하시면 비밀글로 처리가 되요.
      모두 볼 수 있게 해도 되나요.
      제가 풀어놓게요.

  2. ㅎ 안녕하시죠?
    여기 오랜만에 들렸더니
    포레스트님 뒷모습도 보여선
    더욱 반가와요.

    전 여기 아그라, 타즈마할이 지척에 있어요.
    부모님 흰 대리석 밟으러 가시고요.
    두분이 낼 모레 한국으로 가세요.
    한달이 만땅 가득이랄까요. ㅎㅎ

    저 여기서도 뒷모습 사진 많이 찍었어요.
    앞으로 딴지 잘 부탁드려요. ㅋ

  3. 남편이 거울보거나 얼굴에 로션 바를 때
    등뒤에서 자주 안아주는 편인데 남편은 귀찮아하더군요.
    거머리같다나요?ㅋ

    등 가려울 때있지만 짝꿍이 집에 없을 때가 많아서 효자손 샀답니다.^^

    오늘은 컴이 이상해서 구경도 못하고 가야겠어요.
    제 컴을 다른사람이 접속중이라고 몇 번 뜨고 에러나서 댓글 몇 번 날라갔거든요.

    1. 쫌 심하셨다.
      세상에 그런 예쁜 거머리도 다 있나 뭐.
      남편님 앞에서도 시위좀 하셔야 겠어요.
      그래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2. 풋풋풋
      제가 남편 이마와 볼을 자주 쓰다듬어주는데 남편은 싫어하더군요. 잠 안온다고..
      옆집 아짐에게 말하니 저보고 이상하다네요. “뭐가 그리 이쁘노.”하면서..
      제 눈엔 귀여운 걸 어쩌라고.

      동원님, 언제 울 남편 야단 좀 쳐주세요.ㅋ

    3. 알겠습니다.
      제가 좀 나이가 많은 것 같으니
      야단쳐도 될 것 같습니다.
      예쁜 평등공주님을 듬뿍 사랑하는 것은
      남편의 복이자 의무라고 꼭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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