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데리고 오려면 — 황인숙의 시 「산오름」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16일 강원도 설악산에서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영월 읍내로부터 40여리가량 떨어진
강원도 산골에서 20여년을 자랐으니 산과 가장 친숙할 법하다.
서울에 와서 몇가지 적응안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운동삼아 산에 가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산은 그냥 가서 노는 곳이었고, 자전거는 편하자고 타는 것이어서
그게 어떻게 운동이 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도 산은 내겐 놀러가는 즐거움이고, 자전거는 편안한 탈 것이다.
강원도는 마을이 서 있는 곳이
이미 서울 인근의 웬만한 산높이에 이른다.
어찌보면 강원도는 서울 사람들이 운동으로 이르고자 하는 높이를 평지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서울 사람들이야 산에 갈 때면 등산복을 차려입지만
어릴 때 산에 오르는 우리는 그냥 평상시의 그 옷 그대로였다.
등산복을 입고 걸음을 재게 옮기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게 아니라 산과 씨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난 산에 가면 산과 함께 놀다 오고 싶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산에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산과 씨름하다 오고 싶어한다.
씨름도 산과 노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둘 사이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는 것을 자신의 건강에 대한 확인서로 삼는다.
물론 나도 그런 점에선 예외가 아니다.
나도 대청봉에 올랐을 때 내 건강을 분명하게 확인한 것인양 뿌듯했었으니까.
그렇지만 대청봉을 건강에 대한 확인서 삼아 올라가면
마치 산을 오르는 것이 건강진단서를 떼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 달가운 느낌은 아니다.
산에 가면 그렇게 확연하게 다른 두 가지 느낌을 마주하곤 한다.
그 느낌의 차이를 황인숙의 시 한 편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친구와 북한산 자락을 오른다
나는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고
친구는 느릿느릿.
그의 기척이 이내 아득하다
나는 친구에게 돌아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기를 몇 번, 기어이 친구가 화를 낸다
산엘 왔으면, 나무도 보고 돌도 보고
풀도 보고 구름도 보면서 걷는 법이지
걸어치우려 드느냐고
아하!
친구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려는데
어느 새 휙휙 산을 오르게 되는 나다
땀을 뚝뚝 흘리며 바위에 앉아 내려다보면
멀리서 친구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나무도 데리고 돌도 데리고
풀도 데리고 구름도 데리고.
—황인숙, 「산오름」 전문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걸어치우’듯 걷는 걸음걸이와
‘데리고’ 걷는 걸음걸이이다.
‘걸어치우’듯 걷는 걸음걸이에서
나는 사람들이 씨름하듯 산을 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셈이다.
그 대척점엔 느릿느릿 걷는 걸음이 놓여있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은 그냥 속도의 차이만 보여주는게 아니다.
그건 여유로운 걸음걸이가 아니라
나무와 돌, 풀과 구름을 데리고 함께 걷는 걸음걸이이다.
휙휙, 빠른 걸음은 나무과 돌, 풀과 구름을 팽개치고
자기 혼자만 가는 걸음걸이이다.
그런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내려온 날엔
산을 갔다 왔으면서도 산을 갔다 온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산을 하나 해치운 느낌이었다.
느릿느릿 걸어서 산을 올랐다 온 날,
그런 날은 집에 오면 산이 집까지 함께 왔다.
처음엔 나무와 돌, 풀과 구름을 데리고 산에 올랐는데
산을 내려와 집에 올 때 산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유명산을, 설악산을,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릴적 시골살 때는
항상 산을 내려올 때 산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던 셈이다.
데리고 온 산은 며칠 집에서 놀다가 갔다.
산에 가서 느릿느릿 산을 올랐다 내려오며 산을 데리고 집으로 오고 싶다.

8 thoughts on “산을 데리고 오려면 — 황인숙의 시 「산오름」

  1. 나이 듦을 이런데서 느낍니다.
    소녀일 적에는 이름(가령, 장미 .백합. 튜율립 등등) 있는 꽃들이 좋더니
    어느 날 부터 쑥, 냉이 뭐 이런 꽃들이 좋아지더라구요.
    이 말을 언젠가 어머니에게 했더니 그것이 나이 든다는 것라고 하데요.

    예전에 같으면 저도 ‘걸어치우’ 듯 했을텐데…
    지금은 세월나 내월아 합니다.(사실 게으른거죠)
    한 번 곱씹어 보아야되겟습니다.
    좋은 시,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저는 빨리 걸으면 다리에 쥐가 나서 빨리 걷질 못해요.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가야 몸이 버티더라구요.
      또 사진찍을 것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면서 가야하기 때문에 더더욱 느리기도 하고.

      좋은 시에 대한 감사는 만약 만날 기회가 되면 황인숙 시인에게 전해드릴께요.

  2. 지독한 게으름으로 이제야 새해인사올립니다^^(구정전이니,,,)
    지난한해도 참좋았어요. 또한 새해에는 소망하시는모든일이 다 이루어지는털보의해가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시고 일간 가까운곳등산하고 곡차도즐기고 수다도 떨고…, 뭐그러지요. 헤헤^^

    1. 사실은 어제도 좋은 사람들 만나 한잔 했어요.
      술은 간만에 먹은 것 같아요.
      일 때문에 꼼짝을 안했더니 말예요.
      남한산성이라도 한바퀴 돌았으면 좋겠어요.
      시간맞춰 보자구요.
      그리고 새해 복많이 받구요.

  3. 아, 가슴을 쿡 찌르는 말이 참으로 좋습니다.
    왜 모든 것들을 데리고 가는 걸음걸이가 그렇게 힘든걸까요..

    어머님께서 산을 너무 좋아하셔서 한 번씩 따라가볼까 생각은 했지만,
    게으름에 못갔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지금은 일본에 계신 어머니라
    함께 가진 못하겠지만 혼자서라도 꼭! 산 길을 따라 올라가봐야겠어요.

    모두모두 다 데리고서 말이지요 ^^ 훈훈~ 해 지는 글입니다.

    1. 아름다운 여친도 데리고 가시는 거 잊지 마세요.
      제가 알고 있기로 황인숙 시인이 혼자사는 걸로 아는데… 그 때문인지 제일 중요한 걸 종종 빼먹는 거 같거든요.

  4. 가끔 친구가 찾아오면 연탄불에 라면을 끓여 주곤 했었답니다.
    친구는 느끼지 못했지만 왜 이리 물이 빨리 끓지 않는지 미안했답니다.
    얼른 라면을 먹이고 싶었는데 왜 그리 연탄불에 올려 놓은 냄비는 끓지 않았던지.
    하지만 친구는 그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답니다.
    마치 산처럼…

    1. 친구에겐 아마도 연탄불에 천천히 끓여주던 나무님의 그 라면이 지긋한 우정으로 덥혀서 내놓는 가장 감동적인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에겐 군대서 받은 월급을 모았다가 차비로 쓰라고 가져온 친구가 있었죠.
      워낙 가난하던 시절이라 차비가 없어 학교를 갈 수가 없던 적이 있었거든요.
      나무님 얘기들으니 그 친구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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