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무산 어항(外木山漁港)에선 바다를 따라가는 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아우디 어항(澳底漁港)까지 이어진다. 약 5km 길이의 해안도로이다. 나는 이 길을 따라 걸었다. 내내 파도소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이다. 길을 모두 걷지는 못했다. 다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중간에서 걸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을 걸으며 나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지룽의 바다를 내내 함께 할 수 있었다. 풍경 좋은 한국의 바닷가는 거의 펜션들이 점거를 해 버렸지만 이곳에는 그냥 바다만 있었다. 차도 그렇게 자주 볼 수가 없었다. 한적한 바닷가를 걷는 시간이 좋았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튀어오른다. 바다는 부딪쳐선 부서지는 것으로 바위와 대화한다. 작은 알갱이로 분할된 말들이 하얗게 허공을 나른다. 바다만 떠들고 바위는 바다의 얘기를 그저 묵묵히 듣고 있다. 듣는다기 보다 저것은 바다의 말을 뒤집어 쓴채 말이 없다고 해야 한다. 바위는 어느 때부터인가 입을 버리고 귀만 남겨 놓은채 바다의 소리를 그 귀에 묵묵히 담았다. 내 귀에도 온통 파도소리 뿐이다. 내게서도 잠시 말이 지워졌다. 바다의 말, 파도소리가 온몸에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멀리 등대가 보인다. 안개가 등대를 흐릿하게 가렸다. 낮엔 가까이 보이는 육지로 위치를 점칠 수 있지만 밤이 되면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까맣게 칠해진다. 그러면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다. 때문에 밤이 되고 불이 들어오면 어느 배가 등대의 불빛으로 방향을 점치며 항구로 돌아올 것이다. 바다엔 길이 없지만 등대의 불빛이 밤마다 없는 길을 바다에 연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약간의 파도가 이는 바다를 작은 배 한 척이 간다. 바다는 넓고 배는 한 척 뿐이다. 잠시 바다가 모두 작은 배의 것이 된다. 하지만 어느 배도 바다를 배의 것이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잠시 바다를 갖는 것으로 배들을 항상 만족을 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바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선 바다가 하얗게 몸살을 앓았다. 함께 산다는 것도 똑같다. 바다로만, 바위로만 살 때와 달리 함께 살 때의 우리는 항상 몸살을 앓으며 산다. 그 몸살이 우리 삶의 풍경이고 바다와 바위는 그 몸살을 파도의 형상으로 만들어낸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지룽의 해변에서 빈해진주채(濱海珍珠菜 Lysimachia mauritiana)를 자주 봤다. 우리 말로는 해변진주채이다. 빈배초(濱排草)라 불리기도 한다. 바닷가에선 진주가 꽃이 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거대한 바위는 사람들의 낚시터가 되어 준다. 내게는 바다로 걸어나가 가까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자리이다. 바위는 굳건한 그 몸을 길로 내주고 나는 그 길로 내 걸음을 들여 바다로 나간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바위가 자신도 오래 전에는 바다의 물결이었다고 했다. 물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꼭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에 가야 거대한 모아이 석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만의 지룽시에서 와이무산 어항을 찾고 항구에서 시작되는 해변길을 따라 걸어도 운좋게 모아이 석상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대개 모든 해변이 모아이 석상을 갖추고 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낚싯대를 갖고 바다에 물고기를 받으러 간 것이다. 물고기를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때로 오늘은 너에게 줄 물고기가 없다며 바다가 그냥 돌려보내기도 한다. 바다는 낚시를 들고 나타나는 우리에게 마음대로 가져갈 수 없는 삶을 가르친다. 받는 것에 크게 감사하게 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쇠백로 두 마리가 바닷 바람을 모두 감당하며 서 있다. 바다의 바람은 뭍의 바람과는 다르다. 뭍에선 온갖 것들이 바람의 길을 막지만 바다에 이른 바람은 거칠 것이 없다. 육상 트랙을 질주하는 선수처럼 바람은 바다를 달린다. 쇠백로는 가만히 서서 그 질주를 맛보고 있다. 나도 함께 그 질주를 맛보았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안개가 심해 눈앞의 산도 봉우리가 안개에 가려지곤 했다. 안개가 가리면 가까운 곳도 신비로움을 갖는다. 안개는 사실은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것들의 신비를 드러낸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바다에 몸을 담근 바위들이 까맣다. 제주에 가도 까만 바위들을 볼 수 있다. 한때 가장 뜨거웠던 바위가 바다에 닿아 식으면 까만 바위가 된다. 식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가장 뜨거웠던 한때를 잊기 쉽다. 그 뜨거움이 없었으면 지금의 까만 바위도 없다. 까맣다는 식었다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뜨거운 기억이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안개를 헤치고 차가 나타나곤 했다. 가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냥 길을 가는 것만으로 안개를 뚫고 가는 날이다. 안개는 우리가 안개를 뚫고 갈 수 있게 해준다. 길을 막는 법이 없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바다와 육지는 들쭉날쭉 서로를 맞댄다. 맞댄 자리에선 연신 하얀 파도가 부서진다. 서로를 맞댄 관계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바닷가에 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집의 지붕이 길보다 낮다. 지붕이 길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비가 내릴 때마다 빗물이 마치 단이 낮은 계단을 내려가듯 이 집의 지붕을 내려갔을 것이다. 이 집에선 빗소리가 계단을 내려가는 비의 발자국 소리이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셔터는 푸른 바다색을 갖고 있었다. 색은 낡고 헐었다. 바다는 사람들이 원할 때 그 색을 내주지만 바다를 나오고 나면 색을 낡고 바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안개는 선명한 윤곽을 흐릿하게 지운다. 경계가 지워지면 날을 세우며 자신을 고집했던 산이 그 고집을 내려놓고 산의 정상을 하늘에 풀어놓는다. 경계의 완고함을 버리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도 하늘에 닿을 수 있다. 경계의 완고함이 고집스러울 때 하늘은 아득해지고 산은 낮은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등을 잔뜩 단 배 한 척이 바다를 간다. 등을 수없이 많이 가졌어도 낮엔 등이 필요 없다.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낮은 하늘에 수없이 많은 등이 걸리는 시간이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제주에 가면 주상절리라 불리는 육각형의 돌기둥 지대가 있다. 지룽의 바닷가에도 그와 유사한 지형이 있었으나 이곳은 인공의 지형이다. 그래도 흔히 보던 바닷가의 인공 구조물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바위를 가운데 두고 파도가 부서진다. 아니, 바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를 헤엄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의 와이무산 바닷길에서
육지는 길게 발끝을 뻗어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수십 억년 동안 꼼짝을 않고 그러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다에 오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