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꽃을 보지 못하면 꽃은 갈증이 된다. 그 갈증이 가장 극에 달할 때가 겨울의 끝무렵이다. 봄을 앞두었을 때 꽃을 보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가장 길게 축적되어 쌓인다. 3월의 타이베이는 꽃이 많았다. 극에 달했던 꽃의 갈증이 일거에 풀렸다.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면 바다도 갈증이 된다. 꽃과 달리 바다는 갈증의 계절이 따로 있지는 않다. 가끔 바다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길고 오래 지하철과 전철을 타고 인천을 갔었다. 인천역에 내리면 가까이에 인천 바다가 있었다. 타이베이 여행에서도 바다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지룽의 바다가 그 갈증을 풀어 주었다. 와이무산의 해변길을 걷는 시간이 좋았음은 물론이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에서
와이무산 어항에서 다시 지룽역으로 돌아가는 길에선 우여곡절이 있었다. 항구를 나와 다리의 피곤을 느꼈던 나는 큰 길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고 구글맵의 안내대로 302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내가 걸어온 낯익은 길을 거꾸로 되짚어 갔다. 그런데 역을 거의 눈앞에 두었을 때 방향을 바꿨다.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우회해서 역으로 가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나만 남았을 때 마지막 정류장인 듯 보이는 곳에서 기사가 내게 뭐라고 소리를 쳤다. 영어로 지룽역으로 가지 않냐고 물었지만 말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버스를 내렸다. 정류장은 태백장(太白莊)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때 부부로 보이는 대만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지룽역으로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 부부가 자신들을 따라오면 된다고 했다. 버스를 잘못 타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서 타이베이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더니 타이베이 어느 역에서 내리냐고 물었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이라고 했더니 그런 역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아마도 여기선 그냥 타이베이 스테이션인가 보다. 그래서 쑹산의 다음 역이라고 했더니 쑹산역은 잘 안다고 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에서
부부는 작은 버스가 올 것이라고 했다. 정말 작은 버스가 왔다. 두 사람은 지룽역에서 나를 역까지 안내해 주었다. 나는 두 사람도 열차를 타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나를 역까지 데려다 주고는 역을 돌아나갔다. 친절한 대만인들이었다. 표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표를 끊는 곳이 없어 그냥 이지카드로 개찰구를 들어갔다. 지룽은 꼭 표를 끊어야 하는 곳이 아니었다. 개찰구를 들어갔지만 열차가 보이질 않아 두리번 거리며 당황하자 역무원이 열차가 보이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무사히 열차를 탔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에서
열차는 타이베이로 출발하고 건널목을 지나친다. 바깥에선 사람들이 건널목에서 기다린다. 열차는 기다림의 사이로 빠져나간다. 오토바이와 전동 휠체어, 그리고 걸어서 건널 사람들이 엮어낸 다양한 기다림이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지룽에서
빨간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항구를 다녀온 내게는 빨간 등이 집어등처럼 보였다. 도시에선 등이 물고기대신 사람들을 모은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차가 어둠 속으로 진입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는 뜻이 된다. 도시에선 빨리 가려면 어둠을 감내해야 한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타이베이로 돌아왔을 때의 시간은 오후 네 시였다. 호텔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나는 레드 라인으로 바꿔타고 단수이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곳에도 바다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붉은 라인을 따라갔다. 그러나 지하철 타는 곳은 끝끝내 나타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거꾸로 붉은 선을 따라간 듯했다. 복잡한 서울에서 산 내가 타이베이 지하철에선 길을 잃었다. 사실 서울의 지하철에서도 나는 가끔 길을 잃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레드 라인의 열차를 타려고 지하에서 길을 찾던 나는 결국은 바깥으로 나오고 말았다. 지하는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바깥으로 나오자 신호를 기다리는 익숙한 오토바이 풍경이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거리의 풍경으로 방향을 점치며 내가 매번 일정을 시작하던 익숙한 지하철 입구를 찾아갔다. 그곳은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의 5번 출구였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익숙한 지하철 입구를 찾아 지하로 다시 들어간 나는 드디어 레드 라인의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선명한 붉은 색이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지나온 쑹산과 내가 가려 하는 단수이의 지명도 선명했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하철 안의 풍경은 대만이나 한국이나 비슷해 보이지만 대만 지하철은 좌석의 방향이 아주 다양하다. 우리처럼 양쪽으로 나뉘어 서로 마주보며 나란히 놓여있질 않다. 대개 두세 사람 정도가 앉게 되어 있으며 방향은 각각이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룽갈 때와 달리 단수이행 열차는 곧바로 지하를 벗어났다. 지하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높게 달리며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한 나무 아래 가을이 국지적으로 찾아와 있었다. 대만은 봄에 국지성 가을이 찾아오는 신비로운 나라 같았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나갈 때는 모르지만 나중에 구글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준다. 이 독특한 건물은 타이베이 그랜드 호텔이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차가 푸른 숲을 지나고 멀리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보통은 그 반대이다. 레드 라인은 숲을 가까이 둔 구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대개는 건물이 가까웠다.

2026년 3월 2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40분 정도를 달려 열차는 단수이역에 도착했다. 역이 온통 붉다. 이 나라는 중국 공산당과 대치하고 있지만 빨간색 기피증은 전혀 없는 듯하다. 빨강은 우리나라에서만 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