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바깥의 산은 눈에 덮여 있을 정도로 높은가 보다. 터널은 말할 수 없이 길었다. 설산터널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타이베이를 떠난 버스가 차창에 높이 솟은 산들을 담아내다가 마지막에 길고 오랜 시간을 달려 설산수도(雪山隧道), 그러니까 슈에산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높이를 전혀 허용치 않고 말끔이 없앤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다. 나는 그렇게 넓은 평원은 처음이었다. 대만 북동부에 위치한 이란현(宜蘭縣)의 란양(蘭陽) 평원이었다. 모내기를 하고 얼마되지 않은 논이 푸른 빛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것은 논의 바다였다. 그녀와 나는 논의 바다에 와서 구글맵을 켜고 가장 가까운 방향의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길을 가다 리밍초등학교를 만났다. 타이베이의 푸싱초등학교가 대북시 만화구 복성국민소학(臺北市萬華區福星國民小學)이라고 알려주듯이 이란의 리밍초등학교도 의란현 의란시의 여명국민소학(宜蘭縣宜蘭市黎明國民小學)이라는 것을 커다랗게 새겨서 알려주고 있다. 교훈으로 보이는 창신(創新), 인문(人文), 활력(活力)이란 글자도 함께 눈에 들어왔다. 인문과 활력은 알겠는데 창신은 잘 알 수가 없다. 번역기에게 물었더니 혁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이 이란현 이란시의 교사로 1번지(宜蘭縣宜蘭市校舍路1號)이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바다가 가까이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길의 화단에 푸른 돌고래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게 똑바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가면 길의 끝에서 바다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곳의 길은 좀처럼 휘어짐을 모른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 하나를 봤다. 사람들이 붐비면 우리의 마음도 동한다. 그렇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버스 터미널에서 간단하게 무엇인가를 먹은 것이 있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논에 물이 없다. 우리는 모내기를 하고 나면 한동안은 물을 대 두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은 건가 싶었다. 그렇지는 않았다. 이곳을 빼곤 대개의 논이 물을 대 두고 있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길에 차들이 뜸하고 항상 몰려다니며 독특한 풍경을 만들었던 타이베이의 오토바이는 더 이상 없었다. 홀로 신호를 기다리는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가 타이베이를 멀리 벗어났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이곳이 대만의 곡창지대라고 했는 데 그 말을 실감한다. 이곳도 모가 자라 우리처럼 논을 황금빛으로 채우는 것일까. 그게 언제쯤일까. 대만은 남부 지역은 2모작이 가능해 한해에 두 번 추수를 하지만 이곳 란양평원은 한해에 단 한 차례 추수를 하며 그 시기는 6월 중순에서 7월초라고 한다. 그때쯤 황금빛으로 물든 이곳을 다시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가을이 아니라 한여름에 보는 황금 벌판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화분을 철망에 걸어 놓았다. 하지만 대만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다. 땅은 수평의 운명을 산다. 화분을 철망에 거는 순간 수평의 운명을 살아야 했던 땅이 수직의 높이를 갖는다. 땅이 일어선 순간이기도 하다. 인간은 땅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 수평의 세상을 사는 것이 운명이었지만 사람이 많아지고 수평의 땅이 점점 좁아짐에 따라 땅을 수직으로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고층의 건물과 아파트는 인간이 일으켜 세운 수직의 땅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수평의 땅이 비좁아 살 수 있는 땅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인간들은 수직의 땅을 개척했으며 이제 화분도 그 수직의 땅을 산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접시꽃을 만났다. 한국에서 날아온 내게는 접시꽃이 개화 시기를 한참 남겨둔 미래의 꽃이다. 나는 3월의 대만에서 꽃들의 미래를 만난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채송화를 만났다. 꽃이 말할 수 없이 컸다. 한국의 채송화가 작은 것이 원래 품종이 그런 때문이 아니었다. 날씨 때문에 제대로 자라질 못한 탓이란 생각이 든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또 익숙한 꽃이다. 도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내가 사는 서울의 아파트 앞에도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다. 서울에 돌아와 그 나무에 꽃이 핀 것을 본 것은 4월 10일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보름의 차이였지만 3월과 4월로 달을 달리한 때문인지 상당히 먼 미래를 다녀온 느낌이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언젠가 딸은 논을 지나며 모가 푸르게 채워진 논을 잔디밭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해는 아니었다. 잔디는 벼과 식물이다. 둘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모가 조금 자란 논을 볼 때마다 딸의 말이 생각난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란양평원은 산이 보이질 않았다. 가끔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이 나무들 높이만으로 산을 만들었다. 이곳에선 나무들도 벼와 똑같은 평지를 살았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대만에 와서 3월의 신록을 보았다. 한국에서 신록은 4월의 것이다. 대개 은행나무가 새잎을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시기는 4월이다. 대만의 3월엔 어디나 신록이었다. 두 시간의 비행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였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바람이 모를 휘고 모는 휘어지는 몸을 물에 비춰 반원을 그린다. 무수한 작은 활들이 쏘아대든 화살들이 보이지 않게 허공을 날았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진안조(鎮安廟)라는 사원이다. 하도 웅장해서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서 길을 걷다 잠시 앞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들어가진 않았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1시간 반 가량을 걸었지만 어디에서도 바다의 낌새가 보이질 않았다. 그때쯤 배가 고파 눈에 보이는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식당의 벽에 화려한 색의 긴 천이 걸려있다. 천은 금옥만당(金玉滿堂)이란 글귀로 채워져 있다. 금이나 옥처럼 귀한 것으로 가득 차라는 소원이다. 지나가다 밥한끼 먹고 가는 나도 이 집의 금옥을 채우는 데 한몫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내가 귀한 존재가 된 느낌이었다. 이런 천은 대만의 민간 신앙에서 집안의 평안과 행운을 기원하는 것으로 팔선채(八仙彩)라 한다고 한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한글 메뉴가 따로 없어 핸드폰으로 식당 앞의 메뉴를 찍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달라고 했다. 대만의 음식은 먹다 보면 무엇인가 맛을 중화시킬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다 말고 오이지 비슷한 것을 하나 더 시켜야 했고, 그것이 주메뉴를 맛있게 먹는데 크게 기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으로는 부족하여 결국 홍차를 하나씩 시켜서 마셔가며 먹었다. 그냥 단품 하나는 상당히 저렴한데 이렇게 하나둘 시키다 보면 거의 한국과 음식값이 비슷해진다. 식당의 이름은 아마a반면관(阿嬤a飯麵館)이었다. 그녀가 번역기를 돌려보더니 아줌마 밥집이라고 했다. 내가 돌려본 결과에 의하면 아마(阿嬤)는 아줌마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대만에선 아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이런 식당은 정겨운 대만식 가정식을 특징으로 하는 식당으로 이런 곳을 고르면 대체로 실패가 없다고 했다. 음식 조리는 젊은 아주머니가 하고 있었고 서빙은 할머니가 했다. 대만에 먹은 음식 중에 이 식당의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버스는 보이지 않는데 버스 정류장은 자주 눈에 띄었다. 버스 정류장은 버스를 타는 곳이 아니라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곳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이 남긴 대만 여행기에서 버스가 자주 없으니 택시를 이용하라는 경험담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정류장이 모두 이름은 있다. 이 버스 정류장은 길상로(吉祥路) 정류장이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논둑길의 저편에 서 있는 집이 어마무시하다. 도회지인들이 장만한 별장인지, 이곳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의 집인지 궁금하긴 했다. 대개 농촌의 화려한 것들은 농민들의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논은 벼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논은 새도 키운다. 모낼 준비를 하고 있는 논에서 알락도요(Wood Sandpiper) 여러 마리가 눈에 띄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모내기한 논이 우리가 서 있는 풍경의 현재였지만 이 현재는 모가 자라 벼가 되고 그 벼가 바람에 일렁이는 풍경은 과연 어떠할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곳도 벼가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하니까 그때의 풍경이 주는 느낌은 또 어떠할지 마찬가지로 궁금하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쇠물닭(Common Moorhen)이 넓은 논을 독차지하고 돌아다닌다. 물이 깊은 곳에선 헤엄을 쳤고 물의 깊이가 낮아지면 걸어다녔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쇠백로(Little Egret) 두 마리가 논을 걸어다닌다. 둘이 다니면 데이트도 하면서 배도 채우는 이중의 즐거움이 있다. 대만에서 쇠백로는 흔한 새라고 한다. 지룽의 바닷가에서도 쇠백로를 보긴 했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퍼플 리스(Purple Wreath), 그러니까 보라빛 화환이라 불리는 꽃이다. 여왕의 화환(Queen’s Wreath)이나 사포덩굴(Sandpaper Vine)이란 이름도 갖고 있다. 이 꽃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바다로 가던 이란에서의 걸음을 접어야 했다. 세 시간을 걸었는 데도 바다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논을 따라 걸음의 방향을 바꾸며 정처없이 걸었던 탓도 크다. 결국 하장오(下壯五 Xiazhuangwu) 버스 정류장에서 걸음을 접어야 했다. 버스 정류장의 시간표를 보니 곧 버스가 올 시간이어서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려 보았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그녀가 길의 맞은편으로 지나가던 경찰차에 손짓을 했고 경찰은 친절하게 도로를 건너와 도움을 주었다. 처음에 나는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통화를 하고 난 경찰을 그냥 우리를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대만 경찰 만세였다. 두 명의 경찰 중 한 명이 젊은 사람이었고 그가 영어를 잘했다. 경찰차를 타고 가며 우리가 상당히 멀리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땡큐 베리 머치였다. 나는 대만에 와서 이란의 바다를 가겠다고 걸어가다 길을 잃은 끝에 대만 경찰차를 얻어탄 사람이 되었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그래도 이란 바다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이란 버스 터미널 근처에 서 있던 택시에 다가가 가까운 바다를 갈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영어가 잘 통하질 않았다. 택시 운전사가 바꿔준 전화로 한국말 안내를 받을 수 있었지만 바다로 갈 수는 있어도 돌아오는 택시편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바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 터미널에선 영어가 통하질 않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직원이 결국은 안내소를 나와 몸소 손가락으로 우리를 버스 탈 수 있는 곳을 정확히 가리켜 주기에 이르렀다. 타이베이에서 끊어온 버스표의 확인을 다시 받고 무사히 버스를 탔다.

2026년 3월 25일 대만의 이란에서
산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평원을 걷다 왔지만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버스의 차창에선 산이 그려내는 풍경이 좋았다.

2026년 3월 25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무사히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시간이 저녁 다섯 시로 가 있었다. 아직 날은 훤했다. 바다를 보러 갔다가 논의 바다를 보고 온 날이었다. 대만의 이란은 초록의 푸른 바다가 우리를 맞아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