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를 떠나는 날이다. 날들이 빠르게 흘렀고 이곳에서 머문 여행의 시간은 여러가지 인상적인 기억으로 채워졌다. 마치 서너 주 정도의 미래를 온 듯 피어 있는 꽃들이 좋았고 오토바이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도 볼 때마다 눈길을 끌고 가기에 충분했다. 마음의 한구석엔 아쉬움이 있었다. 한 보름 정도 머물면서 이 도시의 여기저기를 떠돌고 싶었다. 불편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행지의 불편은 불편마저 여행지의 특징이 된다. 때문에 여행에선 불편도 감내가 된다. 묵었던 호텔은 객실의 위치에 따라 와이파이가 되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아이폰의 데이터로 맥북의 인터넷을 써야 했다. 딸도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며 노트북을 들고 왔는데 딸의 자리에선 또 와이파이가 잘 되었다.
떠나는 날의 아침은 근처에 있는 다리를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타이베이 대교를 건너 단수이강을 넘어가 본 적이 있었던 나는 호텔 바로 근처에 있는 이 다리 위의 풍경이 궁금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객실의 창으로 가장 먼저 마주했던 푸싱초등학교는 떠나는 날의 아침에도 예외없이 내게 아침 인사를 나누어 주었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 안가는 날이 가장 신났었다. 하지만 오늘은 학교 가야 하는 날이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회사 안가는 날이 좋다. 하지만 여행자는 정반대이다. 여행자는 여행지에 있을 때가 가장 좋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창으로 보니 길건너 편의 건물 둘이 가까이 붙어 있는 것 같은데 양지와 음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건너편에 높은 건물이 없었던 기억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여기는 아침이 양지와 그늘로 나뉘어 오는가보다고 했고 그녀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했다. 나가보니 두 건물 사이의 간격이 컸고 건너편에 정말 높은 건물이 서 있었다. 아침은 아침을 양지와 음지로 나누는 법이 없다. 다만 건물들이 그 아침을 양지와 음지로 나눌 뿐이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있는 동안 자주 올랐던 숙소 앞의 육교이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모두 갖춘 육교이다. 시먼딩 거리를 바로 앞에 두고 있어 밤에는 특히 야경이 좋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대만에 와서 생전 처음 본 꽃들이 많다. 목면나무의 꽃인 목면꽃(木綿花), 그러니까 무미엔화도 그 중의 하나이다. 면화와 같은 솜이 열매로 달려 붉은 목화꽃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아직 잎이 나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꽃이 필 때 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붉은 꽃만 나무에 남는다고 한다. 이 꽃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 3월말의 여름이라니. 3월의 한국에서 여름은 세 달은 멀리 있다. 그 여름이 두 시간의 비행 거리에 이미 와 있었다. 여름은 철새와 같아서 3월부터 대만에서 지내다 그 중 일부가 한국으로 날아온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한무리의 새떼가 사거리의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도시에서 만나는 새는 대부분 비둘기이다. 하지만 타이베이는 비둘기말고도 새가 많은 듯했다. 어떤 새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우리는 페인트를 칠할 때 알지 못한다. 벽의 어느 곳이 벽의 입이 자리한 곳이라는 사실을. 입을 봉하고 오랜 세월을 살아야 했던 벽이 드디어 입을 열고 있었다. 벽의 여기저기 벽의 입과, 코, 눈, 귀의 자리가 있었다. 보통 때는 그 자리를 알 수가 없었고 세월이 벽의 페인트를 일으켜 틈을 벌릴 때쯤에야 알 수가 있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3월말의 대만을 여행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신록의 잎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대만으로 여행온 것이 아니라 아직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신록의 봄으로 미리 여행을 온 것이었다. 어떤 이국은 아직 오지 않은 계절로 훌쩍 떠날 수 있게 해준다. 아마도 한국이었다면 내가 가장 먼저 만나는 거리의 신록은 은행나무가 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베이에서 내게 신록을 선물한 나무는 소엽람인(小葉欖仁)이라 했으며 한국어로는 마다가스카르 아몬드나 작은잎터미날리아로 불린다고 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중샤오교(忠孝橋, 충효대교)에선 오토바이들이 맨 가장자리의 길로 따로 다녔다. 도심으로 끝없이 행렬을 이어갔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다리 밑까지 높이를 키운 나무의 위에서 검은머리갈색찌르레기를 만났다. 타이베이 대교를 건너간 강변에서 처음 봤던 새이다. 한번 낯을 익히면 새는 어느 곳에서 다시 봐도 구면의 새가 된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충효대교(忠孝橋), 그러니까 중샤오교의 다리 위에서 위쪽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단수이강의 가운데 섬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크다. 큰 섬은 대북도(台北島), 그러니까 타이베이 섬이라고 불린다. 위로 보이는 다리는 중흥교(中興橋), 그러니까 종싱교이고 이 다리를 통해 이 섬에 갈 수 있다. 하지만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별로 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냥 무성한 숲에 텃밭들이 있을 뿐이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중샤오교에서 내려다본 아침의 단수이강에선 물고기들이 높이 뛰기를 하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물로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물이 저런 점은 좋구나. 아무리 높이 뛰어올랐다 떨어져도 다칠 염려가 없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물고기는 강의 살아있는 심장이다. 조용히 일렁이는 물의 몸 속을 유영하며 살지만 가끔 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펄떡펄떡 뛰어오른다. 우리는 그때마다 요동치는 강의 심장을 본다. 생각보다 상당히 높게 뛰어오른다. 하지만 어디서 뛰어오를지를 몰라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무수히 찍었으나 뛰어오른 물고기가 찍힌 사진은 딱 한 장이었다. 물보라 사진은 수없이 많이 남았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차들은 달리지만 오토바이는 쏟아져 나온다. 타이베이의 오토바이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터진 봇물이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강가를 따라 길이 휘어진다. 이 길은 오토바이 전용도로인가 보다. 오토바이들이 마치 열차처럼 이어달린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길을 절반으로 나누어 방향을 정반대로 달리하고 그렇게 나누어 가진 길의 한쪽에서 차들이 막히는 경우는 많이 봤다. 하지만 길을 나누었지만 방향도 같았다. 그런데도 한쪽 길만 막혔다. 같은 방향 같았지만 갈라서는 길인가 보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앞의 방향이 길의 체증을 결정한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나무는 뿌리를 머리카락으로 삼았다. 머리카락이 있으니 나무는 전체가 머리이다. 타이베이의 반얀트리는 생각으로 가득찬 삶을 산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한 잎은 붉고 한 잎은 푸르다. 3월의 가지 끝에서 가을과 여름이 동거하고 있었다.

2026년 3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길에 떨어진 목면화를 보았다. 우리의 진달래는 봄의 시작을 알리고 대만의 목면화는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봄은 분홍이고 여름은 붉다. 꽃들은 계절을 색으로 구별한다. 우리에겐 붉은 꽃이 지면 그 꽃은 동백이며 동백이 지면 그것은 봄의 시작이 아니라 겨울의 끝이다. 타이베이에도 동백이 있었다. 내게 타이베이의 동백은 사는 곳을 달리하면서 겨울을 잃어버린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