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7월 10일 서울 강남의 양재동에서
M극장을 가야 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대학로에 있겠거니 했다. 그렇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공연장은 강남의 양재동에 있었다. 대학로라는 지명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많이 다녀본 곳이란 얘기이다. 하지만 양재동은 잘 모른다. 그곳에 있는 M극장에서 배우 김현아가 출연하는 무용 공연이 있었다. 세상에 배우는 많지만 내가 배우라는 명칭으로 어떤 배우를 환기할 때면 그 순서의 첫자리는 언제나 김현아의 몫이다. 그가 그곳의 공연에 출연하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가야 했다.
루카치는 그의 책 『소설의 이론』에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길의 지도가 되고 별빛이 그 길을 밝혀주는 시대는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길을 찾기 위해 별이 뜨는 시간을 기다리고, 시간이 되었을 때 그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핸드폰을 들고 지도앱을 켠다. 지도앱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지도를 손안에서 띄워 M극장까지 갈 수 있는 길을 밝힌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그 중의 하나를 살펴보면 군자역에서 열차를 바꿔타고 학동역까지 간 뒤 그곳에서 버스를 타라고 되어 있다. 버스는 463번과 4211번 중에서 먼저 오는 것을 타면 된다. 버스가 곧장 M극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구룡사 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 지도앱은 그 길로 갔을 때 걸리는 시간이 1시간 7분이라고 했다.
나는 좀 더 시간이 짧은 길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53분이 걸리는 또다른 길이 있다. 두 정거장을 가면 도착하는 강동역까지 가서 마천행 열차로 바꿔타는 것으로 길이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오금역에서 내려 대화행 열차로 갈아탄 뒤 도곡역에서 내리고 그곳에서 4번 출구로 나가 강남10번의 마을버스를 타면 이제 내가 내릴 정류장의 이름은 도곡교회, 인바디빌딩이 된다. 정류장에서 M극장까지는 약간의 거리를 걸어야 한다. 다소 복잡한 방법이다. 나는 복잡한 방법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도곡역까지는 쉽게 갈 수 있었다. 4번 출구를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생각없이 출구를 나섰지만 정류장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걸어야 하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걷다 보니 이상했다. 다시 지도앱을 들여다보니 방향이 거꾸로였다. 방향을 돌려 다시 출구쪽으로 돌아왔다. 출구의 왼쪽을 살펴보니 가까운 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처음에는 근처의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정류장이었다. 약간의 걸음을 정류장 방향으로 옮겨야 비로소 정류장이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무사히 버스를 탔다. 내리는 것도 무사히 내렸다. 길이 높았고 아래쪽, 그러니까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과 또다른 아래쪽, 그러니까 찻길과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향하면서 서서히 높이를 낮추며 흘러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또 생각없이 찻길 옆의 보행로를 따라 걸었다. 걸으면서 살펴보니 지도앱이 내가 걷는 길이 극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했다. 바로 곁의 안쪽에 길이 있고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길 바로 옆의 건물들 때문에 건물 뒤쪽에 있다고 나오는 길은 보이질 않았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니 정류장에선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걸어 드디어 M극장에 도착했다.
루카치는 별자리로 길의 방향을 더듬어야 했던 시대가 행복했다고 했다. 그는 그 시대를 어디를 가든 길이 모험으로 가득한 길이었던 시대였다고 알려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여전히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길을 찾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별자리를 핸드폰 속의 지도앱으로 내려 손안의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지도앱으로 부르지만 그것은 사실 이 시대의 별자리이다. 우리는 한낮에도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때면 지도앱을 켠다. 이 시대의 도시에선 건물들이 시선을 막아 바로 곁에 두고도 우리가 찾는 곳을 찾을 수가 없다. 거의 바로 앞에 도달하고 나서야 우리는 찾는 곳을 드디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 것일까. 눈앞의 곳을 찾을 때도 마치 밤하늘을 올려다 보듯 지도앱을 켜야 하고, 그러면 그 지도앱이 길을 밝혀주는 우리의 시대는 행복한가.
루카치는 우리의 영혼 속에 불꽃이 있고 그 불꽃은 본질적 속성으로 보자면 별빛과 같다고 했다. 그는 불과 빛이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둘이 분명하게 구별되면서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불은 빛의 영혼이고 불이 옷처럼 걸치고 있는 것이 빛이라고 그는 말했다. 루카치가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던 시대가 행복했다고 말했을 때 그 행복은 그렇게 길을 찾았을 때 그 길은 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내가 내 자신을 찾는 여정이기도 했다. 내 영혼 속의 불꽃과 밤하늘의 별빛이 속성이 같아 사실은 그 빛이 내 영혼이 걸친 옷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그 시대엔 별빛이 밝힌 길의 끝에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루카치에겐 그것이 행복이었다.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아가면 그 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났다. 어쩌면 우리의 시대에 더 절실한 길찾기 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엔 우리가 우리를 잃고 살아간다는 얘기가 더욱 흔해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밤하늘의 별대신 지도앱을 별자리처럼 펼치고 어렵게 M극장을 찾아갔다. 별자리를 찾던 행복한 시대처럼 나도 그 길의 끝에서 내 자신을 함께 찾아낸 것일까. 나는 그곳에서 무용 공연을 보았다. 무용수들이 몸으로 엮어내는 동작들이 무대에서 별처럼 빛났다. 그들은 무용으로 자신의 길을 찾으면서 내게는 별빛이 되어 주었다. 지도앱을 별자리처럼 펼치고 잘 찾아가면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행복했던 시대처럼 길을 갈 수 있었다. 별자리가 모두 손안의 핸드폰 속으로 자리를 옮긴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