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의 봄

2004년, 그러니까 지난해 4월 21일.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4월 중순경 난생 처음으로 SLR 카메라를 장만한 나는,
그러나 일 때문에 계속 집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꾹꾹 참고 밥벌이를 위한 노동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지만
그 참을성은 결국 21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날 나는 그냥 머리 속에서 다른 생각은 다 지워버리고
무작정 카메라를 든채 강변 터미널로 나가 백담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서 내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백담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나타난 다리에서 아래를 보니
물과 산이 어울려 풍경을 엮어내고 있었다.

다리에서 위를 보니
풍경은 물과 절벽으로 그 풍광을 달리했다.

매표소의 앞쪽으로 자리잡은 밭에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감자를 심기 위해
밭을 고르고 있었다.
손을 내저어 카메라를 마다했지만
다행이 그 전에 미리 몇장을 찍을 수 있었다.

나는 백담사라는 절을 간다기 보다
풍경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회색의 콘크리트는 얼마나 삭막한 것이냐.
그러나 자연이 감싸주면
그 삭막함도 충분히 견딜만하다.

바람같이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고,
그렇게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걸음의 끝에서
꼬박 1시간 40분만에 처음으로 문을 만났다.
반가웠다.

길은 항상 저 끝으로 모인다.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절의 앞마당까지 들어가고 나간다.
그 은혜로부터 비켜선 나는 다리가 많이 아팠지만
이상하게 버스 속의 그들이 부럽지 않았다.

바위 하나가 등짝을 물밖으로 내밀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어디가 물밖이고, 어디가 물속인지 알 수 없었다.
절에 오면 이렇게 안과 밖의 경계가 지워지는 것일까.

아아, 님은 갔습니다만 여기 흉상으로 남았습니다.

물길이 산을 맴돌고 있었고
내 시선도 한참 동안 물을 따라 맴돌았다.

진달래는 그 진홍빛 아름다움을 흙에 누이고
제 나온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꽃의 마지막도 아름다웠다.

물이 바위를 깎아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풍경이 아름다워 물이 그곳으로 찾아드는 것인지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들어갈 때 보았던 감자는
알토란 같은 잉태를 꿈꾸며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아저씨가 손을 내밀자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었다.
평화가 따로 없었다.

다리 아래선 바람이 거세게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고
절앞의 고요함 속에서 안과 밖의 경계가 없었던 물은
이제 그 경계를 분명히 하며 안과 밖으로 갈라서 있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 것이 분명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