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갑사,
절로 들어가는 통로 가운데 아치형의 통로가 있습니다.
사실은 들어가는 통로라기 보다
일주문으로 들어가 절을 둘러본 사람들이
나올 때 많이 이용하는 통로입니다.
통로는 사람 몇 명이 드나들만한 크기이며
그다지 크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 밑에서 몸을 낮추면
그 통로의 아치형 틀안으로
하늘과 나무, 그리고 건물의 처마가 담깁니다.
몸을 일으키면 하늘이 슬그머니 더 내려오고
건물의 지붕 위로 더 넓게 그 틀안을 가득 차지합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
하늘과 지붕이 그 틀안에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이 통로로 올라가다 가운데 서서 시선을 위로 두면
통로 위쪽으로 커다란 구멍이 보입니다.
크기가 좀 커서 사실 구멍이란 말이 잘 어울리진 않지만
달리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그 구멍을 아래로 내려서 세워두었다면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드나들만한 쪽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늘로 내놓은 쪽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거나 그 구멍으로 올려다보면 나뭇가지가 보이고,
그 사이를 메꾸고 있는 하늘이 보입니다.
아마 밤이라면 그 구멍으로 별이 쏟아질지도 모릅니다.
비가 오면 빗줄기가 그 구멍으로 후둑거리며 몸이 쑥 빠질테니
비를 피해 뛰어들어온 사람은 좀 난감하기도 할 듯 합니다.
구멍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 보다 나는 문득 궁금해 집니다.
도대체 통로 한가운데 왜 구멍을 내놓은 것일까요.
구멍으로 올려다 보면 같은 하늘인데도 느낌이 다릅니다.
시선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산의 정상에서 하늘을 마주하면
하늘을 우리의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느낌인데
이렇게 구멍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면
하늘이 그 구멍에 담겨있거나,
혹은 하늘이 그 구멍으로 내게 쏟아지는 느낌입니다.
구멍은 작지만 그 넓은 하늘을 담아서 우리에게 내밀 수 있습니다.
혹은 하늘이 보이게 구멍을 내놓는 순간,
하늘이 그 구멍 속에 무엇이 있나 궁금하여 들여다보다
우리의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맙니다.
하늘을 담거나 하늘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하늘만한 구멍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늘에 닿기 위해 산의 정상, 그 아득한 높이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계단을 내려오다 하늘로 난 구멍을 올려다 보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후 통로를 나섰을 때
세상에 하늘이 그득한 느낌이었습니다.
4 thoughts on “하늘이 쏟아지는 구멍”
비나 눈이 올때 저 계단에 앉아서 바라보면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기 계단에 앉으면 아래쪽으로 넓은 마당이 보여요.
산으로 가는 길목이라 지나는 사람도 간간히 보이구요.
근데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걸리적 거려요.
그래도 전 계단에 아예 드러누워 사진을 찍었어요.
요즘 같은 밤에는 아마도 저 아래에 있으면 별이 무수히 쏟아질거야.
별이 무수히 쏟아지면 하늘이 가벼워져서 더 멀어질까..ㅋㅋㅋ
오규원의 이번 시집을 보니
별이 자신을 불태워 아침을 연다고 되어 있더군.
쏟아진 별을 아궁이에 집어놓고 따뜻하게 방을 덥히고
한잠자고 나면 아침이 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