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잠자리 그림자가 있는 집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2월 6일 서울 고덕동의 외가집에서


나에겐 외삼촌이 네 분 계십니다.
그중 큰외삼촌댁이 바로 옆동네인 고덕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명절이나 어른들 생일 때,
서로 얼굴을 찾아보는 거의 유일한 친척 중의 하나입니다.
큰외삼촌은 돌아가셨고 외숙모가 맏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원래 큰외삼촌댁은 강원도 영월의 연당이었습니다.
연당은 영월의 서강 줄기에 자리잡은 마을입니다.
나는 외가댁 가운데서 큰외삼촌댁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큰외삼촌댁은 마을에서 뚝 떨어진 북향의 산중턱에
주변을 온통 밭으로 둘러싸고 자리를 잡고 있던 집이었습니다.
그 집에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철길을 건너고,
논둑길을 잠시 이리저리 휘어지며 걸은 뒤,
다시 개울물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아마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징검다리를 건너 찾아가는 그 길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길은 논과 논 사이로 방향을 내고는 산중턱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그러다 숨이 차다 싶으면 한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또다른 한길은 왼쪽 길만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큰외삼촌댁은 오른쪽 길의 끄트머리에 앉아서 항상 날 반겨주었죠.
머리 속에서 그려보면 지금도 그림같은 길이었지만
마을에서 뚝 떨어진 그곳이 사는 데는 많이 불편했나 봅니다.
어느 해 내려가보니 큰외삼촌댁은 철길의 건너에서
철길의 안쪽으로 새집을 지어 이사를 했더군요.
징검다리 건너가서 만나던 외가댁의 추억이 그리워
산자락을 살폈더니 그 자리엔 밭만 휑했습니다.
많이 아쉬웠죠.
큰외삼촌댁이 고덕동의 살던 아파트에서
그 근처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외숙모의 생일을 맞아 이사도 축하해 줄 겸 아침 나절에 집을 찾았습니다.
아마도 전에 어린이집을 하던 곳이었나 봅니다.
바깥창에 이것저것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붙여놓았습니다.
아침 햇볕이 든 안쪽 창에 바깥창에 붙인 그 꽃이 꽃그림자로 피어있었습니다.
한쪽 창을 열자 잠자리 그림자는 아예 방안까지 날아들어
벽을 타고 비스듬히 날았습니다.
그 옛날 철길과 징검다리 건너 만나던 집이
이제는 아침마다 창에 꽃이 피고,
문을 열면 방안으로 잠자리가 나는 집이 되어 있었습니다.
생일이었지만 외숙모는 미역국 먹으면 너무 오래산다며
미역국 끓이지 말고 고기국 끓이라 하셨답니다.
우리네 어머님들이 다들 그렇듯이
외숙모도 자식들 많이 가르치지 못한 걸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짐될까 걱정하는 어머님입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많이 좋아한 외숙모의 심성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외숙모는 나를 공부잘했던 아이보다
할머니에게 잘했던 아이로 더 기억하고 계십니다.
한때 내게 철길과 징검다리 건너 산중턱에 있던 그 외숙모가 사는 집은
이제는 한동안 꽃과 잠자리 그림자가 있는 집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2월 6일 서울 고덕동의 외가집에서

4 thoughts on “꽃과 잠자리 그림자가 있는 집

  1. 형님 새해좋은일만있으시고^^
    늘건강하시고^^
    소원하시는모든일이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기원할께요^^

  2. 외가집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정겨운것인가봐요.
    전 마석에 살고 외가는 청평이어서 늘 방학이면 기차여행을 하곤했어요.
    외숙모는 맛난 과자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시고
    암튼 무슨 요리든 외숙모 손만 거치면 너무나 맛있었던 기억이.^^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1. 맛있는 거 많이 드셨나요?
      저희도 올해는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더군요.
      손님들 온다는데 와인도 사와야 될 거 같구…
      처가댁은 오후 늦게 갈 듯.
      즐거운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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