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이사오고 난 뒤,
3월쯤 고향에 내려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쯤 서울은 어느 정도 포근해서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원주만 들어서면
벌써 버스의 창가에 어른거리는 공기가 냉랭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산에는 히끗히끗 눈이 남아있곤 했습니다.
강원도가 그만큼 춥다는 얘기죠.
한동안은 그걸 ‘강원도는 추워, 그래서 눈이 많아’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강원도의 눈에 대한 이해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강원도는 추워, 그래서 눈들이 모두 강원도로 도망쳤어.
바로 그렇게 이해를 하게 되었죠.
설 다음 날, 그녀와 함께 남한산성을 오를 때,
계속 산의 북쪽 사면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갔습니다.
햇볕 잘드는 남쪽 능선에서 쫓겨온 눈들이
모두 그곳에 숨어 있습니다.
숨어 있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몸을 제대로 감추고 숨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 사이, 그늘이 좀 깊고 진하다 싶은 곳으로 앉아선
하얗게 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눈이 도망쳐 온 북쪽을 따라 내내 걸었습니다.
눈밭을 자꾸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죠.
그러다 그 눈밭에서 사랑을 찾아냈죠.
따뜻할 땐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는데
추울 때는 사랑마저 없으면 세상이 너무 춥습니다.
아마도 눈이 없었다면 그 날의 그 자리는
그냥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자리에 불과했었겠지요.
눈이 도망쳐온 북쪽 사면으로 갔더니
날씨는 쌀쌀하고 추웠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사랑 하나는 건질 수 있었습니다.
난 다음에도 마른 낙엽이 버석거리는 햇볕 잘드는 길을 버리고
냉랭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가서
그곳으로 도망쳐온 눈들의 가슴을 열어볼 겁니다.
4 thoughts on “눈밭에서 사랑 찾기”
오규원님의 시를 찾아 블러그에 넣고 싶어 들어 왔다가…이렇게 좋은 글에 머뭅니다…시는 어디에 있을까요…사랑은…발밑에 있음을 배워 가며…추운 눈밭에서 사랑 찾으신 마음의 밭에 함께 하고 싶네요~~~
오규원님은 시가 우리들 발밑에 있다고 하던데요.
http://blog.kdongwon.com/974
시는 시의 나라 코너에 주로 있어요.
오늘은 종로 나가서 발밑을 살피며 좀 돌아다니다 와야 겠습니다.
찾아주신 거 고마워요.
이런 사진보면 김동원님 가슴엔 온통 사랑투성이일것같아요. 그죠?^^
사랑이란게 참 별거 아닌것이기도하고 모든것이기도하고…
요것 말고 쫄쫄거리며 떨어져 고여있는 약수터의 물 속에도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