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어디에 있는가.
시의 자리가 따로 있을리야 없지만
나는 질문을 그렇게 던지고 황동규를 따라 나선다.
그의 걸음은 당진의 장고항 앞바다에 이르고 있었다.
시인은 “갑판에 누워 있는 우럭들을 마주하고 소주를” 한 잔 한다.
“회칼로 생살 구석구석을 저미는 눈부신 아픔에 몸”을 다 내 준 우럭이
시인을 “무덤덤한 얼굴”로 바라본다.
시인은 “이제 더는 없어, 하며 하나같이 가시를 내보이는” 우럭을
“썩 괜찮은 죽음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먹던 회를 갈매기와도 나눈다.
던지는 회 몇 점 갈매기들이 공중에서 받아먹고
발동 끈 뱃머리에서 바람이 소리 없이 웃고 있다.
그 언제가 몸의 살 그 누구에게 눈부신 아픔으로 내주고
뼈마디들도 내주고
무덤덤한 얼굴을
삶의 얽힘과 풀림의 환유(換喩)로 삼을 날인가?
갑판에서 얼굴 하나가 불현듯 눈을 크게 뜬다.
—황동규, 「당진 장고항 앞바다」 부분
그래, 시는 당진의 장고항 앞바다에 있다.
가보고 싶다, 그곳에.
찾아보니 당진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해대교를 넘어가면 만나게 되는 곳이다.
장고항은 당진의 북쪽에 있다.
그 이름이 낯설다면 당진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왜목마을을 찾아가면 된다.
왜목마을은 서해에서 바다의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편이다.
언젠가 그곳에 한번 갔었다.
그 아래쪽으로 장고항이 있다.
이제 황동규의 시가 있어 시의 자리가 된 그곳에 가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에선 좀 멀다.
서울의 동쪽 끝에 살다보니 서해는 어디나 좀 먼 느낌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차라리 동해가 가깝다.
나는 좀 멀다는 이유로 그곳에 가고 싶다던 마음을 거두어 들이고 만다.
시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같은 질문을 다시 앞에 내세우고
이번에는 조용미를 따라 나선다.
그의 걸음은 만일암터에 이르고 있었다.
‘만일암터’는 “대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며,
“바람이 쓸고 가는 댓잎소리와 새소리만 사는 곳”이다.
또 “돌계단 아래 천년수와 암자 몇 채를 거느리고 있는,
오층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곳”이다.
그곳의 샘가에는 “연둣빛 머위꽃이 피어 있”고
“어치가 대숲에서 나왔다가 어디론가 재빨리 사라지”곤 한다.
시인은 그곳에 가면 ‘바람’이
“탑의 근처에는 살지 않고
만일암터를 둘러싸고 있는 대숲에만 머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바람이 숲을 나와 천년수가 있는 샘가까지 내려올 때가 있다.
바람이 천년수를 만나러 내려오는 밤이면 오층석탑 위로 폭우 같은 달빛이 쏟아진다 석탑 위로 비단 같은 모래가루가 떨어져 내린다 탑이 달빛에 울리는 소리는 천년수 아래로 내려가고 나뭇가지들이 소리를 내며 달빛을 받아먹는다
—조용미, 「만일암터」 부분
그래, 시는 만일암터에 있다.
가보고 싶다, 그곳에.
가서 나뭇가지가 소리를 내며 달빛을 받아먹는 밤까지 머물고 싶다.
하지만 그곳은 당진의 장고항보다 더 멀다.
만일암터에 가려면 전남의 해남에 있는 대륜산의 대흥사를 찾아가야 한다.
아마 가는 데만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서울에선 마음 먹기에 어려운 거리이다.
나는 이번에도 너무 멀다는 이유를 들어 그곳에 대한 마음을 접고 만다.
시는 어디에 있는가.
또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이번에 내가 따라나선 시인은 오규원이다.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인은 눈밭에 찍힌 발자국을 내려다보고 있다.
눈이 자기 몸에 있는 발자국의
깊이를 챙겨간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깊이를 바람이
땅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오규원, 「바람과 발자국」 전문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에게도 눈밭에 발자국을 찍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2006년 2월 2일에 나는 그녀와 함께 백담사로 향하고 있었고,
우리는 홍천의 외삼포리를 지나다 차를 세웠다.
우리를 세운 것은 흩뿌린 눈이 그려낸 길옆의 마을 풍경이었다.
나는 그때 마을로 들어가는 그 하얀 길에 처음으로 내 발자국을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새기며 걸어갔다.
길은 앞을 열어 갈 길을 알려주긴 하지만 발자국은 챙겨주지 않는다.
하지만 눈길은 내가 아무리 흘리고 가도 졸졸 뒤를 따르며 내 발자국을 모두 챙긴다.
그렇다고 눈에 발자국을 새기기 위해
멀리 강원도로 걸음할 필요는 없다.
2005년 3월 9일에는 서울에도 눈이 왔다.
나는 그냥 베란다 문을 여는 것만으로
베란다 난간에 쌓인 눈 위에 발을 올려놓고
내 발자국을 새길 수 있었다.
그때 난 눈만큼 내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주는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서울에 눈이 왔던 기억을 찾아
그렇게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올겨울에도 서울엔 벌써 서너 차례 눈이 왔다.
눈이 왔을 때마다 사는 집의 옥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바로 아래쪽으로 보이는 놀이터에 아이들이 찍어놓았음직한 발자국이
어지럽게 이리저리 얽혀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뱅뱅 돌고 있다.
그러니 눈밭의 발자국을 들여다 보기 위해 그리 멀리 갈 것은 없다.
그냥 눈온 날, 바로 우리가 발걸음을 딛는 어디에나 발자국이 있다.
눈이 오고, 발자국이 새겨지면,
그것은 오규원의 표현을 빌자면,
내 발자국의 깊이를 눈이 챙겨가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 눈이 쓸리면서 그 발자국을 덮고 있다면
그건 미처 눈이 다 챙겨가지 못한 발자국의 깊이를
바람이 땅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순간이다.
눈밭에선 내 발자국이 깊이를 갖는다.
눈이 챙겨가는 내 발자국의 깊이를 들여다 보았더니 깊이가 얕다.
아마도 눈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깊이가 있어 챙겼더니 그 깊이가 텅 비어 있었으니 말이다.
발자국의 깊이를 눈만 챙겨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내가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던 소래포구 폐염전의 뻘밭도
내 발자국의 깊이를 지긋이 챙긴다.
날씨가 좀 건조하다 싶으면
남한산성을 오르는 등산로에 사람들 발길을 따라 흙먼지가 일고
그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그 길도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의 깊이를 아주 엷게 챙긴다.
발걸음 하나를 디뎌도 내 발자국의 깊이를 챙겨가는 길이 있다.
눈길이, 폐염전의 뻘밭이, 며칠전에 올랐던 등산길이
우리들 발자국의 깊이를 챙기고 있다.
그렇지만 깊이를 챙기는데 있어선 역시 눈길이 남다르다.
폐염전의 뻘밭이나 흙먼지에 덮힌 등산길과 달리
눈은 길을 지워버리면서 우리에게 발자국의 깊이를 열어준다.
길은 사람을 앞으로 앞으로 이끌면서 오직 시선을 앞으로 현혹할 뿐,
우리의 발자국이 가진 깊이를 챙겨주지 않는다.
우리도 길에선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갈 뿐,
길에게 챙겨줄 발자국의 깊이를 갖추려 들지 않는다.
눈길에서 우리는 비로소 발자국의 깊이를 돌아볼 수 있으며,
눈길은 또 길을 지워버린 그곳에서 우리들 발자국의 깊이를 챙겨갈 수 있다.
길이 지워진 눈밭에서 오래도록 걸으며 발자국의 깊이를 쌓다보면
우리는 자신의 발자국으로 깊은 우물을 만들어
그 우물의 물로 목을 적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내가 눈내린 날, 하염없이 발자국을 찍으며 끝간데 없이 걷고 싶은 것은
어찌보면 깊이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규원이 눈밭에 찍힌 발자국을 내려다보며 그려낸 시 한편은
내게 그런 울림으로 퍼져 나간다.
그래 그러고 보니, 시는 바로 나의 발밑에 있었다.
시는 또 나의 코끝에도 있을지 모른다.
귀에 걸려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발밑을, 코끝을, 또 귀를 유심히 살펴봐야 겠다.
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만약 눈이 온 날, 면전에서 내가 그렇게 물었다면
아마도 오규원은 짧게 한마디 하고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조고각하(照顧脚下) — “네 발밑을 보라.”
당신의 발밑에 시가 있다.
4 thoughts on “당신의 발밑에 시가 있다 – 오규원의 시 「바람과 발자국」”
지금 발밑을 보고 있는데 오염된 인간 발밑에는 빠진 머리카락만 있네요.
장고항은 왜목마을 옆에 있답니다. 실치회가 유명하다고 해서 먹어 본 적이 있습니다.
왜목마을 일출을 찍으러 많이 갔었지만 역시 오염된 인간에게 그 자격을 주지는 않더군요.
장고항에 가신 적이 있으시군요.
저도 왜목마을에 갔었지만 한낮에 가서 일출은 아예 꿈도 못꾼걸요.
바다 풍경만 찍어갖고 왔었죠.
그리고 혹 좀 시간이 지나면 그 발밑의 머리카락이 시가 될지도 모르니 한장 찍어두시길.
시는 내 눈길이 가는곳에 내 마음이 머문곳에요.^^
저도 발자국한번 찍어볼걸 엄마 일하시는 장화신고 마구 돌아다니기만했었네요.^^
참,그때 엄마꺼 몸빼바지도 입었었네요.ㅋㅋ웃겼겠죠?^^
몸빼바지에 캐논 DSLR을 든 예쁜 아줌마라니, 그건 꼭 봤어야 하는 건데 말예요.
게다가 장화까지.
아마 제 눈앞에 있었으면 분명히 찍어두었을 거 같아요.
무안의 백련지 갔을 때, 수녀분이 커다란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어갖고 가고 있는데 절로 눈길이 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