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과 얼음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2월 23일 하남의 벨가또 앞 연못에서


마른 나뭇잎 하나가
꽁꽁 얼어붙은 연못 위로 떨어졌습니다.
나뭇잎은 마르기 전엔
가지 끝에서 살았습니다.
가지 끝에서 살 땐
물이 나무의 줄기를 타고
나뭇잎을 찾아왔었죠.
물은 나뭇잎 속에서
나뭇잎과 푸른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겨울이 오면서 물의 걸음이 끊기고
나뭇잎은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푸른 대화로 가득했던 나뭇잎엔
갈색 외로움만 잔뜩 고였습니다.
그 메마른 삶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나뭇잎은 연못으로 뛰어내렸죠.
제 품에 안고 살던 물 속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물은 얼어붙어 있었죠.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이제 물은 옛날의 그 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가슴이 냉랭하게 얼어붙어
멀리서 눈길만 슬쩍 스쳐도 찬바람이 돈다고 했어요.
다들 그 얼어붙은 가슴을 두드리다
잎이 다 헤어지고 말 거라고 했죠.
시간이 좀 흐르고 난 뒤,
다시 연못을 지날 때 들여다보니
나뭇잎은 연못의 얼음 속에 화석처럼 안겨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제 사랑으로 얼음을 조금씩 녹힌 것인지,
얼음이 제 몸을 조금씩 녹혀 나뭇잎을 안은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2월 10일 하남의 벨가또 앞 연못에서

6 thoughts on “나뭇잎과 얼음

  1. 눈물이 찔끔 날 뻔 했습니다.
    계절이 저리 만들었나요,
    아님 세대교체를 위한 순리인가요?
    새봄에 환생해서 다시 만날 수 있겠죠?

    1. 그래도 그리워하던 물의 품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슬픔을 거두어도 되실 듯.
      사랑의 품에서 마무리하는 생처럼 행복한게 있을라구요.

  2. 눈도 좋으세요.
    벨가또에는 여러 번 갔었는데 연못이 있다는 것도, 그 안에 저런 사랑이 있는 건 더더욱 보지를 못했네요.

    1.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에 물레방아도 있고 그렇던데요. 전 처음 가던 날 거기서 놀았는데… 호수라고 하기엔 뭣하고, 연못이라는 말도 사실은 잘 어울리질 않고, 웅덩이라고 하기엔 좀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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