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에 타 소실되었다고 한다.
많이 허무하다.
가장 최근에 숭례문을 지나간 것은 올해 1월 18일이었다.
그날 난 고장난 MP3 플레이어를 고치려 용산에 들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서울역에서 버스를 내렸다.
카메라 부품 하나를 사기 위해 남대문 시장으로 걸음을 옮긴 나는
숭례문을 거쳐 카메라 상가가 있는 곳으로 갔었다.
그날 카메라를 꺼내 숭례문을 찍어볼까 하던 나는
그 길을 그냥 지나쳤었다.
언젠가 양양의 낙산사가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쉬움이 많았다.
낙산사에 들린 적이 있었으나
절을 카메라에 자세하게 담아두지 못했었다.
숭례문의 경우엔 아쉬움이 더하다.
그것은 아마도 숭례문이 그냥 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숭례문은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그대로 있어줄 것만 같은 문이다.
그 문이 그 자리에 그냥 변함없이 서 있다는 것만으로 내게 힘이 될듯한 문이다.
그 자리에 서서 나도 모르게 내 존재의 한뿌리를 이룬 듯한 문이다.
그 문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모두가 함께 나누어 갖고 있을 듯한 문이다.
가슴의 한쪽이 텅빈듯한 허무함은
그 문이 지닌, 그런 문 이상의 상징적 의미에서 오는 것이리라.
다행히 지지난해, 그러니까 2006년 3월 22일에,
나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숭례문으로 나가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오늘 그때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숭례문의 누각은 지붕이 지붕을 이고 있다.
요즘은 20층을 쌓아올려도, 30층을 쌓아올려도 지붕은 하나이지만
숭례문은 단 두 층을 두면서도 각층마다 지붕을 준 셈이다.
새로 숭례문을 보수하여 공개하면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포토존을 마련했다.
그곳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숭례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역쪽에서 숭례문으로 들어갈 때 마주하게 되는 모습.
서울역은 지금은 번화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성밖이었다.
숭례문의 현판.
예를 숭상하는 문.
한동안 굳게 닫혔던 숭례문은
이때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러 나간 것도
이렇게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된 때문이었다.
내가 나갔던 날은 숭례문의 옛모습을 모아놓은
사진 전시회가 통로의 안쪽에서 열리고 있었다.
숭례문으로 들어와서 마주하게 되는 성안의 풍경이다.
지금이야 성밖과 성안의 구별이 없지만
예전에는 이 문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가 성안이었던 셈이다.
통로의 천정을 날고 있던 용.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채 날고 있었다.
숭례문이 닫히고 있다.
항상 닫혀있다가
열고 닫고를 시작한게 겨우 두해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아예 닫을 문을 잃어버렸다.
문은 닫을 때 닫고 열 때 열 수 있어야 한다.
아무 때나 항상 열어놓는 것이 문일 수 없고,
항상 닫아놓는 것도 문일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열어놓을 문도, 닫을 문도 없이
문을 통채로 잃어버렸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25 thoughts on “숭례문”
블러그에…남대문 사진 넣었더니~
시보다 더 격조있는 멋진 사진에 허전한 마음도 가셨어요
오늘~눈 오는 모습…사진기에 담았어요…
저도 사진을 더 배워서 제 글과 같이 넣고 싶거든요
다음 달에 좋은 사진기 구입하려 해요
부부의 살아 가는 진솔한 이야기들…
인간미가 있어 참 좋네요
그녀의 블러그에도 들어 가 보았거든요
싸우시지 말고요…
서로 불쌍한 눈으로 바라 보시고 사세요…
아직도 젊으신가 봐요…ㅋ
싸우지 않고 사는게 쉽지가 않네요.
인생이란게 아무리 살아도 정답도 없는 것 같고…
좌우지간 말씀 고마워요.
어머…어떡해요~~~ㅠ
제가 실수를 했네요…ㅋ
전 블러그는 특수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어요…
컴맹이었다가 학교 사이트에 겨우 답글 다는 수준이었죠…
작년 겨울에 처음 블러그 만들고…
공부 잘 하던 제 친구들은 아직도 컴맹이어서 들어 오질 못해요…
아줌마들이란 순발력도 그렇고…
눈 같이 너그러운 마음으로~~~감사합니다…
뭘요. 그것 때문에 한마디 더 나누고 좋은 걸요.
컴퓨터 실수는 고치면 그만이예요.
저도 블로그의 글을 쓰다가 실수를 하곤 하는데 이곳에 들러주는 분들께 많이 배우는 걸요.
읽어주고 가르쳐주고… 그저 고마울 때가 많아요.
넘 감사합니다…
격이 있는 분에게 詩~~~
칭찬 받는 것…날아 갈 듯하네요…
블러그에도 사진 넣을께요…
축복의 말씀 같이 눈이 오고 있어요…
발 밑의 사랑을 찾으러…발도장 찍으면서 사랑을 찾아 볼래요^^
눈이란게 사랑 그리기에 딱 좋지요.
그려놓으면 달콤한 듯 스르르 녹고…
홈페이지 주소쓰실 때 네이버점네이버라고 쓰시지 말고 네이버점컴이라고 쓰셔야 정확한 주소가 돼요. 제가 고치긴 했지만요. 없는 주소라고 나와서 처음엔 왜그런가 했어요.
시인은 아니지만…
남대문을 쓰고 싶었어요…
학교 쉼터에 사진이랑 넣었더니…
선배 언니가 미국에서 넘 좋다고…전화 주셨네요…
사진이 빛이 났나봐요~뜻깊은 사진이라서 모두의 위로가 되었나봐요…!
시인이 따로 있나요, 뭐.
블로그에 쓰신 시는 읽어보았습니다.
사진보다 훨씬 격이 있던 걸요.
사진 써주신게 고마웠어요.
숭례문을 조문 하려다…희망가로 바꾸어 썼답니다…
장사익님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요…
희망한단에 얼마에요?
나도…몰러유~~~하는 그 음성이… 남대문의 모습에 오버랩 되어서요~
따스한 마음~감사 합니다.
별 말씀을요.
유용하게 쓰이면 그것보다 좋은 일도 없죠.
제가 쓴 남대문…시에 넣을 사진 찾다가…2장 가져 가도 되나요? 잘 생긴 남대문 모습 그리워요~~~사진이 참 좋네요…^^*
그럼요. 가져가도 되고 말구요.
그냥 편안하게 가져다 쓰세요.
사랑과 같아 떠난후 아쉽다 어이하리!
있을때 잘할껄….
그렇다고 있을 때 뭘 어떻게 해주기도 그렇고…
홍예문 개방한 뒤로 구경은 서너 번 갔었네요.
오히려 일제시대때 더 관리가 잘됐다고 그러데요..
에휴~
그래도 그들은 있던 서대문을 강제로 없애버린 자들이니 아무리 숭례문 관리를 잘 해줬어도 전혀 고맙지가 않아요. 숭례문도 일본 왕세자 녀석이 드나드는데 걸리적 거린다고 대포로 쏴서 없애버리려 했다는 얘기도 있던 걸요, 뭘.
원래 나무의 수명 때문에 목조 건물은 3~40년에 한번씩 일부 보수는 해야 한다니까 그걸 위안 삼아야죠.
전 공개된뒤에 한번도 그 근처를 가보지 못해서 예전 기억밖엔 없는데..
어찌나 속상하던지요..
아이때문에 치과 갔다가 의사선생님이랑 숭례문 얘기만 하다 왔는데
간호사들도 혹시 누구의 사주를 받은건 아닐까, 혹시 일본사람이 그런건 아닐까
애꿎은 일본사람까지 끌어들였네요..
저도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이런 옛것을 보고 있노라면 느낌이 많이 새로와요. 예전에 제 고향엔 오래된 기와집이 네 채가 있었는데 그게 지금은 한 채도 없어요. 그것도 많이 아쉬웠는데 숭례문이야 말할 게 없지요.
고마움을 모르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합니다.
백 년도 못살면서 천 년을 걱정하지는 않지만, 육백 년을 그 자리에 있으면서 백 년도 못사는 우리들을 걱정하고 있었을 텐데요.
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만심에 충만한 우리의 죄이겠지요. 우리-지금 이 순간 숭례문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모든 이-가 공범입니다.
문화가 그냥 건물이나 오래된 유적이 아니란 걸 이렇게 확연하게 보여주었던 경우도 없었던 같아요. 돈돈 거리며 살지 말라는 경고로도 보여요.
거기 있을 때는 그냥 원래 있는 것 같고,
중요한 것이라는 건 알지만 그 앞을 지나치는 마음은 별스럽지 않았었어요.
무너지는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함께 무너지는듯 아픈 것이 그 존재감을 느끼게 하더군요. 이렇게 사진으로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이 더 슬프게 느껴지네요.
좀더 자세히, 살펴볼 걸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매일 그 자리에 있으니까 다음에 찍지 뭐 하는 생각이 들어 지나치게 되었거든요.
사진은 마음이 그리로 기울 때는 그냥 지나치면 안되는거 같아요.
‘곱게늙은절집’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제목이 어찌나 눈길을 끄는지 바쁜중에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곱게 늙은.. 곱게 늙은…
다시는 곱게 늙은 숭례문을 볼 수가 없겠지요.
많이 허무합니다…
있을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했지만
없어지고 나니 그 문의 무게가 확연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복원이야 99%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문에 쌓였던 세월이야 어떻게 복원하겠어요.
마음 아픈 일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