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토요일에 세 가족이 축령산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이상하게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산행은 겨울에 자주 그 일정이 잡힌다.
오래 전에는 여러 사람들로 함께 일행을 꾸려 겨울의 태백산에 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축령산과 동해, 인천의 신도를 놓고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사람들의 사정을 고려한 끝에 축령산으로 낙점을 보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 홍순일씨네는 아이들이 함께 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둔 이승재씨와 우리는
그냥 우리들만 함께 했다.
초등학교만 마치면 아이들은 부모품을 벗어나는 듯 싶다.
사람과 함께 산을 가면 사람도 풍경을 이룬다.
천천히 산을 오르며 풍경을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우리의 출발점인 축령산 휴양림 제1주차장.
차를 몰고 상당히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조금 걷다 보면 정상일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난 사람들에게 정상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그 앞의 세 시간이란 말은 슬쩍 빼버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거늘,
하물며 축령산은 더 말할 것이 무엇이랴.
일단 먹고 올라가면 여러 모로 이익이다.
짐의 무게를 덜어서 좋고,
올라가면서 소화되니 좋고.
등산로 초입의 휴게실에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해치웠다.
그리고 천천히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나까지 모두 여덟이었다.
뭐야, 남자 여자 편가르냐.
왜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가고,
남자들은 또 남자들끼리 가냐.
아들과 아버지.
아들은 걸어가는 데도 굴러가는 듯 했고,
아버지는 그 뒤를 뚜벅뚜벅 바위같이 걸었다.
어린 아들이 걷는 걸음걸이의 경쾌함은
알고보면 바위같이 안정된 아버지의 걸음이 뒤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산속에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그네도 있고, 통나무로 세워놓은 나무숲도 있다.
아이들을 꼬드겨 통나무숲으로 들어가질 않고
나무 꼭대기로 타고 올라갔다.
승재씨.
승재씨 카메라는 캐논이다.
나의 그녀는 펜탁스.
나는 니콘.
3대의 DSLR이 동행한 화려한 기록의 산행이기도 했다.
쉴 때면 어른들은 그냥 길옆에서 쉬는데
아이들은 눈을 찾아 길을 벗어난다.
눈은 아이들의 손에서 소금이 되기도 하고,
팥빙수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물려받은 상상력과는 크게 달라서
눈을 떡가루로 삼는 경우는 없었다.
확실히 눈을 갖고 놀 때도 우리와는 세대가 달랐다.
우리 일행은 걸음이 느리다.
걷는 것과 쉬는 시간의 균형추를 맞춘다.
1시간 걸으면 1시간은 당연히 쉬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추월하여 길을 앞서 갔다.
그러나 우리의 길을 챙겨가진 못했다.
길은 우리의 걸음이 아무리 느려도
그 자리에서 항상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길은 사람들의 걸음이 아무리 빨라도
앞사람의 급한 걸음을 따라가는 법이 없었다.
암반약수에선 흘러나온 약수물이 미니 빙벽이 되어 있었다.
약수를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약수를 깨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들은 미니 빙벽을 타고 오르고 미끄러지며 한참 동안 놀았다.
후발대.
같이 출발했는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그래도 절대 버리고 가진 않는다.
원래는 너무 쳐지면 버리고 가려했는데
차마 인정상 그럴 수는 없었다.
버리고 가면 상당히 시끄러울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은이와 진표는 현재 낚시중.
이른바 아이들이 개발해낸 산낚시.
뭘 낚냐고 물어보았더니 돌고래란다.
정말 돌로된 고래들이 여기저기 노닐고 있었다.
잡아서 낚아채는 시늉까지 곁들이며 실감나게도 놀았다.
이들 두 꼬마하고 여러 번 산에 갔었지만
이번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준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산을 오르는게 아니라 내내 산에서 놀았다.
정상? 아니죠. 수리바위? 맞습니다.
축령산은 올라가면서 서너 번 정상에 오른 기분을 낼 수 있다.
일단 수리바위에서 그 기분 한번 냈다.
수리바위는 우리에겐 제1캠프였다.
이곳에서 많이 고민했다.
정상을 계속 공략할 것인지 말 것인지.
바위에 매놓은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가 나타났다.
돌아가자고 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또 뜻밖이었다.
“야, 뭐 이렇게 재미난 산이 다있냐?”
줄타고 오르는 곳이 서너 곳이나 되었는데
아이들은 그때마다 놀이터보다 더 신나했다.
어디 그 뿐이랴.
소나무를 말삼아 잡아타고
잠시 아저씨를 놀리며 달려보기도 한다.
하은이는 바람같이 올라왔다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다시 룰루랄라 걸음으로 사람들을 찾아 내려간다.
축령산이 무안할 지경이다.
그래도 산은 산인디.
산을 저렇게 날아다니다니.
우리에겐 경관이 넓게 트이는 곳은 모두 정상이다.
두번째 정상에 앉아 또 쉰다.
우리가 가는 산은 정상이 하나 뿐인 경우는 없다.
우리는 무수한 정상을 하나하나 즐겨가며 산을 오른다.
아무래도 하은이는 이제 남아도는 힘으로
아예 밧줄을 뽑아갈 심산인가 보다.
드디어 축령산 정상.
886.2m라고 한다.
내려가는 길은 절고개 방향으로 잡았다.
남들이 2시간 30분에 올라오고 내려가는 길을
우리는 무려 다섯 시간에 걸쳐 오르고 내렸다.
내가 이들 가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산을
오르다 쉬다 얘기하며 천천히 가는 그 느린 걸음걸이 때문이다.
난 사람들이 쉬는 사이에 숲으로 사라져 사진을 찍는다.
날 찾지도 않는다.
같이 가면서 내 마음대로 사진찍을 수 있는 일행은 쉽게 찾기 어렵다.
내려오는 길은 눈길이어서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거의 다 내려온 뒤에야 카메라를 다시 꺼냈다.
계곡의 물이 모두 얼어있었지만
한 곳의 약수는 물이 나오고 있었다.
그 약수에서 잠시 쉬며 목을 축였다.
물이 달콤했다.
항상 한 가족이 함께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다 함께 시간을 맞추었다.
함께 한 추억은 나중에 그때를 얘기할 때면
우리들이 목을 축인 약수처럼 달콤할 것이다.
그게 함께 간 산행의 재미이고 즐거움이다.
함께 가지 않으면 그 얘기에서 바깥으로 밀려나고 만다.
그럼 재미가 없다.
가끔 함께 어울려 산을 오르고 또 함께 내려가며 살아야 한다.
12 thoughts on “세 가족의 축령산 산행”
ㅎㅎㅎ즐겁게잘보았습니다.^^
짚풀님체력도 만만치않으시던데..,다음엔더높은곳도 가능하실것같아요.
항상고맙습니다. 아이들이많이성가시게하는데 주의를줘도 잘듣지않네요.^^
철쭉피는시기가빨리왔으면하고 생각해봅니다.
이번 산행은 완전히 하은이 특집 같아요.
점점 예뻐져서 아주 두 분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뻥이야 하고 따라갔으니 망정이지..그말 믿고 따라갔으면
배신감을 어쨌을까 싶습니다. 출발때 한번,꼭대기에서 몇번 뵙고 잘 못뵈었슴다.
산새님과 포레스트님이 주워 챙겨준 덕분에 뭘하긴 한것 같은데
몸이 아작 났어요. 턱위로만 정상이고 다 비정상입니다.
아고 죽겠네 하다가 ..올려주신 얘기가 재미있어서 한참 웃고나니 목도 돌아가고 팔도 돌아가요.감사합니다.
산새님은 아주 불면 날아갈까 호위 무사가 따로 없었어요.
그래도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오는 짚풀님 덕택에 우리는 속으로 많이 웃으면서 산을 오르고 내렸답니다.
검단산 처음에 오를 때 숨이 턱을 차올라 머리끝을 뚫고 나가는 듯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지금은 어쩌다 제가 산을 자주 다니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다음에 또 기회봐서 근처 산으로 한번 가요.
헉..세시간이란말만 살짝 뺐다구요?ㅋㅋ 넘 잔인해요.^^
저도 산에 올라갈땐 든든히 먹고 올라가는게 힘이나고 좋아요.
남편은 올라갔다 내려와서 먹자고 하곤해서.^^;;
제가 넘 심했나요?
그래도 처음부터 아무도 안믿던 걸요, 뭘.
다들 이제는 내 말은 안믿는 분위기라서 마음놓고 뻥을 친답니다.
항상 산에 가면 사진의 노출이 고민이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오늘 그래서 bracket이란 모드를 공부중이예요. 요거 잘 공부하면 좋은 기법이 될 듯도 하구.
산새님 옆에 짚풀님 계시니 이제야 짝이 맞는구랴~
산새가 짚풀을 물고 가는 형상이라 올해 그 둥지에 재화와 행복이 그득쌓일 운세로다.
실시간 리플달기이군요.
영국에는 산이 없습니다.
나라 전체가 평지이죠. 아주살짝 올라온 땅은 그냥 언덕…
정말 허무하리만큼 평평한 곳이죠.
따님이 계셨군요. 저도 제 자식 생기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네요.
싸우지않고, 사이좋게. =)
딸하나.
어렸을 때는 학교 빼먹고 여기저기 같이 여행가곤 했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선 그럴 기회가 없네요. 같이 가는 곳이 고작 책방 정도…
이제서야 들렸습니다.
근데.. 방금 엮인글 관리하다가 실수로 김동원님이 거신 트랙백까지
지워져버렸네요. 바로 취소 눌렀는데…. 너무 늦어버렸다는.. 죄송.
미니빙벽은 멋있네요. 가족끼리 여행도 하시고..
저희집은 절대 그럴일이 없다는…..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영국도 좋은 산이 많나요?
저도 딸하고 산에 간 것은 딱 한번밖에 없는 거 같아요.
나중에 딸이 대학가면 그때는 함께 어디 산이라도 하루 다녀오고 싶어요.
가족 여행은 분위기가 따뜻해서 그게 아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