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밤거리, 그리고 가로등

Photo by someone
2008년 2월 23일 서울 인사동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넷은 두번째 본 얼굴이었고,
둘은 첫번째 본 얼굴이었다.
두번째 본 얼굴 중의 하나가
기억해내는 내가 흐릿하다.
첫번째 그를 본 자리에서
몸을 잘 숨겼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잘 기억한다.
넌 자신을 하나도 숨기질 못했지, 후훗, 나는 웃는다.
첫번째 본 얼굴 중의 하나가
한참만에 “아, 나 당신 이제 기억났어” 한다.
잘 숨어있다가 갑자기 그의 앞으로 끌려나간 기분이다.
밤 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온다.
술취한 거리는 일렁거린다.
한낮 내내 차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사람들이 꼭꼭 밟아 다져놓은 거리.
하지만 그 거리가 일렁거린다.
도시는 불을 환하게 밝혀 길을 여전히 그 자리에 묶어놓았지만
길은 가로등을 좌우로 가르더니 날개삼아 펼쳐든다.
차도 한가해지고, 사람도 뜸한 한밤중의 길,
이제 무게를 거의 모두 덜어낸 밤길을
날개짓 한번으로 몽창 뜯어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래, 길도 지겨웠을 것이다.
평생 올림픽공원을 가리키며
사람들을 오직 그리로만 데리고 가야 했던 자신의 길이 지겨웠을 것이다.
길을 뜯어내 하늘로 날아오른 길은
하늘로 까맣게 사라졌다.
길을 건너다 말고,
거리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까맣게 사라진 길을 보고 있었다, 취한 듯 황홀하게.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2월 23일 서울 길동에서

4 thoughts on “모임, 밤거리, 그리고 가로등

    1. 좀 듣기에 황당하긴 했지만 통신이 발달하다 보면 궁극에는 텔레파시 통신이 나타날 거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텔레파시로 언제든지 옆자리에 있는 것처럼 통신이 된다나 뭐라나. 에구, 제가 술이 덜깼나 봅니다.

  1. 밤 1시에 음주가무 후 사진을 찍는 내공.
    혹시 이마에 점 아홉이 찍혀 있는 것은 아니시지요?

    길동에서는 길을 건너도 또 길이 나온다지요. ^^

    1. 그냥 이곳저곳 눌러대는 거죠, 본능적으로.
      놀랍기는 해요.
      죄다 블로그에서 만났는데 어색함없이 밤늦도록 술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걸 보면.
      정말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을 없애주기도 하는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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