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면 차창 바깥은 온통 어둠입니다.
버스를 타면 차창 바깥으로 연신 풍경을 바꿔끼며 길을 가지만
지하철의 차창에선 어둠이 자리를 잡고는
어지간해선 그 자리를 내놓지 않습니다.
우린 지하철을 타고 속도를 얻는 대신
차창의 풍경은 어둠에게 상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우리는 요금과 속도를 맞바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속도와 풍경을 맞바꿉니다.
하지만 차창의 풍경을 잃고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속도를 원하지만
사실 우리가 익숙한 것은 속도보다 풍경과 함께 가는 길이거든요.
지하철 속엔 아쉽게도 속도는 있지만 풍경은 없습니다.
풍경을 잃은 지하철 속,
건너편에 한 여자가 들어와 앉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모두 색을 잃고,
그녀가 무릎 앞쪽으로 가지런히 새워놓은 우산만 눈에 들어옵니다.
지하철을 탈 땐 분명히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그녀의 우산엔 항상 파란 하늘이나 바다가 담길 것 같지만
오늘은 그녀의 우산에 바깥에서 가지고 들어온
비나 눈오는 풍경이 담겨 그녀의 앞에 꼿꼿이 서 있습니다.
옆에 사람이 앉습니다.
어깨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잡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깥의 비오는 풍경을 자신의 옷에 담아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다시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의 손에서
우산만 눈에 들어옵니다.
방금 접은 듯, 우산은 팽팽하게 펼쳤던 날개를 채 정리도 못하고,
약간 후즐근하게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비나 눈이 그리 많이 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풍경을 잃어버린 지하철 속,
그러나 풍경을 잃고 살아갈 순 없습니다.
도시의 사람들은 바깥 풍경을 담고 들어와
그 속에서 스스로 바깥 풍경이 됩니다.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가끔 비나 눈이 오는 날,
사람들 스스로가 풍경이 되어야 합니다.
지하철이 서고, 역에서 내렸습니다.
바깥으로 나오자 눈발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우산에, 옷에 담아가지고 들어온
바로 그 풍경이었습니다.
6 thoughts on “바깥 풍경이 된 사람들”
가끔 동물원에 가면 내가 원숭이를 구경하는지 원숭이가 나를 구경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나는 풍경을 구경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도 풍경 속의 한 부분임을 잊고 살아갑니다.
설마 파란 우산만 눈에 띄신 건 아니시지요?
파란 우산이 유독 눈에 띄었죠.
사진을 찍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그쪽으로 여성이 둘이나 있었거든요.
노골적으로 들이대면 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는데 그러진 못하고… 결국 내릴 때 조금 떨어져서 찍고는 잽싸게 내려 버렸지요. 사진찍는 거 요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지하철 에서도 자연의 풍광을
읽어내시다니 놀랍군요^^
하늘색의 파란 우산이 어찌나 눈에 들어오던지요.
가까이서 보면 빗방울이 송글송글 잡혀 있어 더더욱 풍경의 실감이 났어요.
사진만 봐도 이른시간의 조용한 지하철 풍경이 느껴집니다.
비비린내까지두요~
흑백으로 가라앉혔더니 더 조용한 느낌이 들어요.
지하철은 참 좋은 사진의 공간인데 사람들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좀 어려워요. 사람들이 긴장하거나 이상하게 보기도 하거든요.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둘 정도가 함께 다니는게 아주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