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아무리 화창해도
계단을 내려가면 그곳에선 풍경이 모두 닫혔다.
들어갈 땐 한 사람 두 사람 제각각 계단을 내려가고,
나올 땐 발걸음을 어지럽게 뒤섞으며
우르르 함께 몰려나왔다.
내려가면 풍경이 닫히는 곳.
그러다 나올 때면 내가 사는 곳에선
항상 하늘이 가장 먼저 눈을 맞춰주고
그 다음엔 길거리를 펼쳐놓으며 풍경을 돌려주는 곳.
지하철을 타면 그렇게 풍경이 닫혔고,
지하철을 나오면 다시 풍경이 열렸다.
타고 가는 동안엔
어둠을 아래로 내려 차창에 까맣게 장막을 쳐두었다.
아무도 밖을 내다보려 하지 않았다.
가끔 한강을 건널 때면
창밖으로 강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차창의 어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마치 동공이 그대로 조여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듯 무덤덤했다.
열차가 잠깐 역에 멈출 때마다
어둠도 함께 걷히곤 했지만
그때면 어둠으로 쳐두었던 차창엔
타일 무늬의 장막이 갈아끼워져 있었다.
차창엔 어둠과 타일 무늬의 장막이 끼워져 있고,
풍경은 굳게 닫혀 있는 곳.
지하철을 타자 바깥의 모든 풍경이 닫혔다.
한 여자가 들어와 자리에 앉고,
그녀의 앞에서 푸른 우산이
허리를 똑바로 편채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선다.
그녀의 푸른 우산에
비내리는 바깥 풍경이 담겨 흔들린다.
풍경이 닫히자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이 그녀의 푸른 우산에 슬쩍 몸을 싣고
지하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지하철 속에 바깥 풍경이 있었다.
6 thoughts on “푸른 우산 – 지하철 풍경의 또다른 변주”
사진이 흑백인데 어떻게 우산만 컬러일 수가있는지요? 궁금하네요.^^
저도 사람많은 곳 찍고싶을 때가있는데 혹시라도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못찍겠더군요.
제가 엄청 소심해서리…^^
뽀샵의 힘이죠.
찍고는 잽싸게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어요, 현재는.
지하철이라면 문열릴 때 찍고는 문밖으로 내 튀어 버려야 해요.
사진작가들 한테 물어봤는데 그 대답도 역시 마찬가지.
사람들이 핸드폰을 많이 들고 있군요.
풍경을 들고 들어왔다~~ 좋네요~~
관찰력 예리하시네요.
모두 문자로 통화중이었어요.
여기저기서 모두.
전 버스나 지하철을 잘 타지 않고 다녀서…카드 이용법을 몰랐는데요
현금사용 하거든요..ㅋ
몇 일전에 카드를 사용해 보니…신기 했어요
저같은 사람~헤매이는 표정 찍었어도 압권이었을텐데요
시간은 저만치 앞에 흐르는데…혼자 뒷북치고 있는 느낌이에요
지하철 안에서 바깥풍경 읽으시는 감성~! 사진 찍기도 힘드셨을텐데요
제 삶이 풍성해지는 듯해요…감사합니다…
저에겐 서울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카드만 하나 달랑 들고 나가면 된다는 점이예요.
지하철, 버스, 모두 카드로 타고 다니니까요.
지하철이나 버스는 사실 좋은 사진의 공간인데
사진찍기는 무척 어려워요.
사람 사진을 찍게 되니까요.
언젠가 백화점에 들렀는데 명품 코너에 사람은 없고
직원만 홀로 서 있더라구요.
명품이란게 사실 좋은 점도 있지만
제품 브랜드에 기대는 허상도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그 명품 브랜드 매장이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그곳에 서 있는 직원은 그곳이 생활의 공간이니
절대로 신기루 같은 곳이 아니죠.
허상의 신기루가 그 직원 때문에 지탱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사진찍고 싶었지만 못찍었죠.
매장을 돌고 있는데 한 여직원의 이마가 찌푸려지더니
다리 아파 죽겠다는 표정이 스쳐가더군요.
그 다리 아픈 표정은 정말 일품이었어요.
그것 역시 사진을 찍는데는 실패했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당황하거든요.
좋은 기록을 위해 백화점 측과 계약하고
마음대로 사진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허용해줄 리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