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에서 경기도 광주나 퇴촌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시내버스여서 거의 수시로 다닌다.
버스는 하남을 거쳐 광주나 퇴촌으로 간다.
팔당댐이 내려다 보이는 검단산에 갈 때 종종 이들 버스를 타고 간다.
내리는 곳은 산곡초등학교.
내려서 북쪽으로 길을 잡게 되면 검단산으로 오르게 된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 남쪽으로도 산이 있다.
산의 이름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남한산 자락은 분명해 보이지만 남한산으로 뭉뚱그리기엔
내가 잘알고 있는 남한산성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알아보니 그 산자락은
쥐봉(시조봉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객산, 벌봉이란 이름으로 산을 꾸려
남한산성의 북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4월 6일, 볼일이 있어 산곡초등학교에 한참을 못미친
천현동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볼일을 보고 난 걸음이 시선을 유혹하는 진달래에 끌려 계속 산을 오르고 말았고,
결국 산꼭대기에서 등산로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그 길에서 객산을 가며 내내 진달래에 취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한번도 본 적 없는 진달래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영변 약산의 진달래이다.
떠나는 님, 짐짓 고이 보내주겠다고 하면서도
그 발앞에 슬쩍 깔아놓으면
나 보기가 역겹다며 발길을 돌리던 님도
그 걸음을 접고 만다는 전설의 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전설의 진달래는 버리시라.
세상에 수많은 산이 있고,
그 산마다 봄이면 수많은 진달래가 피고있다.
하남의 객산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 살면서 수없이 지나쳤건만
한번도 그곳에 올라 봄의 진달래를 반겨주지 않았던 곳, 하남의 객산.
능선을 따라 걷는 산길에서 진달래가 분홍빛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아무리 곰곰히 생각을 해보아도
영변의 약산 진달래가 그 효험이 대단하다고 한들
떠나는 님을 돌려세울만큼
그렇게 효험이 있다는 소문은 믿기질 않는다.
저 분홍빛의 봄꽃에는 무엇인가 다른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짐작컨데 영변 약산의 진달래는
두 사람이 함께 걷던 봄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진달래였음이 분명하다.
진달래가 핀 산을 걸으며,
아마도 진달래꽃 하나하나에 둘의 추억을 담았겠지.
그 분홍빛 꽃에 담은 추억은 얼마나 달콤했으랴.
그러니 그 꽃을 밟고 가보라는 것은
둘이 만든 그 추억을 자근자근 밟고 갈 수 있겠냐는,
둘이 엮어낸 사랑의 추억에 대한 자신만만함으로 넘쳐나는 말이다.
눈물과 슬픔으로 위장을 하고 떠나는 님의 앞길에 납짝엎드리고 있지만
사실 속마음은 어느 봄날의 추억을 빳빳이 세워
그 발길을 걸고 넘어질 속셈이 분명하다.
둘이 걸으면,
그 길에서 만나는 진달래는 그냥 꽃이 아니다.
그 꽃에 사랑이 담기면
봄날 혼자 걸어도 그 꽃은 둘의 사랑을 환기시키며
마음에 담아놓은 그대의 다른 이름이 된다.
사랑은 하나를 눈에 띄게 하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흐릿하게 뭉개버린다.
진달래는 흐드러지게 피지만
사랑할 때 우리의 시선은 그 중의 하나에 꽂힌다.
우리는 오직 그 하나에 눈먼다.
그 눈먼 사랑이 진달래길을 걷던 두 사람의 추억 속에 있었으리라.
사랑할 때의 둘은 얼마나 달콤했으랴.
그냥 말없이 앞으로 시선을 두고
하염없이 흘려보내는 시간만으로도
둘이 같이 있어 마냥 좋았으리라.
그러나 사랑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자성을 띈다.
그 자성에 이끌려
볼을 비빌만큼
둘은 가까워졌으리라.
그만큼 가까워지고 나서부터는
등을 맞대고 돌아앉아도
아마 등돌린 느낌이 없었으리라.
사랑할 때는 등을 맞대고 돌아앉아도
서로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 난다.
사랑할 때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냥 사랑하는 사람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
팔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앞쪽의 아무 곳으로나 시선을 두고도
하루해를 얼마든지 달콤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다 사이가 더욱 진해지면
사람들 눈을 피해 깊은 입맞춤도 나눴으리라.
사랑의 자성은 이때쯤 점성으로 바뀐다.
가까이 이끌리는 수준을 넘어 끈적끈적 해진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랑은 편향성을 띄기도 한다.
그때의 사랑은 한쪽이 한쪽을 바라본다.
그렇게 둘은 갖가지 사랑을 나눴으리라.
진달래가 핀 길에서 사랑을 나누면
그 길에서 나눈 모든 사랑이 진달래에 담긴다.
그러면 이제 진달래는 그들이 나누었던 모든 사랑을 환기시키는 꽃이 된다.
진달래는 그냥 꽃이 아니라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그 진달래를 밟고 가라니.
그건 꽃을 밟고 가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사랑을 밟고 가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걸 밟을 수 있을까.
영변 약산의 진달래가
떠나려는 님을 돌려세우는 놀라운 효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알고 보면 그게 꽃이 아니라 사랑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꽃을 깔아놓고 밟고 가라고 했지만
그게 사실은 꽃이 아니라 사랑이었으리라.
그러니 영변 약산의 진달래가 가졌던 비밀은
사실은 사랑으로 함께 걸으며 그 사랑을 새겨놓은 꽃이었던 셈이다.
만약 그렇다면 하남 객산의 진달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며 꽃마다 추억을 얹어놓으면
분명 또 다른 사랑의 전설이 될 수 있으리라.
아니 하남의 객산이 아니면 또 어떠랴.
우리나라의 어느 산치고 봄날에 진달래 없는 산이 있을까 싶다.
봄엔 진달래가 손짓하는 산을 골라 그 산에 오르고,
오르는 길에 그 진달래에 사랑을 얹어보시라.
꽃을 잘 고르면 이별을 예비했던 옛전설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사랑의 전설을 쓸 수도 있다.
가령 꽃과 몽우리, 그리고 잎이 나란히 줄을 선 진달래가 있다면
꽃은 활짝핀 사랑으로 시작을 알려줄 것이고,
몽우리는 그 사랑이 시들해질 때쯤 다시 꽃을 피워
시들해진 사랑을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될 것이며,
푸른 잎은 일상 속에 예비했다 다음 해의 꽃을 기약해주는 사랑이 될 것이다.
그러니 진달래피는 봄이면
부디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운 산으로 가
진달래에 사랑의 추억을 쌓아보시라.
15 thoughts on “하남 객산의 진달래”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바빠서 오블로 옮겨놓진 못했어요.
좀 한가하고 꽃이 좋은 봄날이라 매일 바깥으로 나돌아다니는 통에…^^
진달래 꽃잎 자세히 본 적없는데 맨 위 사진보니 다섯장이군요.
은은한 진달래 정말 이뻐요.
이 글과 사진도 퍼가고싶네요.
부산갔다와서 피곤한데 이 게시물 보고 엄청 행복해졌어요.
된다면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띄워도 될까요?^^
퍼가도 되지요.
그냥 사진 가져가서 쓰셔요.
글도 가져가시구요.
평등공주님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꽃사진을 좋아하시나봐요..
전 꽃사진은 잘 못찍겠던데… 렌즈때문인가…
꽃, 나무, 그런 사진을 유독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진은 카메라랑 렌즈가 모두 좋아야 해요.
컴퓨터 후지다고 후진 글이 나오는 일은 절대로 없지만
사진은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아요.
뭐, 그렇다고 좋은 카메라에 좋은 렌즈 가진 사람이 꼭 사진을 잘 찍는 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카메라가 달라지면 사진이 달라지고, 렌즈가 달라지면 또 사진이 달라지는게 사진이예요.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지만 그래도 세 개 정도의 단렌즈는 아주 좋은 걸 갖고 있어요.
나머지는 중급으로 쓰고 있구요.
렌즈가 많으시군요. 부럽습니다.
저도 한국에가면 D300이나 40D를 지를까 생각중.
제가 지르는 건 아니고, 주변 사람들한테 사달라고
조를까 고민중이네요. 너무 이나라 저나라 다녀서 이동이 불편한 덕분에 그냥 G9으로 지를지도 모르지만…
사진 잘찍고, 좋은 카메라와 좋은 렌즈 가지고 계신분들이
살짝 부럽네요..
분홍빛 얼굴 지나치다
흐드러진 꽃잎 중에 너 아니면 안되는
점액질 끈끈한 사랑
서로 안아 주면서
입맞춤 하면서
더 붉게 물드는 마음
꽃잎 속에 흐르는 수줍은 삶의 향기
언덕 여기저기 수놓고 있네
진달래 사랑 흐르고 있네
이 사진들 보면서…
즉흥적으로 끌적여 보아요…
답글 대신에요~~~^&^
꽃보다 더 아름다운 댓글이네요.
감사드려요.^^
고국의 꽃소식을 동원님의 블러그에서 원없이 맛보고 있습니다.
영산홍이나 동백 벚꽃… 가끔 눈에 띄지만,
진달래와 개나리는 없습니다.
동원님의 진달래와 개나리…
하나씩 가져가도 될까요…
너무 예쁜꽃과 좋은 사진들이 많아서
하루에 몇번은 방문하게 되네요.
뒤늦게 인사드립니다.
고맙고 감사해요…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하나씩 읽고 있지요.
저도 문학을 공부했었지요…
지금도 끄적끄적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며 향수를 달랜답니다.
그럼요, 퍼가셔도 됩니다.
방문 고마워요, 또 반갑구요.
그저 예쁜 분홍색의 진달래였던 꽃이 사랑을 알고 난 뒤엔
눈물나게 애달픈 꽃.^^
눈물나고 애달픈 슬픔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이상한 꽃.^^
영변 약산의 진달래가 그런 의미였군요…
추억을 자근자근 밟고 떠나지는 못하리라..
제가 사는 곳은 진달래가 없답니다.. ㅠㅠ
캘리포니아 남쪽이라 요즘은 노란 갓꽃이 들판과
산등성이를 덮으며 피어나고 있지요.
달래 달래 진달래…
진홍빛 꽃물이 사랑 빛깔같습니다.
앗, 아주 먼곳에서 걸음해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진달래를 주제로 한 시를 몇편 알고 있는데 대부분 사랑 노래더군요.
그 빛깔이 사랑의 빛깔이 분명한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