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그녀가 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때
그녀에게 나는 실제의 나이다.
눈앞에서 다 보고 찍으니 실제의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가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는 순간
나는 사진으로 찍히면서
동시에
나의 많은 실제가 지워져 버린다.
때문에 사진의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있어
나는 지워진 실제를 상당 부분 상상으로 채워넣은 나이다.
그건 실제의 나라기보다
사실은 상상의 나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진은 실제로는 찍어서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아울러 찍으면서 대상을 지워버린다.
그 지워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우리들의 상상이다.
사진은 찍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지워진 자리를 어떻게 상상하느냐에
사진의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
그러니까 사진은 찍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사진의 지워진 자리에 채우는 상상으로 결정된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우 나는 찍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마치 사진처럼
나는 종종 나의 실제를 지워버리고 싶다.
그리고 실제의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표정만으로
나를 재구성하고 싶다.
사진은 나에게 있어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매개체가 아니라
나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의 매개체이다.
그러니, 속지 마시라.
또 엉뚱한 상상도 금물이다.
만약 오늘의 내 사진이 엉뚱한 상상으로 번졌다면
그건 모두 들여다보는 자들의 책임이다.
오늘의 내 사진에서 나는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지워져 있다.
7 thoughts on “실제와 상상”
넘 멋있어요~~
사진을 믿지 마세요.
글도 또한.
사진과 글은 그것 자체가 이미 또 하나의 세계란 것을, 그것도 현실과는 단절된 세계란 것을 잊지 마시길.
넹~ 그것도 하나의 세계죠. 허나 내가 만난 그 접점 또한 나의 세계이니, 속는게 무에고 현실은 무엘가요~
그냥 무에라 해두 멋지네염! (나의 현실 **^^**)
허걱..
뭐라해야할지..^^
피부가 참 희시군요.^^
근데 통통이님도 사진 잘 찍으시나봐요.^^
홋, 그렇다면 사진이 잘 나왔다는 말씀?
만약 그렇다면 혹시 모델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게 순전히 제 생각.
뒷배경만 아니었다면 탐 행크스가 무인도에 표류한 내용을 다룬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한 장면 같아요.
상당히 원초적인 모습이십니다. 크윽~
석모도로 놀러갔을 때 같이 간 사람이 하는 말,
“형, 참 세상 많이 좋아졌어요. 옛날 같았으면 벌써 누군가 형을 신고했을 텐데, 이제는 모두가 작가로 봐주니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