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빛이 좋은 어느 하루를 골라
그녀와 함께
보기만 해도 눈이 시린 신록의 품으로 가야 한다.
5월의 푸른 빛은 그냥 초록이 아니다.
5월엔 이제 곳곳에서 초록을 만나게 되지만
그 초록 속엔 신록의 초록이 있다.
신록의 색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갈증이 턱밑까지 왔을 때
목구멍으로 넘긴 차디 찬 한 모금의 물이
우리의 온몸으로 퍼져나갈 때의 느낌을 상상하면 된다.
신록이란 바로 그 몸의 느낌을 고스란히 색으로 옮겨놓은 색이다.
신록은 초록과 달리 마구마구 피어난다.
그래서 신록의 5월엔
산자락 아래 서면
나무들이 그 신록의 힘으로
산의 정상을 향해 우르르 걸음을 옮기며 산을 오르는 느낌이 완연하다.
그렇게 나무들이 신록의 빛을 휘날리며
산의 정상으로 걸음을 옮기는 5월이면
그녀와 함께 신록의 5월 그 한가운데로 가야 한다.
왜냐구?
그러면 그녀의 몸이 신록으로 가득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갈 때는 그녀와 함께 가지만
올 때는 신록의 그녀와 함께 돌아올 수 있다.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그녀를 집에 쳐박아 두면,
혹은 그녀를 일에 쳐박아 두면,
그녀는 슬픔이 된다.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녀를 계속 집에 버려두면 밥과 아이,
그리고 만약 그녀에게 일이 있다면 그녀의 일이
그녀를 채우고 만다.
일상은 거의 항상 똑같이 반복된다.
누구나 그 일상을 피할 수가 없다.
그 반복이 계속되다 보면
일상이 결국 그녀를 점거하고 만다.
그렇게 일상이 반복되면 처음에는 무료해지고,
그 무료함은 시간이 지나면
매일매일 생활로 우리를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텅 비워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우리는 차면서 비어버리는 거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그때 슬픔이 온다.
그건 그녀 뿐만이 아니라
그녀와 사는 그도 마찬가지이다.
먹고 살기 위한 우리의 생활은
그 생활로 우리의 삶이 가득차면
어느 순간 슬픔이 되고 만다.
바로 그 순간,
빛이 좋은 5월의 어느 하루를 골라
그녀와 함께 5월의 신록, 그 한가운데로 떠나야 한다.
당신은 놀라리라.
그녀를 점거하고 물러설 것 같지 않았던
그 묵직한 그녀의 슬픔을 일거에 몰아내며
그녀의 몸에서 일렁이는 그 신록의 물결에.
그것이 바로 신록의 놀라움이다.
신록의 푸른 빛은 저 혼자의 푸른 빛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그녀를 그 푸른 빛으로 물들인다.
그렇게 신록으로 채워진 그녀와 돌아오는 날이면
그날은 반드시 그녀의 품에 몸을 묻어야 한다.
그러면 그날 당신은 일렁이는 신록 속에서 잠들 수 있다.
그러니 빛이 좋은 날이라면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꼭 그녀와 함께 신록의 5월, 그 한가운데로 떠나라.
2 thoughts on “그녀와 함께 신록의 5월로 가야 한다”
5월, 이빨시리게 싱그러운 단어.
5월의 광주로 인해 그 단어를 떠올릴 때 한동안 몸을 떨어야 했던 단어.
이제 신록의 계절에게 다시 돌려준 단어, 5월.
5월이 이제 시작이다…
아주 길~게 5월이 머물다갔으면 좋겠다…
모두를, 모두를, 푸르게, 푸르게, 물들이고, 물들이고, 물들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글이 삶을 앞서나가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글은 미래형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그 모태는 이미 과거형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신록으로 가기 전에 쓴 것이 아니라 이 글은 사실은 신록으로 갔다와서 쓴 글이었으니까. 아마 너는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은 모를테지. 그래서인지 나는 글이 삶을 앞서가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그만큼 삶이 중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하구. 예전에는 생각하고 같이 자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는데 삶이란 그런게 아닌 거 같아. 일단 같이 자구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삶이란 살면서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거 같아. 삶이여, 힘들고 고달퍼도, 삶에게 감사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