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오솔길은 완력으로 땅을 파헤집어 낸 길이 아니다.
그건 땅이 사람의 무게를 받아주면서
딱 한 사람의 폭만큼만 내준 길이다.
그래서 그 길에 들어서면 두 사람도
옆으로 나란히 서는 동행의 걸음을 버리고
앞뒤로 서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길을 간다.
앞사람이 뒷사람의 길을 밝혀주고,
뒷사람이 앞사람이 낸 길을 다져주면서 가는 길,
오솔길은 자연이 딱 사람의 무게만큼만 길을 내주고,
사람의 발걸음을 그 품에 품어준 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벌봉에서

오솔길은 곧장 빠르게 가려하지 않는다.
오솔길은 진달래가 피어있는 곳이면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솔길은 기어이 그 품에 안기고 만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쪽 산자락에서

오솔길은 혼자 걸어야 제맛이다.
혼자 걸어도 혼자같지 않는 길이 오솔길이다.
오솔길은 혼자가도 길과 함께 길을 가는 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쪽 산자락에서

오솔길은 대개 숲속으로 나 있다.
그래서 잘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햇볕은 그 길을 용케도 잘도 찾아낸다.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햇볕이 그 길을 찾아내고는
“야, 여기 길이다”라고 외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길위의 반짝거림이 바로 그 외침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쪽 산자락에서

햇볕은 종종 물결이 되고 싶다.
그 뜨거움을 시원하게 식히고 싶어서이다.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오솔길을 찾아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솔길에 내려앉는 순간, 빛은 그 길 위에서 물결처럼 찰랑댄다.
오솔길은 그 빛의 물결을 싣고 찰랑대며 숲속을 흐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쪽 산자락에서

때로 오솔길은 급한 경사를 타고 산을 내려오거나 올라간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오솔길은 위아래 어디로나 흐른다.
그렇지만 사실 오솔길은 아래로 흐른다.
올라갈 때 힘든 걸 보면 그렇다.
흐름을 역류할 땐 힘이 드는 법이다.
그림자가 아래로 휩쓸려 내려가는 오후 시간에 오솔길에 서 보면
그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오솔길은 아래로 흐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쪽 산자락에서

그러나 경사가 완만해지면 오솔길이 어디로 흐르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나무들의 그림자도 짐짓 모른채
그림자를 제 안으로 집어 넣고 딴전을 피운다.
어쩌다 그림자가 보인다 싶어도 길을 옆으로 비스듬히 자르고 지나가며
나도 모른다니까 하고 다시 한번 시치미를 뗀다.
오솔길은 그때면 얕은 경사를 타고 슬쩍 위로 흐르기도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쪽 산자락에서

햇볕이 옆으로 길게 몸을 눕히는 오후의 늦은 시간을 잘 고르면
오솔길은 이제 완연한 빛의 수로가 된다.
그때면 빛은 길을 따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콸콸콸 흘러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쪽 산자락에서

가끔 오솔길은 갈래를 나누어
하나는 이쪽으로, 하나는 저쪽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오솔길은 길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그런 길이 아니다.
오솔길은 그냥 걷는 것만으로 좋은 길이다.
그러니 갈래길이 나타나더라도 크게 고민하지 마시라.
어느 길로 걸어도 좋은 길이 오솔길이다.

14 thoughts on “오솔길

  1. 오솔길만을 오솔길답게 걸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감동의 사진과 글…
    오솔길을 가장 멋지고 진솔하게 표현한 글이 아닐까요?

    오솔길에 내려 앉는 빛의 물결을 따라 걷고 싶은 푸른 오월이네요^^

    1. 남한산성의 주 등산로는 별로 멋이 없더라구요.
      내려올 때만 주 등산로를 이용하고 올라갈 때는 이런 오솔길로 가고 있어요.

  2. 왠지 음산한 듯 하면서도 따끈한 느낌이 나는
    중의적인 길이네요. 매일 아침마다 저희 개는 저런 길을 산책하고 오는데
    왠 아저씨가 저희 개를 돌로 찍어 죽여버린다고 협박하고
    나섰다네요. 실제로 돌도 던지고…
    제가 저런 길에서 한 번 뒤집으려고 벼르고 있네요.

    이쁜 사진과 안어울리는 댓글이 되어버렸네요.. 이런…
    죄송..

    1. 사진이 어둡게 나와서 음산한 느낌이 나나요.
      실제로는 아주 호젖하고 편안한 느낌의 길이예요.
      나도 몇번 저 길에서 개와 함께 나온 사람들 만났는데… 그냥 인사하고 지나치게 되던데…
      유난히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있더구만요.
      조용히 얘기하면 알아들을 지도 몰라요.
      싸우지는 마세요.
      한국에서 계신 동안 즐겁게 보내시길.

  3. 음~오솔길. 어감도 참 예뻐요.^^
    김동원님 말씀처럼 혼자서 호젓하게 걷는게 더 좋은 오솔길.^^
    아주 아주 느긋하게 나무랑 꽃이랑 풀들에게 눈인사하면서 즐기고싶은 길이네요.

    1. 맨위 진달래길은 다섯 시간만에 도착했지만 그다지 험한 길은 아니랍니다.
      다만 워낙 한적해서 사람이 없다보니 뱀들이 가끔 출몰해서 사람을 놀라게 했다는…
      다른 길은 forest님이 매일 올랐다고 했던 그 방향에 있는 길들이예요.
      다음에 그 길로 한번 남한산성에 올라봐요.

  4. 아!!! 내가 아는 오솔길이네요.
    저 모퉁이 어디메쯤 족도리풀이 꽃을 틔우고,
    은방울꽃도 상처 입은채 다시 싹을 내밀고,
    아, 각시붓꽃도 있고 보라빛 산부추꽃도 피워요.
    걷고 싶네요. 만사를 제치고 저 길로 달려가서…

    1. 남한산성 자주 다녔더니 한가한 길도 많고 아주 좋더군요.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길은 아직 못가봤어요.
      정수장에서 내려 올라가면 될 듯 싶은데 엉뚱한 버스를 타는 바람에 결국 일자산만 걷다가 왔지요.
      이번 주엔 일하고 일요일이나 다음주 월요일에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남한산성 너무 울궈먹는 것도 같고…

    2. 둔촌역에서 골프장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있는데, 아마 ‘정림’행 일거예요.
      골프장 바로 앞에서도 올라갈 수 있고,
      아예 참샘골까지 가서 약수터 근처에서 올라가도 한가한 능선과 마주쳐요.
      양평가는 길 곳곳에 있는 몽골의 게르같은 천막에 바베큐 파는
      털보네(?)가 처음 참샘골에서 시작했거든요.
      드럼통에 불 피우고 꼬챙이에 고기 통째로 끼워서 돌리면서 구워 먹는..
      그땐 한가히 운치있고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국도 여기저기를 점령하며 재미가 없어졌어요.
      월요일은 초파일, 한가하시면 사모님과 서종 명달리에 있는 통방산에 점심 공양하러 오세요.
      절이라는 개념 없이 그냥 풍경좋은 오두막 한채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3. 맞아요. 정림마을가는 버스타고 종점에서 내리라고 들었거든요.
      둔촌역 앞에서 타는 마을버스는 다 그리로 가는 줄 알고 아무 버스나 탔더니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말았다는…
      서종 명달리는 많이 들어본 곳 같아요. 서후리 가고 올 때 지나쳤던 것도 같고…

  5. 오솔길, 깊은 사색이 담긴 혼자만의 길이 아닐까…
    오솔길은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길이다…
    오늘은 훌훌 일상에서 벗어나 오솔길을 따라 걷고 싶습니다.
    조붓한 나만의 길을 따라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