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깔제비꽃의 꽃과 잎

꽃을 눈여겨보고 다니면서
제비꽃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비꽃을 구별하려면 꽃뿐만이 아니라
잎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 특히 고깔제비꽃의 잎이 내 눈을 끌었다.
그 잎은 내게 사랑해 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난 그 사랑과 즐겁게 장난치며 산을 올랐다.
사진은 모두 2008년 4월 16일,
하남의 고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찍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꽃은 제비꽃의 얼굴이자 눈이다.
그래서 우리는 꽃에 눈맞추며, 잎은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나 얼굴만 마주보고 살면 재미없다.
우리는 가끔 속삭이며 살고 싶어한다.
그것도 사랑을 속삭이고 싶어한다.
속삭임은 다른 이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속삭임은 오직 사랑을 속삭일 사람의 귓속에만 담아주고자 하는
아주 낮은 목소리이다.
고깔제비꽃의 잎은 그 속삭임이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질 않는다.
속삭임은 원래 그런 것이다.
낮아서 잘 들리질 않고, 잘 보이질 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래서 그 속삭임을 들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니, 고깔제비꽃의 경우에는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럼 그 잎들의 속삭임이 눈에 들어온다.

Photo by Kim Dong Won

보시라.
이렇게 팔을 말아 속삭이지 않던가.
사랑해라고.

Photo by Kim Dong Won

또 다른 잎이 속삭인다.
–나도 사랑해.
야, 근데 넌 뭐야.
무슨 사랑의 속삭임이 이렇게 뾰족해.
사랑에 찔리겠다.
–딴 데 한눈 파니까 그렇지.
그렇다. 딴데 한눈팔면 사랑의 속삭임에 찔릴 수 있다.
하지만 눈이란게 둘인데
한눈 파는 건 눈감아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두 눈 다 팔면 몰라도.

Photo by Kim Dong Won

사랑해, 사랑해.
사랑도 변화가 필요하다.
한번은 작고 앙증맞게,
또 한번은 넓고 크게.

Photo by Kim Dong Won

사랑해, 사랑해.
아니, 이건 도대체 뭐야.
난 여기 가운데 있는데 어디다 데고 사랑이야.
사랑은 때로 나를 가운데 두고, 이쪽 저쪽으로 빗나간다.
아예 오지 않는 사랑보다 빗나가는 사랑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가끔 사랑은 중구난방으로 남발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참 이상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 여기저기 남발하면 오히려 의심받는게 사랑이다.
사랑은 때로 딱 한 사람에게만 받쳐질 때 그때만 사랑으로 불린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럼 사랑이란 자고로
반듯하고 정갈하게 마음에 담아 한 사람에게 받치는 것이어야지.

Photo by Kim Dong Won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왜 우물거리면서 말을 못해.
사랑은 가끔 사랑해라고 곧바로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부끄러워한다.
마음을 곧바로 펼쳐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고,
모아둔채 주저하는 게 사랑이기도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그 부끄럽고 수줍은 사랑,
결국 저쪽 보면서 내게 사랑해라고 고백했다.
속삭임은 내 쪽으로 내밀면서 얼굴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니,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야.
사랑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수줍어 하게.
사랑이란 고백하는게 아니라 유혹하는 거야.
허리를 약간 비틀어준 요염한 자태로 사랑해라고 속삭여봐, 나처럼.
부끄럽고 수줍은 사랑에선 꿈도 못꿀 치명적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 걸.

Photo by Kim Dong Won

사랑이 무슨 유혹은 유혹이야.
사랑은 눈을 맞대고 있으면
그 눈의 뒷편 저 깊은 곳에서 그윽하게 보이는게 사랑이지.

고깔제비꽃도 알고 있다.
사랑이 오묘하여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을.

8 thoughts on “고깔제비꽃의 꽃과 잎

  1. 너무예쁜꽃을 이제서야 알았어요^^

    이꽃을 판매하는 곳은 없겠지요??

    그렇다구 직접 산에가서 캔다면

    자연을 파괴하는걸테구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봄이 되면 산에가서

    이 꽃을 꼭 찾아서 찍어야겠어요

    제 마음이 전해지도록^^

  2. ‘속삭임은 다른 이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속삭임은 오직 사랑을 속삭일 사람의 귓속에만 담아주고자 하는
    아주 낮은 목소리이다.
    고깔제비꽃의 잎은 그 속삭임이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질 않는다.’

    와후~!

    속삭임은 결국 대상에 ‘집중’이겠죠? ^^

  3. 사랑해 사랑해.. 지난 해의 연잎이 생각나요.
    꽃의 연보라빛이 참 곱네요. 한복으로 잘 어울릴것 같아요.

    1. 지난 해 연잎에 비하면 생강나무나 제비꽃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대신 연잎은 항상 발견할 수 있는데 제비꽃은 종류에 제한이 있고, 생강나무는 잎이 커지면 모양이 사라져서 또 찾아내기가 어려워요. 사랑은 쉽게 발견하기는 어려운 것인가 봐요.

  4. 우리도 다르다구욧-
    잎들이 동원님의 여력에 힘입어
    으쓱대는 것 같은데요^^
    이 봄으 끝부렵에 사랑에 빠진
    하트 잎들에게서 하트가 숑숑 뿜어져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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