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결혼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5월 7일이었다.
5월 5일날 결혼한 내 친구 녀석 하나는
4월 5일은 식목일이라서 나무를 심고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라서 그날 결혼한 자신들은
바로 그날 아이를 심었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날을 이틀이나 넘긴 뒤에 결혼한 우리는
결혼한 그날 아이를 만들진 않았다.
우리의 아이는 1991년의 1월에 태어났다.
한번도 결혼기념일에 특별하게 뭘해본 기억이 없는데다가
까먹고 지나간 적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고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참 용하기도 하다.
–결혼기념일인데 그냥 지나갈거야?
그녀가 물으면 나는 몇번인가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그래? 그럼 같이 묵념이나 하지 뭐.
생각해보면 5월 7일의 그날 몇가지 기억이 있다.
우리는 그날 서로에 대한 사랑 고백을 직접 했었는데
그날 주례를 섰던 안두순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결혼식에서 주례보다 더 말을 많이 하는 신랑 녀석은 오늘 첨봤다.
주례는 중간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늘 이 결혼에 대해 이의가 있으신 분 계신가요?
사람들이 와! 웃음을 터뜨렸고, 다행이 이의는 없었다.
(우리는 내가 졸업한 대학의 인문학관 세미나실에서 결혼을 했는데
아마도 교수님께선 결혼식을 결혼 세미나로 혼동하신게 틀림없다.)
결혼 하루 전에 만난 교수님은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결혼식장에서 뽀뽀시켜 주랴?
에이, 고건 좀. 나중에 둘이 따로 할께요.
그렇게 나는 우리들의 뽀뽀는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둘의 뽀뽀는 우리 둘의 것이다.
참 많이 다투었던 것 같다.
처음엔 하루 다섯 번은 싸웠던 것 같고,
한달 뒤쯤엔 그게 하루 세 번쯤으로 줄어들더니
6개월이 넘자 하루 한 번이 되었다.
한 3년쯤 지났을 즈음엔
한 달에 한번 꼴이 되지 않았을까 싶고,
지금은 1년에 서너 번이지 않나 싶다.
원래 지독히 사랑해서 오늘에 이르러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싸움을 아주 현명하게 잘해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들에게 있어
그간의 싸움은 우리들의 지독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싸우고 돌아서고 또 싸우고 그러다 같이 자고…
어찌보면 그게 바로 지독한 사랑인 것 같다.
올해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묵념대신,
결혼하며 우리가 꿈꾸었던 것,
바로 사랑을 그녀의 귓전에 속삭여 주고 싶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 오늘 밤에 죽었어!)
12 thoughts on “결혼, 17년, 그리고 오늘”
트랙백이란것을 타고 왔지요..후훗.
요즘 전..이별이란것을 하고 난 후라 그런지..
누구를 만나고 사랑을하고 또 결혼이라는 것에 살짝 회의(懷疑)를 느꼈는데..
그런 생각은 못써! 란 조언을 해주시는것 같기도하고..^^;
아무튼 동원님 포스팅과 사랑담긴 댓글은
제게 살짝의 닭쌀과 기분좋은 미소를 주네요^-^
소위말하는 염장내공이 높으신지라 감히 대꾸를 할수없기에
이번은 눈물을 머금고 염장을 온몸으로 느껴보렵니다.^^;
조금 늦었지만 결혼기념일 축하드리구요~
앞으로도 항상 행복하시고
서로 마주보며 혹은 같은곳을 바라보며
항상 웃으시길 바랍니다^^
smile~^ㅂ^)/
고마워요.
권양님의 블로그에서 이별에 관한 얘기를 읽을 때 나도 옛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첫 이별 때는 그 이별 때문에 그냥 죽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때 나를 살려준 한마디는 요거였죠.
“사랑의 완성은 사랑을 주는 자의 몫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자의 몫이다. 나는 너에게 내 사랑을 주었노라. 그러니 이제 그것의 완성은 내 몫이 아니라 너의 몫. 사랑을 주는 것으로 내 몫은 끝났으니 우리 사랑이 미완성의 아픔으로 내게 남는 것도 그것은 내 몫. 잘가라, 내 사랑.”
그 뒤론 별 두려움이 없이 사람들 만나 사랑하게 되었어요.
사랑이란 좋은 거 같아요.
그러니 기회가 되는 대로 많이 해야해요.
아..부러워요. 5월의 신부님.^^
전 1월의 신부였죠. 흰눈이 가득했던날.ㅋㅋ
넘 추워서 야외촬영도 안했어요.
저희는 학교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었죠.
당시 통통이가 잡지사에 다니고 있어서
잡지사 사진기자들이 다 오는 바람에
카메라만 한 다섯 대가 북적거렸다는…
사람들이 무슨 유명 연예인이 결혼을 하는 줄 알았다는…
5월이 너무 좋아 5월에 결혼했던 우리.
그때의 푸르름이 엊그제처럼 선하네.
지리산, 계룡산의 연초록빛 사이를 누비며 갑사에 이르러
우리의 여행은 절정이었지.
그때의 갑사가 그립네. 아주 소박하고 정겨웠던 갑사였는데…
와따시와 아나따오 아이시떼이마스.
이히리베디히.
쥬뗌므.
워아이니…………………. ^^
———닭살스럽게, 유치하고 찬란한 버전으로. ㅎㅎ
난 i love you 다.
왜 i를 소문자로 썼냐구?
속삭이는 거다, 이건.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오늘 날씨도 엄청나게 좋던데,,, 선물이 아닐까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Good!
오늘 선물은 오늘 날씨다!
날씨 선물하기는 우리 딸에게 어느해 크리스마스 때 눈 선물하고는 처음이네요.
aki님 고마워요.
블러그덕에 공개적으로 축하도 받고…
이렇게 축하받을만큼 잘 살았는지는 나두 몰라~ 며느리도 몰라요~
별말씀을요~
근데 두분 너무 닭살스러우신거 아니예요.
송곳이라도 좀 던져주시던가… 에잉!!!
송곳대신 술 한잔 사주는 것으로 대신하면 안되겠니? (개그콘서트 백수 버전)
쪼아쪼아~ (웃찾사 쪼아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