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 오르면
서울을 모두 발아래 두게 되지만
그렇다고 시선이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거의 항상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뿌옇습니다.
세상이 뿌연 날은 눈앞에 있는 세상도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뿌옇게 뭉개지면 멀리 희미하게 윤곽선으로 흐르는 산은
옆으로 팔을 펼치고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일어섭니다.
윤곽이 분명한 맑은 날엔 그 무거운 무게를 버릴 수 없어
산은 그냥 산으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윤곽이 흐릿해지는 날이면 산은
그 육중한 무게를 훌훌 털어내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물결이 됩니다.
도시로 시선을 돌려보면
뿌옇게 흐린 날엔 작은 체구의 집과 건물들은 모두
제 몸을 그 잿빛 세상 속으로 숨긴채 모습을 지웁니다.
하지만 몇몇 우람한 체구의 건물들은 제 윤곽을 고집하며
그 잿빛 세상 속에서 머리를 치켜듭니다.
그렇다고 그 건물들이 희미해진 윤곽으로
산처럼 날개를 펼쳐들고 날아오르진 못합니다.
도시의 건물들은 원래 머리만 빳빳이 세울 수 있었을 뿐,
옆으로 넓게 펼쳐 든 뒤 바람을 잔뜩 안고 날아오를 수 있는 팔은 처음부터 없었거든요.
그렇다보니 건물들은 산처럼 몸을 일으켜 물결이 되질 못하고
벌건 대낮인데도 유령같은 몰골로 가슴을 섬뜩하게 합니다.
내가 유령이라고 한 것은
우리 나라 귀신같았으면 아마도 흰색 소복차림으로 그 자리에 섰을텐데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그 몰골로 보아
서양 귀신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안개와 스모그가 세상의 윤곽을 희미하게 지운 날,
산은 팔을 펼쳐 물결처럼 일어서고
우람한 도시의 건물들은 유령같은 몰골로 시커멓게 서 있습니다.
5 thoughts on “산과 도시”
히히히 뭔가 느낌이 비슷해서 트랙백 걸어요~^^
하늘 공원에서도 남산이 보이는 군요.
정말 느낌은 아주 비슷하네요.
서양귀신.ㅋㅋ
제가 서울에 살때는 집 방향이 좋아서였는지 해질무렵이면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살기가 빡빡하고 힘들어도 그 노을만 바라보면 ‘괜찮아..이렇게 아름다운데.’하며 힘을 낼 수 있었죠.
이번달은 주말마다 바쁜데 바다 가고 싶어죽겠어요. 노을땜에.^^
바다의 노을은 볼 때마다 황홀 그 자체죠.
도시는 그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눈앞에서 볼 때와 안개로 슬쩍 윤곽을 지웠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