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뒹구는 빛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5월 19일 우리 집 마당에서

날이 맑자 빛이 골목으로 내려왔습니다.
골목으로 내려온 빛은
골목을 온통 다 차지하고
골목에 퍼질러 앉습니다.
건물들이 벽의 모서리 그림자를 날카롭게 세워
빛의 허리를 꾹꾹 찔러보려 하지만
빛이 바로 머리맡에서 내려오는 한낮엔
그림자가 짧아 허리를 깊게 찌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온통 골목을 다 차지하고 퍼질러 앉은 빛이
아예 길게 골목으로 누워버려도
골목에서 빛을 쫓아내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저 저러다 저녁 때쯤 제 풀에 물러나겠지 하고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선 사정이 좀 달라집니다.
넝쿨장미가 마당 위로 쳐놓은 줄을 잡고 키를 키우고는
마당을 촘촘한 잎으로 덮어놓고 있거든요.
그래서 마당으로 털썩 몸을 내려놓고 퍼질러 앉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우리 집 마당을 엿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잎들의 사이가 여기저기 비어 있거든요.
그래서 빛은 우리 집 마당으로 내려가려면
몸을 둥글게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골목에 퍼질러 앉듯 우리 집 마당에 앉으려고 했다가는
날카로운 넝쿨 장미의 가시에 찔리고 말 겁니다.
그래서 빛은 몸을 둥글게 말아
잎과 잎 사이의 좁은 틈새로 몸을 들이밉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드디어 마당으로 내려앉습니다.
빛은 마당으로 내려온 뒤에도
둥글게 감은 몸을 펴지 않습니다.
그냥 몸을 둥글게 감은 채, 마당을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마당엔 오늘 바람에 떨어진 장미 송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당을 굴러다니던 빛은 가끔 그 장미 송이의 붉은 몸에
가볍게 몸을 부비기도 합니다.

골목에선 빛이 골목을 온통 다 차지하고 퍼질러 앉아 있고,
우리 집 마당에선 몸을 둥글게 말아 잎과 잎 사이의 작은 틈새로 스며든 빛이
마당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다닙니다.

18 thoughts on “마당을 뒹구는 빛

    1. 알겠어요.
      느낌표를 필터링 하겠습니다.
      그동안 스팸 필터랑 웹 방화벽을 가동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긴급히 켜놓았어요.
      고마워요.

    1. 미안해요.
      스팸 공격 때문에 스팸 대전을 치루고 있거든요.
      5천여개의 스팸을 일단 싸그리 없애버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공격에 맞서고 있어요.
      이것들 어디 한번 와바라.
      모노님 블로그도 스팸 공격을 받았더군요.
      아, 이 지겨운 스팸들.
      아무래도 코멘트를 한번에 모두 지워버리는 SQL 명령어를 알아봐야 겠어요.
      한번에 1천개씩 서너 번 지웠거든요.

  1. 빛이 추상적인 형태를 만들어 이리 저리
    잘도 다니는 군요.
    담 주에 연락 드리고 찿아 뵙겠습니다,,,,,^^

  2. 아.. 너무 머리 아파서 동원님께 조언 요청.
    제가 전에 캐논 300D가 있었는데.. 술 마시느라 팔았죠.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고, 찍는 것 자체는 좋아합니다.
    그냥 여자친구 사진도 찍고. 근데 너무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다보니
    오히려 카메라가 짐이 되기도 해서 아쉬움 없이 팔긴 했는데.. 다시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서 새로 하나 장만하려고 하는데
    40D와 450D 사이에서 갈등중입니다.

    450이 이동시 편하기는 한데… 300D와 비교해서 너무 비슷한 느낌이고..
    40D를 사자니..무겁고.

    사용자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볼때.. 40D와 450D는 큰 차이가 날까요?
    혹시 추천하시는 것은 없으신가요…?
    (니콘도..살짝 고민중이긴 합니다만..갈아타는 것보다 비슷한 기종이 더 편할 것 같아서.. )

    1. 우리나라 최고의 카메라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450D로 하시는게 좋답니다.
      사용자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전제에서는 그렇다는 군요.
      하지만 어느 것을 사든지 일단 카메라점에 가서 둘다 손에 들어보고 손에 맞는 무게감의 카메라를 사시도록 하라는 조언을 덧붙였습니다. 450D가 좋기는 한데 너무 가볍다는 바로 그 이유로 남자분들이 싫어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450D는 저도 들어보고 찍어보았는데 가벼워서 좋긴 좋더군요.
      결혼 준비는 잘 돼가고 있지요?

  3. 가시를 피해 둥글게 만 빛이
    바람따라 이리 저리 굴러다니는거네요.
    사진에서 장미가 빠졌다면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 생각해 봤어요.

    1. 아마도 전에도 몇번 굴러다녔을 텐데 이런게 왜 올해 드디어 눈에 띄는지 모르겠어요. 그 전에 봤으면 세상이 좀더 재미있었을 텐데.

  4. 빛이 마당에서 굴러다닌다… 예사롭지 않은 표현입니다.
    빛이 퍼질러 앉아 있다가 굴러다니다가 가끔은 몸을 장미 송이에 부비기도 하고…
    빛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동원님의 시선이 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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