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따라 걷는 사람들

걸음 하나가 나무를 살리고
걸음 하나가 풀을 살린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걸음 하나가 운하의 개발을 막고
걸음 하나가 결국은 강물을 살린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걸음은 곧 그들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종교인들이 그 걸음을 이끌고 있거든요.
한 걸음이 그들의 기도 하나이고,
두 걸음이 그들의 기도 둘인 셈입니다.
그들이 강을 따라 걷고 또 걷고 있습니다.
그들이 5월 20일, 집근처의 한강변을 지나갔습니다.
아침에 나가 오전 시간의 그들 걸음을 따라갔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저기 그들이 옵니다.
서울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갔던 그들이 다시 옵니다.
그들의 걸음은 2월 12일 김포의 애기봉 전망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월 17일과 18일엔 내가 사는 천호동의 한강변을 지났지만
그만 그들의 걸음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오늘의 길을 시작한 천호동의 한강변에선
왼쪽으로 보면 나무들이 강변에서 하루 종일 목을 축이며 서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나무들도 이들과 일행이 되어 함께 행진합니다.
광진교 아래쪽 잔디 광장의 나무들도
푸른 팔을 벌려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저기 그들이 오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갈 때는 물을 거슬러 서울을 지나쳐 갔습니다.
갈 때는 그들을 보지 못했죠.
하지만 만약 갈 때의 그들을 보았다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떼 같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제 그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올 때는 한강물과 나란히 걸음을 맞추어 서울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강물처럼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갈 때 남기고 갔던 그 걸음 위로
다시 만난 반가움을 한켜 두켜 쌓으며
그들이 한강변을 따라 걷습니다.
강물로 흘러드는 작은 샛강처럼
그들의 걸음이 강옆으로 흐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길게 걷습니다.
등에 등을 밀며 또 길게 걷습니다.
한 사람의 보행은 우리와 똑같은데
그들 모두의 보행은 아주 길고 길게 이어집니다.
소리없이 조용히 걷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의 손에는 “생명의 강을 지킵시다”라는 속삭임이 들려있고,
어떤 이의 손에는 “대운화 백지화”라는 단호한 외침이 들려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때로는 다리와 함께 나란히 강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는 다시 다리를 배신하고 강에 찰싹 붙어 강물과 함께 걸어갑니다.
그렇지만 다리도 이해해 줄 겁니다.
만약 다리가 삐친다면 제가 자주 가는 천호대교이니
다리에 갈 때 그 마음 도닥여주도록 하겠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의 행렬은 구불구불 갑니다.
마치 강물처럼.

Photo by Kim Dong Won

강가의 나무 덤불이 초록섬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이 잠시 초록섬에 들었다 나옵니다.
혹 초록에 물들었을까요.

Photo by Kim Dong Won

좀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자전거길을 가는 자전거 한대가 졸지에 동행이 됩니다.
행렬은 뜻하지 않은 동행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는 저 행렬이 뭔지 의아한 듯 합니다.
저게 뭐지 하면서 강변을 가는 걸음들을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는 듯 합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동행을 했으니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곧 사람들의 걸음에 자신의 걸음을 내줄지도 모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처음엔 걸어가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강물과 함께 흘러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강을 살리자고 그 먼 길을 걷고 또 걷더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이제는 강물이 된 것 같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잠시의 휴식 시간입니다.
강 이쪽에선 스님이 휴식을 취하고,
강 저쪽에선 아파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강물이 없었다면 그 어떤 휴식도 휴식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잠시 앉아 쉬는 휴식을 휴식답게 만들어줍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휴식하던 곳의 강변에 물고기 한마리가
허옇게 배를 드러내고 강물을 둥둥 떠가고 있었습니다.
순례단의 카메라맨이 그 물고기를 비디오 카메라에 담습니다.
단순히 물에 뜬 죽은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의 죽음으로 항거하는 강의 다급한 외침 같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실은 오늘 강으로 나갈 때 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으로 나가는 마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요 사람입니다.
박남준 시인입니다.
얼굴을 마주한 인연은 단 한 번이었지만
그가 강을 따라 걷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더욱 그가 보고 싶었습니다.
순례 중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어 걱정도 되었습니다.
건강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이제는 괜찮다고 하면서
썩어있는 강을 지날 때 몸이 아파오더니
금강의 맑은 물을 지날 때 다시 몸이 회복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말했습니다.
자연이 우리의 몸이고 우리의 피라는 얘기는
단순한 시적 메타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실인 것 같다고.
그는 몸으로 호흡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이 온몸으로 호흡을 하듯이.
운하를 만드는 일은 강의 호흡을 끊는 일입니다.
그건 강 뿐만이 아니라 시인 박남준을 죽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강이 아프면 몸이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이 죽으면 그들도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시인 박남준의 손에 작은 약병같은 것이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약 하나 얻어먹을 생각은 갖지 마세요.
저것은 사실 담배 꽁초 담는 병입니다.
피운 담배 꽁초 그 병에 모아 가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잠깐의 휴식을 뒤로 하고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걷자 마자 의자 두 개가 눈앞에 나타나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아무도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긴 금방 쉬었으니까요.
의자는 유혹의 자리를 잘못 잡았습니다.
게다가 달랑 둘이라 그 많은 사람들의 휴식을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기도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뒤에 서면 앞이 아득하도록 깁니다.
그렇지만 끊이지 않고 앞으로 흘러갑니다.
강물처럼.

Photo by Kim Dong Won

앞에 서면 뒤가 아득하도록 깁니다.
하지만 뒤를 버리지 않고 함께 앞으로 흘러갑니다.
강물처럼.

Photo by Kim Dong Won

오호, 이 사람들, 이제는 다리 위를 지나며
제 그림자를 물속으로 내려 인원을 두 배로 늘려서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문규현 신부님, 버들피리 소년이 되셨습니다.
삘릴리, 삘릴리, 삘릴리리리…
양손을 모았다 폈다 리듬까지 만들어내는 보통 실력이 아니셨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강은 흐릅니다.
막아선 잠실의 수중보를 넘어 아래로 흘러갑니다.
사람들도 흐릅니다.
강과 함께 흘러갑니다.
강이 되어 흘러갑니다.
운하를 물리치고 흘러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들은 어제도 걷고 또 걸었고,
오늘도 강을 따라 걷고 또 걷고 있습니다.
내일도 강을 따라 걷고 또 걸을 것입니다.
일단 일정은 오는 토요일에 종각에서 그 걸음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걸음 하나를 내디딜 때 나무 하나가 살고,
그들이 걸음 하나를 내디딜 때 풀 하나가 산다고 믿는 사람들,
그들이 서울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갔다
온나라의 강을 따라 걷고 걸어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들이 내려갔다 오는 사이,
초록이 더욱 짙어져 생명감을 더했습니다.

***순례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홈페이지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 http://www.saveriver.org/

7 thoughts on “강을 따라 걷는 사람들

  1. 비장함이 느껴져 슬프네요.
    이렇게까지 국민들을 걱정시키는 정부는 대체 뭐죠?
    저분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음 좋겠어요.
     
    어젯밤 달이 예쁘게 떠서 동원님께서 알려주신대로 찍어봤어요.
    정말 훨씬 나은 달이 찍혔는데 이상하게 색이 제가 본 황금색이 아니고
    핑크색이었어요. 그래서 다음에 다시 찍어보려구요.^^

    1.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이번 일이 다시는 2MB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된다는 걸 좀 깨달으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색이 분홍색으로 나온다면 화이트밸런스를 조정하셔야 해요. 그건 조정법이 좀 까다로워요. 별도의 조정기구가 있어야 하거든요. 카메라에 기본으로 있는 화이트 밸런스 가운데서 이것저것 바꾸어가며 한번 여러 장을 촬영해 보세요. 그럼 그 중에 눈으로 본 색으로 나온 게 있을 거예요. 나중에 달을 찍을 때는 화이트 밸런스를 그곳에 맞추고 사용하시면 아마 되지 않을까 싶어요. DSLR은 좀 골치아픈 측면이 있어요. 정밀하게 조정해야 할 것들이 사실 아주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보통 맑은 날 산에 가면 모든 사진을 세 장씩 찍어요. 브래킷이란 기능을 통해서 그렇게 찍죠. 많이 실험해 보시길.

  2. 사진 정말 좋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5월 24일. 순례단과 함께 마지막 걸음을 함께 합시다^^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생명과 평화의 강 모심 대행진 흐르는 강물,생명을 품다!
    – 1부 : 생명과 평화의 강 모심 순례 (잠수교 ~ 보신각, 09시 ~ 14시 30분)
    – 2부 : 생명과 평화의 강 모심 대회 (종로 보신각 앞, 14시 30분 ~ 16시)

  3. 오블 메인에 뜬것 이미 봤어요.
    저 순례길을 멀리서 가까이서 다양하게 찍으셨네요~
    멋진 사진입니다.

    이모저모 필요해서 52mm단렌즈를 주문했어요.
    조금은 간편히, 밝게 찍을 수 있겠어요.

    1. 날씨가 흐리니까 이 분들이 걱정이네요.
      사실 천호지구도 원래 한강의 다른 곳처럼 콘크리트 벽이 강변으로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그걸 깨내고 자연 상태로 되돌리고 있어요.
      걷는 분들이 다들 아프지 말고 무사히 순례를 끝내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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