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된 사람들

5월 17일 토요일, 사람들이 또 청계 광장에 모였습니다.
물론 미국산 광우병 쇠소기 수입에 반대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난 5월 9일에 내가 청계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해져 있었습니다.
그땐 이미 사람들이 모두 촛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때의 촛불은 세상을 바꾸려는 힘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직 빛이 많이 남아있는 시간에 청계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번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우선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예쁜 딸과 함께 나온 가족입니다.
아기가 똘망똘망한 눈초리로 엄마와 얘기를 나누는 아빠를 바라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린 두 숙녀, 앙증맞죠.

Photo by Kim Dong Won

엄마와 아빠 사이에 자리잡은 아드님이 아주 의젓해 보입니다.
엄마의 눈빛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여긴 아버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미소가 보기 좋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진행자가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아이와 더불어 신나게 박수치며 함께 합니다.
아이의 표정좀 보세요.
아주 결연한 의지에 차 있는 듯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시위도 물론 식후경입니다.
엉덩이는 맨땅에 내려놓는 한이 있어도
밥상은 깔끔하게 차려야 합니다.
물론 물로 목도 축여야지요.
이 정도는 시위를 마주하는 우리의 기본 자세이지요.

Photo by Kim Dong Won

와, 아빠, 이 사람들좀 봐, 엄청나.

Photo by Kim Dong Won

준비가 대단하죠.
이 가지런하게 모아놓은 신발들 좀 보세요.
이들 가족은 이곳을 아예 자신들의 안방으로 삼았습니다.
하긴 이들이 여기 모인 건
우리의 안방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시위가 무엇인지도 모를 아이들을 데리고
청계 광장에 나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죠.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함께 모으면
그곳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는 것을.
단순히 그곳이 시위의 공간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해야할 말을 소리 높여 외치는 자유의 공간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그곳에 데려가면 자유를 호흡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자유를 호흡한 아이는 영원히 그 자유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자유와 민주를 가르치는 것은 바로 자유와 민주를 맛보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날 엄마 아빠와 나온 많은 아이들은
그곳에서 사실은 시위를 하는게 아니라 자유를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피켓을 높이 치켜들고 거리에 우뚝선 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모두의 한국이지 대통령의 한국이 아니라오.”
그의 피켓 속에 그려진 광우병소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먹어? 당신들 미쳤소?”

Photo by Kim Dong Won

어린 여학생도 보입니다.
영어가 좀 상스럽기는 해도,
상스러운 소리를 입에 담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 누군가가 더 부끄러워 해야 할 일 같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혼자 나온 듯한 남자분도 보입니다.
전 두 번 다 혼자 나갔는데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만에 맛보는 자유의 호흡은 오히려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음악이 흥겹게 울리자
한 어여쁜 숙녀분은 음악에 맞추어
구호를 흔들며 춤을 추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이제 초가 옵니다.
아직 불을 붙이지 않았지만 사람들 손으로 초가 건네지기 시작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날이 어두워지고
드디어 촛불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촛불은 불을 서로 나누어주며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나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청계 광장이 촛불로 가득 찹니다.
낮의 그 가족들이, 낮의 젊은 친구가,
낮의 그 여학생이, 혼자 나온 낮의 그 남자분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던 낮의 그 숙녀분이,
모두 촛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촛불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 촛불이 되어 자신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었고,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촛불이 된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아이가 촛불을 들여다 봅니다.
아이의 손에 들린 촛불은 곧 아이이고,
촛불을 손에 든 아이는 곧 촛불입니다.
촛불과 아이, 아이와 촛불은 하나입니다.
촛불이 아이를 밝히고, 아이가 촛불을 밝힙니다.
청계 광장, 그 자유의 공간에서
한 아이가 촛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유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자유가 외쳤습니다.
어둠이 내린 청계 광장이 환했습니다.

10 thoughts on “촛불이 된 사람들

  1. 댓글에 댓글이 안달리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

    – 많은 힘을 얻고갑니다. ^^

    요 근래 힘빠지는 일 밖에 없어서… 축 쳐져있었는데,
    이렇게 짧은 글로 힘을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 라고 적었는데 말입니다 ㅎㅎ;

    1. 댓글에 댓글달 때 금지어가 있으면 그렇게 되더군요.
      감사는요.
      젊은 사람들이 사회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만해도 고맙기만 한 걸요.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시길.

  2. 우리 국민들 축구 수준은 이미 2002년에 4강이 됐는데
    아직도 조기축구 수준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네요.
    우리는 촛불이 돼 가는데 아직도 콧바람으로 들입다 끄려는 사람이 있네요.
    사람들이 촛불이 돼 가는 이유는 쌩까면서요.

    1. 2MB 보면 한숨만 나오고, 그러다 촛불보면 희망이 생기고…
      도대체 왜 경쟁만 외치고 공존은 생각을 못하는지…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3. 글과 사진을 주~욱 읽어내려갈 때는 그냥 몰입이죠.
    푹 빠져서 읽다가 글이 끝나면 떠오르는 한 두 마디가 댓글로 나와요.
    미처 댓글을 말로 떠올리기 전에 맨 위 암행님의 댓글을 봤는데….
    ‘아름다운’ 이라는 말이 제게 떠올랐던 바로 그 말이었네요.

    말 참 어렵게 하죠?
    제 얘기도 그니깐 아름다운 사진,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얘기죠.^^

    1. 지난 번에 대학 동창들을 만났는데 그 중의 한명이 오는 7월에 미국으로 신학 공부를 하러 간다고 하더라구요. 깜짝 놀랐어요. 일본 와세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하고 돌아와 안정적 직장에서 연구원으로 잘나가고 있었거든요. 가서 신학 공부한 뒤에 전도사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날 종교 얘기도 나왔는데 난 교회는 안다니는데 교회 다니는 좋은 사람들하고는 잘 사귄다고 했죠. 그 좋은 사람들의 특징이 도무지 저보고 교회나오라는 소리를 안한다는 거죠. 제가 아는 좋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또 하나 같이 저보고 교회를 나오라고 해요.
      저보고 교회 나오라고 하지 않는 그 좋은 사람들의 뒷편으로는 하느님이 보이고, 이상하게 교회 나오라고 하는 사람들의 뒷편으로는 하느님이 전혀 보이질 않아요. 그참 이상해요.
      하느님을 입에 올리는 사람에게선 하느님이 안보이고, 하느님을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에게선 하느님이 보이니…
      daim님 부부는 물론 제가 좋아하는 바로 그 분들이죠. 요거, 그냥 하는 소리 아니예요. ^^

  4.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세상이 떠들석할 때도 토플책을 놓지 못한 제가 참 한심합니다.
    조만간 서울에 올라가서 촛불집회에 참석해볼까해요.

    청와대에 민원을 올리는 걸로는 (주)대한민국 의 CEO MB 의 독재에 가까운
    횡포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정말 좋은 방향으로, 곧게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랍니다.

    1. 한심하다니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을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계속 자기 자리를 지키며 공부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거든요.
      한번 서울와서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좋은 일일 듯해요.
      공부도 머리를 좀 식혀야 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 아리따운 연인과 함께 참가하시면 촛불이 더 환하게 빛을 낼 거예요.
      나가보니 사랑과 집회가 하나인 세상이더군요.
      놀랍기도 하고, 또 아름답기도 했어요.
      암행님의 그 마음이 대한민국을 곧게 이끌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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