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모아 원에 담고 선이 되어 흘러간 사람들 – 생명의 강 순례

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이 땅의 강을 따라 걷고 걸었던 사람들이
5월 24일 토요일엔 반포대교 북단의 한강변에서 그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잠깐 한강을 함께 한 그 날의 걸음은
곧장 서울의 도심으로 향했으며 종각에 이르러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일단 이것으로 생명의 강 순례는 일단락이 되었지만
모두들 오늘의 길이 마지막이 아니라 이제 드디어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길을 따라 함께 걸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마지막 순례의 길이 시작되는 반포대교 북단의 잔디 광장.
이른 아침, 환하게 밝은 빛이 잔디 위에 넓게 자리를 잡고
순례자들을 기다립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순례단의 맨앞에서 103일의 여정을 이끌어온 깃발,
바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강바람을 잔뜩 호흡하며
도심으로 들어가야할 오늘의 일정을 앞두고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모여들 때의 사람들은 그냥 사람과 사람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늘도 순례를 찾는 내 마음의 절반은
이 사람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지리산 자락의 악양에 살며 자연과 생을 함께 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입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순례의 길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래 비워놓은 집을 걱정했더니
중간에 몇 번 갔다 왔다며 걱정을 덜어줍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한강변의 자전거 길을 따라 사람들이 자꾸자꾸 모여듭니다.
그 중에 검은 옷 때문에 강렬하게 시선을 끌어당기는 수사님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분들 가운데 아는 분이 있었습니다.
내가 활동하는 인터넷의 한 컴퓨터 동호회에서 매번 사진으로 만나던 분입니다.
그 동호회는 컴퓨터 동호회이긴 하지만
소모임으로 사진 동호회를 두고 있거든요.
한번은 출사 모임 때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 분입니다.
그냥 카톨릭 신자려니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분이 카톨릭 수사였습니다.
사진에서 맨 앞의 분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모여드는 사람들이 줄을 지을 정도로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모여든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앉았습니다.
무엇인가를 담는데 둥근 원만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여서 둥글게 원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원 속에 운하 반대의 뜻을 담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만든 이 원이 점점 부푼다는 것입니다.
마치 빵처럼 부풀어 올라 점점 커집니다.
원이 부풀면 운하 반대의 뜻도 함께 커집니다.
그 둥근 원 속에 운하 반대의 뜻을 담았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반포대교 북단의 잔디 광장에서 사람들이 만든 원이 부풀고,
그리고 그 원 속에 담은 운하 반대의 뜻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뜻을 원 속에 담아두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원을 풀어 선으로 만들고,
그 선을 끌고 서울의 한가운데로 향합니다.
그리하여 반포대교 북단에 고여있던 사람들의 원은 길고 긴 흐름이 됩니다.
그 흐름은 어찌나 긴지 이제는 멀리 보이는 동작대교보다도 더 길어졌습니다.
오늘 반포에서 발원한 그 긴 흐름을 끌고
사람들이 생명의 강이 지닌 소중함으로 서울을 적시기 위해
서울의 한가운데로 흘러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지만 서울은 사람들이 강물처럼 흘러가기엔
장애물이 너무도 많은 곳입니다.
잠시 사람들은 건널목에 모여 기다립니다.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이 건널목을 건너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까이 모여 몸집을 불리고, 일거에 건너갈 준비를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일거에 건널목을 건넙니다.
그것도 S라인을 그리며 건널목을 건넙니다.
이효리의 S라인 보다 더 아름다운 S라인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서울의 한가운데, 종각을 향하여 흘러갑니다.
점심 때 사회자가 그러더군요.
“종각은 종치는 곳, 가서 운하 계획을 종치게 만듭시다.”
사람들이 운하 계획은 이제 종치라고 종치기 위해 종각으로 가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항상 갈 길이 급한 자동차의 물결만 흐르던 굳어있는 도로,
그래서 그 성급함 때문에
항상 목울대를 높이는 자동차의 소음으로 들끓던 도로,
바로 그 위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순례의 흐름이
조용히 강처럼 흘러오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수녀님들이 길가에 나와
강이 되어 흘러온 사람들을 박수로 맞아줍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육교 위에선
“우리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란 플래카드가
사람들을 반겨줍니다.
이런 플래카드를 내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플래카드는 좀 특별한 플래카드거든요.
다른 플래카드는 한번 자리를 정하면 그 자리에 눌러앉아 있지만
이 플래카드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이 육교에서 사람들을 환영해주고,
그 다음엔 재빨리 몸을 둘둘 만 뒤에 다음 육교로 줄달음을 쳐 뛰어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육교 위로 올라가 사람들을 마중해 줍니다.
이 플래카드의 환영은 뜀박질로 이어가는 숨가쁜 환영이어서
보통 땀을 들인 환영이 아닙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순례의 물결, 그 가까이 가봅니다.
그러면 그 흐름의 한가운데
“강은 우리의 생명”이란 조용한 외침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쉬는 시간, 아리따운 숙녀분은
“운하는 안돼요”라는 반대의 뜻을 목에 걸고 휴식을 취합니다.
운하 반대의 뜻은 휴식 시간에도 쉼없는 외침이 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또 많은 사람들이 “운하는 안돼요”라는 반대의 뜻을
등에 짊어지고 순례의 길을 갔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운하는 안돼요”라는 반대의 뜻을 머리에 인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잿밥에만 눈이 간다고
사실 이 분이 드시고 있는 떡에 눈길이 가서
그만 그것을 몇번 쳐다보는 치사한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먹는데 쳐다보는 것처럼 치사한 일도 없건만
그게 떡을 얻어먹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쳐다보면서 내심 기대마저 품고 있었습니다.
결국 기대가 적중하여 떡을 얻어먹고야 말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맛있었어요.

사람들이 운하 반대의 뜻을
목에 걸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온몸으로 운하를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참여한 사람들도 다양합니다.
어린이도 걸음을 보태 뜻을 함께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검은색 일색의 복장으로 특히 눈에 잘 띄는 수사님들도 함께 했습니다.
같은 컴퓨터 동호회 회원이 두 분이나 있어 특히 반가웠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린이가 함께 해주니 사람들이 모여 엮어낸 이 흐름이
더욱 푸르러 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린 아들을 데리고 참가한 아버지도 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아버지가 지켜준 강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가다
순례의 오늘을 회상하며 서로 뿌듯해 하는 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또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강을 지키겠지요.

Photo by Kim Dong Won

홋, 외국인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실패한 걸,
왜 한국에서 또 다시 실패하려고 하는지 안타까운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면 우리의 강을 우리 못지 않게 사랑하는 분일지도 모릅니다.
가끔 우리 것을 우리보다 더 사랑하는 외국분들이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운하 반대의 흐름은 소월길을 걸어
남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남산의 백범공원에서 점심 먹었습니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점심을 먹습니다.
저도 수사님과 수녀님들 일행에 끼어들어 배불리 얻어먹었습니다.
수사님들, 수녀님들, 고마웠어요, 맛난 점심.

Photo by Kim Dong Won

남산에서 점심을 먹은 생명의 강 순례단이
이제 남산을 넘어 숭례문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잠시 숭례문 앞에서 한자리에 모인 생명의 강 순례단은
성난 파도가 됩니다.
성난 파도는 함께 외칩니다.
“이명박 정부는 운하 계획을 백지화하라!”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다시 손을 잡고 길을 갑니다.
어린이가 걷기에는 먼거리였지만
많은 어린이들이 그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혼자가면 멀고 험한 길도
함께 가면 좀더 수월해지고 또 즐거워지기까지 합니다.
수녀님의 손을 잡고 가는 이 가녀린 손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어린이입니다.
내가 아는 수사님이 아이에게 그러더군요.
오늘 여기 참가한 걸, 꼭 일기에 적어놓으라고.
나중에 그걸 보면 스스로가 아주 대견스러울 것이라는 말을
그 뒤에 덧붙여 주셨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길가의 시민들이 박수로 맞아줍니다.
아빠의 등뒤에서 아이도 함께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사람들이 운하 반대의 뜻을 등에 짊어지고,
혹은 머리에 이고, 목에 걸고,
그렇게 온몸으로 밀면서
서울의 한가운데, 종각에 도착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 가운데 딸을 안고 있는 한 아버지가 보입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망가지지 않은 자연을 물려주고 싶다는
아주 작은 소망으로 이 자리까지 걸었을 것입니다.
그 작은 소망들이 큰 물줄기를 이루어 반포에서 종각까지 흘렀고,
드디어 종각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소박한 소망을 짓밟고 운하 계획을 강행하면
아마도 오늘의 이 물줄기가 성난 파도로 일어나
이명박 정권을 쓸어내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작은 소망의 소중함을 알고,
또 이 평범하고 작은 순례자들의 무서움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외쳤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운하 계획을 백지화하라!”

***순례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홈페이지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 http://www.saveriver.org/

9 thoughts on “뜻을 모아 원에 담고 선이 되어 흘러간 사람들 – 생명의 강 순례

  1. 운하? 우나?
    운하 때문에 우는 분들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냥 강이나 바다나 땅들을 무관심하게 냅두면 참 좋겠습니다.
    왜 자꾸 해코지를 하려고 하는지…

    1. 운하를 파면 그때부터 강은 물이 아니라
      눈물로 흐를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몸이 아픈 고통의 눈물로…
      강이 우는 세상,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 그런 치사한 눈길을 보내다니…풋~
    눈길만으로도 당신 맘을 알아줘서 덜 치사했다는 생각이 드네.
    사실 당신 눈길을 몰라라 했으면 갑자기 눈길을 보낸 당사자가 마구 치사해지거든. 큭~

    애 많이 썼네. 내가 미리 떡 좀 챙겨줄 걸.^^

    1. 배고프면 저절로 그리 된다.ㅋㅋ
      오전에만 참가하고 올려고 별 생각없이 나가서 그렇게 되었다.

      애쓴 사람들이야 100일 동안 걸은 사람들이지.

  3. 그래서 사람들이란게 몸의 경험을 앞서 나가기가 참 어려운 거랍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또 세상이 한 걸음 전진할 거예요.

  4.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네요.
    온 국민이 뜻을 같이 하는데도 철회하지 않는다면 정말 최악의 정부,최악의 대통령인데
    대국민 담화때보니 이미 결정한일 믿고 따라달라는 의미외엔 없어서 걱정이네요.

    1. 이런 사람 뽑은 것도 다 과정의 하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들은 겪으면서 이제 이런 사람 뽑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아 가는 것 같아요.

  5. 운하 계획을 포기하면 될 일을…
    수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드는 정부의 계획에 화가 치밉니다.
    국민의 뜻을 새기고, 국민의 마음을 읽는 그런 정부가 되었으면 바래봅니다.
    아이들까지 거리로 나오게 만드는 사회…
    마음이 무겁습니다.

    1. 다 우리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업보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도 아주 거짓말이 입에 붙은 대통령이란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구요.
      하지만 잘 될거예요.
      문제도 많지만 80년대에 군사 독재 정권을 몰아낸 국민들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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