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이름은 토끼풀이다.
서양에선 클로버라고 부른다.
우리들도 많이 클로버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토끼풀이란 이름을 더 좋아한다.
토끼풀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나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유추해 보자면
토끼가 좋아하는 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노루나 사슴이 더 좋아했다면
노루풀이나 사슴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름이다.
어쨌거나 토끼가 이 풀을 좋아했고,
토끼가 그렇게 좋아하니까
풀은 자신을 내주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자신의 이름에 토끼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풀은 토끼풀이 되었다.
그러니까 토끼풀은 다 내주고, 또 다 받아들인 풀이다.
그렇게 다 내주고 또 다 받아들이면
자신의 삶은 하나도 남을 것 같지 않은데
토끼풀은 지금도 여전히 어디서나 토끼풀이며
이름에 토끼를 앞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끼라기보다는 풀이다.
누군가에게 내주고 또 누군가를 받아들이면
내 삶이 지워질 것 같지만
토끼풀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자신을 내주고 상대를 받아들일 때면
그 사랑으로 인하여
어느 한쪽의 존재가 지워질 것 같지만
토끼풀을 보고 있노라면 그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강변을 거닐다
색깔이 유난히 고운 토끼풀을 들여다보며
사랑은 그 사랑을 먹고 자란 토끼보다
토끼풀에게서 더욱 크고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다음에 토끼를 보면
이제는 그 토끼를 키운 토끼풀이 생각날 것 같다.
이제는 그 자리에서
토끼풀, 그것이 토끼를 키운 사랑으로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다.
오늘 가까운 어디 동물원으로 토끼보러 가고 싶다.
2 thoughts on “토끼풀”
리더기에서 읽고 답글달려고 왔어요^^
저 초등학교 4학년때던가 경기도 마석에 살때였는데 토끼 농장 근처였어요.
농장 앞에 엄청 드넓은 토끼풀밭이 있었지요.
늘 거기서 토끼도 보고(종류가 참 가지가지였거든요^^) 네잎 클로버도 찾아보고
그러면서 놀았는데 제 눈이 좋았는지 유난히 네잎을 잘 찾았어요.^^
어느날은 지나던 자가용이 멈추더니 나이 지긋하신 남자분이 내리셔서는
딸이 고3인데 네잎 클로버 갖다주면 좋아할거라며 제게 팔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500원에 몇잎을 팔았지요.^^
또 언젠가는 계란 트럭이 그 토끼풀밭을 지나다가 커브를 돌면서 실수했는지
그대로 엎어져버렸지뭐에요?^^
초록 토끼풀밭이 계란 노른자로 노랗게 물들었답니다.
그날 동네사람들이 양푼이나 양은냄비같은걸 들고가서 계란을 퍼담았죠.^^
저희집도 며칠간 계란 후라이나 찜을 실컷 먹었던 행복한 기억이..^^
마석이면 저희도 자주 놀러나가곤 하는 곳이예요.
다음엔 그곳으로 나갔을 때 토끼풀을 보면 토끼풀에 어린 가을소리님의 추억도 함께 떠오를 것 같아요.
이래서 인간 관계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가 봐요.